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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08. 2023

참 어렸지, 그땐

그 시절 내가 기억하는 소년  

녹음실에서 녹음을 해본 것이라며 노래 파일이 하나 왔다. 

아무 기대가 없었다. 평소에 코인 노래방을 잘 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노래를 좋아하나 보다 했다. 무심히 노래를 듣기 시작했는데... 그랬는데! 생각보다 노래를 잘했다. 이 노래가 이렇게 좋은 노래였나?? 이때부터는 '오호'하는 마음으로 노래만 들으며 집중했다. 왜 이렇게 노래를 잘하냐고 물었더니 요새는 일반인도 녹음실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마치 사진 찍고 포토샵으로 다른 내 얼굴을 만들어주듯이 목소리를 다듬어준다고 했다. 이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포토샵처럼 노래를 다듬어준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노래를 어느 정도는 불러줘야 수정도 가능한 법!  가요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노래가 좋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 파일을 나에게 보내준 사람에게 반할 것만 같은 간질간질하는 마음까지 일어났다. 아니 그 순간만큼은 반했다! 이래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많구나 싶었다. 아주 큰 매력 포인트 중에 하나임에 분명하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하니 문득 예전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학창 시절에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으로 학교를 다녔던지라 별다른 일탈이 없었다. 연애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시작했던 것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매우 짧긴 했어도 나도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기간이 너무 짧았던 터라 기억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던 것뿐.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요즘 말로 하면 친구인 듯 아닌 듯 남녀 간의 묘한 긴장감을 가지고 연락을 하던 몇몇 아이들이 있긴 했었지만 그게 연애까지 연결되진 않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 생각해도 문턱이 굉장히 높은 사람으로서 상대방이 엄청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관계 진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고백을 하더라도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내 취향이 아니거나 해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뭐 이것도 다 10대나 20대 때 얘기지만...


어쨌든 그런 남녀 간의 썸 기류가 연애까지 연결된 사람은 학창 시절에 딱 한 명이었는데 엄친아였다. 말 그대로 엄마 친구 아들. 물론 엄마를 통해서 소개받은 건 아니고 학교가 같았던 것도 아니다. 엄마를 통해 얘기를 많이 들었을 뿐 그 아이를 알게 된 건 친구 소개로 다니게 된 영어 학원에서였다. 영어 학원을 갔더니 엄마를 통해서 숱하게 얘기를 들어왔던, 그래서 혼자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던 엄친아와 이름이 같은 남학생이 있었다. 설마 했는데 그 동명이인이 엄마가 얘기하던 그 애가 맞았다. 엄마가 그 아이 얘기를 꺼낼 땐 주로 카더라라는 칭찬이 많았다. 공부를 잘한다더라. 괜찮게 생기고 키도 큰 편이라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밸런타인이나 빼빼로데이 때 선물을 엄청 받아온다더라 등등 

나는 그 아이에게 학습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로 봤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키가 크지도 얼굴이 잘생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뭐 나름 괜찮기도 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어 보였다. 호감은 갔던 것 같다. 그 시절 여고생은 원래 또래의 말에 민감한 편이다. 여기저기서 소문을 들어보니 인기가 없는 편이 아닌 건 맞는 듯했다. 당시에 왜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괜히 다른 애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하니 좀 더 멋있게 보이기까지 했다. 소위 좀 나간다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와도 사귄 적이 있다고 하니 그 생각은 좀 더 확신으로 굳어졌다. 


어쩌다 보니 같은 클래스에서 영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번호를 교환했다. 번호를 교환하고 보니 어느샌가 자주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런저런 내용들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호감을 키웠다. 학교 마치고 다니던 독서실에서는 해야 되는 공부는 안 하고 그 아이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친구와 그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참 풋풋했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 친구가 먼저 좋아한다는 고백을 해줬다. 그리고 사귀자고 얘기했다.


사귀는 사이가 된 뒤 처음으로 했던 데이트에서였다. 번화가를 나가서 영화도 봤고 밥도 먹었다. 사귄다고 했더라도 뭐가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도 몰랐던 어색했던 순간들. 그때도 코인 노래방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코인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갑자기 왜 노래방을 가자고 하지 하면서 약간은 의아스러운 마음이었지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또 한편으로는 비장한 모습으로 그 친구가 노래를 시작했다. (나한테는 불러보라는 얘기도 안 했다.ㅎㅎ 목표가 확실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건 상당히 노래를 잘했다는 거다. 김동률 노래도 부르고 몇 곡 연속해서 불렀는데 지금의 나라면 '본인이 노래 잘 부르니까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렇게 노래방을 오자고 했구나? 귀엽긴~' 하면서 칭찬을 마구 해줬을 텐데...


근데 당시 나는 어렸다. 그땐 그랬다. 속으로 오히려 그 애한테 있던 호감이 깨지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을 통해서 괜스레 이 말 저 말 들은 것이 많은 게 화근이었다.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아직 크지 않은 것도 이유였을 것 같다. 뭔가 둘만의 믿음이 형성되기 전에 앞서간 느낌. 사귀기로 하고 이제 알콩달콩 꽁냥대어도 모자란 시간 들이었건만 예전에 만났던 여자들이랑은 어땠다더라 하는 얘기들을 괜히 들은 통에 이러고 여자애들한테 불러줬겠구먼 하는 꼬인 심사가 발동됐다. 말하자면 그 아이 나름의 사랑의 세레나데를 세모눈을 하고 듣고 있는 격이었다. 노래를 잘 마치고 뿌듯해하는 그 친구에게 으레 잘한다는 얘기는 해준 뒤 건조하게 그날 데이트를 마쳤다.


우린 잘 맞는 부분보다는 성향적으로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꽤나 있었다. 이걸 사귀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그 친구를 만나는 게 그리 재밌지 않았다. 내가 서툴러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만나는 동안 커플 시계를 사서 선물을 해준다든지 관계를 진전시키려 노력해줬다. 아마도 지금이라면 그런 상대의 배려나 호감 표시를 더욱 고마워할 수 있었을 거다. 우리의 인연은 그리 길게 가지 못 했다. 그렇지만 그 시절 노래를 잘한다는 본인의 장기를 내 앞에서 보여주고 싶어 했던 그 순수한 마음만큼은 간간이 떠오른다. 마음에 남아 있다. 그땐 서로 참 어렸고 그래서 순수했고 철이 없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노래를 잘 부르겠지? 생각하니 슬쩍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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