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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감 Dec 15. 2021

역 앞 닭꼬치 할미의 비밀

부자 할미와 친해지다

퇴근길에 꼬르륵 소리가 난다. 거하게 먹기엔 부담스럽고 가볍게 먹자니 아쉬운. 그럴 때 나는 역 앞에서 닭꼬치를 파는 할미에게 들린다.


두툼한 고기와 소스에 절인 파가 듬성듬성 꽂힌 꼬치가 불 위에 올라간다. 파의 끝이 크리스피하게 살짝 탈 때까지 불 위에서 지져주면 간단한 요깃거리 완성이다. 뜨끈한 어묵 국물로 목을 축이고 통통한 고기를 입에 쏙 넣어 맛있게 먹는다. 고기가 두툼해서 제법 배를 든든하게 한다.



꼬치를 야무지게 뜯으면 나무 꼬챙이가 금방 모습을 드러낸다. 닭꼬치를 먹는 중간에 제 때 꼬치를 자르지 않으면 목이 꼬치에 찔린다. 닭꼬치 할미는 늘 나를 지켜보시다가 틈마다 내 꼬치를 적당히 잘라주신다.


처음에는 내 침이 묻은 꼬치를 손으로 잡고 잘라주시길래 놀랐다. 아니, 이건 내가 우리 동생한테도 못하는 거야! 할머니는 목이 찔리든 말든 꼬치만 팔면 된다는 생각이 아닌 거다. 처음 보는 사이에 맨 손으로 꼬치를 잘라준다니. 그것도 내가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매번.

이건 마치 깻잎장을 먹다가 착 달라붙은 깻잎장이 서로 안 떨어질 때 젓가락으로 깻잎을 잡아주는 그런 한국인의 정 같은 것!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했다. 내가 밥 먹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흐뭇하게 웃으시는 우리 할머니.


그때부터 나는 출출하면 거의 닭꼬치 할미네 들려서 순한 맛 꼬치를 뜯는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매일 나와서 기구한 장사하시는 사연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슬쩍 들었다. 꼬치를 뜯으며 슬쩍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나 여기 근처 단독주택에 살아.
우리 남편이랑 같이.
건강검진받으니까 나 병도 하나 없대.
충치 하나도 없대.

네…? 단독주택이요? 우와.. 할머니 너무 부러워요. 병도 하나 없으시고! 우리 할머니는 지금 엄청 아프셔요. 저는 우리 할머니 생각나서 여기 자주 오게 돼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아이고, 그랬구나. 우리 아가. 그렇게 말해주셨다.


그날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나보다 부자다. 서울 살고, 남편도 있고, 집도 있고, 게다가 건강하셔! 나는 벌써 금니가 5개인데….  그런 말이 입에 맴돌았다.


진짜 누가 누굴 돕냐.


할머니가 나보다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할머니네 들리기가 싫어졌다. 난 그 마음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부자든 아니든 들릴 수 있는 건데 왜 나는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걸까? 부자 할머니의 가게에 가는 것은 내 우월감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우월감이 살짝 가미된 뿌듯함이 올라오는데, 부자 할머니를 도우면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아서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내 알량한 우월감에 소름이 돋았다. 순진한 손녀인 척 닭꼬치 할미네 들렸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월감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했었던 것이다.


나는 돈 이야기가 나오면 민감하게 변한다. 자격지심이 심할 때는 그 반응이 더 심했다. 돈 없는 내가 싫고, 돈 많은 사람은 더 싫었다. 곁에 있기만 해도 내가 초라해지고 작아져버려서. 부자였던 친구들 몇몇을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멀리해버렸었다. 비교적 부족했을 우리 집에 와서 경제적으로 비교하지 않고 나를 늘 똑같이 대했던 그 친구들을 말이다.


우리 집은 왜 넉넉하지 못하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뭘 사도 만족이 안됐다. 뭘 사도 항상 비교가 됐다. 그게 나를 학대하는 것인지 몰랐다. 보이지 않는 학대였으니까. 스스로 괴롭게 하는지도 몰랐다.


그게 반복되자 이게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스스로 괴롭게 하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돈 외에 다른 가치를 바라보려고 했다. 처음엔 잘 안보였다.


그렇다면… 그 뒤에 나는 그 닭꼬치 집을 가지 않았을까?


나는 퇴근길에 배가 고프면 여전히 닭꼬치 할미 네로 향한다. 아이고, 예쁜 아기 왔어? 하는 할머니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가 꼬치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꼬치를 손으로 잡고 톡톡 잘라주신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눈다.



다시 가게 된 이유는 할머니가 부자인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아까 말한 재산 부자 이런 거 말고! 할머니는 부자다. 마음 부자. 닭꼬치 집에 오는 청년들을 다 아가라고 부르신다. 바쁜 상황이 아니면, 나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들 꼬치도 손수 톡톡 자르신다. 한 입 베어 무는 그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꼬치를 잘라주신다.


할미가 잘라줄게! 이리 줘봐!


처음 보는 청년도 다 아기라고 부르고 꼬치를 잘라주신다. 그건 할머니의 귀여운 영업이기도 한데 나는 그 마음이 따뜻한 할머니의 정으로 보였다. 시커먼 패딩을 걸친 낯선 청년들을 아기라고 따뜻하게 부르는 것이 과연 쉬울까? 할미는 가진 것이 있어도 그것에 우쭐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사신다. 그 모습이 진짜 부자 같아서 부자 할미네에 꼬치를 먹으러 편하게 가기로 했다. 더 이상 우월감 따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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