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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감 Nov 07. 2021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

욕심을 마주하기

오늘은 눈을 떴는데 기분이 참담했다. 어제 들은 말이 귀에 남아있었다. 너는 조심스러운 사람이잖아. 친절한 말투인데 안 좋게 말하면 좀 우습게 보여.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나를 우습게 여기지 않고 아끼는 말에 해준 이야기라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조심스러운 사람인 것이 속상했다.


어릴 적 나는 부드럽게 말하는 방식을 연습했다. 나를 돌봐주시던 할머니들, 아버지, 선생님은 대체로 말이 뾰족한 편이었다. 그들에게 시달리다가 가끔 누군가에게서 듣는 둥근 표현들이 어찌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말을 둥글게 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됐고 따라하게 됐다. 나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만난다. 내 말투와 톤이 부드러워서 만만하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런 사람들의 태도가 벅차다. 똑같은 말도 거칠게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숨이 막힌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사람을 대할 때 더욱 부드럽게 대하려고 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내 아침 기분이 참담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는 거지?


침대에 누워 고양이에게 물었다. 고양이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거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인건데.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좋은 사람이길 기대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에게는 그런 잣대를 가져오니까 숨 막혀.”


그런 말이 술술 나왔다.

나는 계속 허공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나를 학대하는 거야. 어떻게 사람이 그래! 누군가한테는 불편하고, 안 좋은 사람일 수 밖에 없는데. “


내 답답한 속은 나의 욕심에서 싹이 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스스로에게 바라며 숨통을 죄여 왔으니 숨을 몰아쉬는 것이 당연하다. 하물며 예수님도 죄가 없이 살았지만 그 당시에 예수님의 존재를 싫어하고 불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도 못하는 것을 인간인 내가 어떻게 해! 나 못해!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이었다. 솔직한 마음을 말한 적이 거의 없다. 힘들 때도 안 힘들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면 상대방도 그렇게 믿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런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기는 커녕 불편해했다. 내가 말은 안 힘들다고 하지만 불편한 행동이나 표정은 숨기지 못했나보다.


상대방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려고 하다보니 내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 감추려고 해도 티가 나버렸다.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대체로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줬다.


어쩌면  내가 사람을 대하는 조심스러움은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괜찮아. 너를 욕하는 사람은 너를 몰라서 그러는 거야. 너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너에 대해서 더 욕했을걸?”


 말이  속을 시원하게 한다. 나는 사람이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없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러니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는 마음을 좀 편히 먹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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