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엄마가 나를 부르는 별명이 여러 개 있다. 그 중에 나는 모순적이라는 단어가 재밌다.
“너는 참 모순 적이다.”
그 말을 들으면 이런 내가 웃겨서 그 기억을 잘 저장해뒀다가 꼭 글로 써야지 했다. 오늘 내가 생각한 모순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이다.
나는 내가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지하게 내 평생 혼자 살 것을 염두해두고는 내가 경험하지 못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벅찬 감동을 한켠으로 부러워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하지만 오늘 나는 내년 생일에 할 타투를 고르면서 과연 누구에게 보여줄 때 문제가 있을까 생각했다. 나의 아이 혹은 명절에 목욕탕을 같이 간 시어머니가 보았을 때 민망하지 않을 선에서 타투 디자인을 골랐다. 어머, 우리 며느리도 타투가 있어? 하는 시어머니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 민망한 부위가 아니길 바라면서.
아이가 엄마 몸에 그린 그림은 왜 안 지워져? 이 그림은 무슨 그림이야? 라고 물을 때 민망하지 않을 디자인이기를 바라면서.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시어머니와 목욕탕 갔을 때를 염두하는 나의 모순. 그 모순에도 공통적인 나의 자세는 항상 진지하다는 거다. 진지하게 결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지하게 시어머니와 목욕탕 갔을 때의 상황을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짜장면 집 가서도 세상에서 제일 진지하게 메뉴를 고르다가 항상 탕짜면을 시키는거다. 탕수육이 좋은데 싫고, 짜장면이 싫은데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