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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22. 2023

남자 몸짓에 이런 느낌 처음이야

현대무용, 두 점 사이 

괜히 심심해서 '당근'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당근에 있는 동네생활은 은근히 유익한 정보들이 많이 올라와서 가끔 둘러보곤 하는데 그날 따라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게시글이 하나 있었다. 현대무용 공연에 대한 글이었는데 선착순으로 곧 있을 현대무용 초대권을 준다는 얘기였다. 현대무용? 사실 현대무용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고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라 괜찮을까 싶었지만 공연이 있는 날짜와 시간대가 마음에 들어서 놓치기 전에 얼른 신청했다. 그래도 현대무용이 뭔지는 알고 가야 되겠다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조금 알아봤다. 현대무용은 전통적인 발레에 반기를 들고 개인의 자유로운 정서적 경험을 표현하는 무대무용이라고 했다. 모든 형식주의를 버리고 정신 그 자체를 구현하고자 하는 무용인 셈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공연 당일이 됐다. 평소에 새로운 것을 보는 것에 관심이 많은 지인 2명과 함께 동행했다. 다들 현대무용 공연은 처음 본다는 공통점을 가진 채 공연 장소로 갔다. 작품 소개와 단체를 소개하는 소책자가 놓여 있어서 집어 읽어봤는데 사실 무슨 얘기인지 명확하게 잘 와닿지 않았다. 우선'두 점 사이'라는 이 현대무용극 소개 멘트에 적혀 있는 그대로 소개해보겠다. 

작품 소개 
본 작품은 인간 내면에서 꿈틀대는 자아들을 정반합의 이론에서 분화하는 '정'과 대적자(반)의 모습에 빗대어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은 결국 정반합 흐름을 따라 살아가게 되지만, 사람들은 보통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집중한다. 정-반에만 초점을 맞춰 새로운 '합'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점을 달리 보면 결국 '합'이 맞춰지는 것이며, 그 경계는 생각보다 깊거나 높지 않다. 살짝만 그 경계를 넘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있지만, 우리가 그 경계를 발견하지 못하여 뛰어넘지 못해 정-반만 존재하는 세상에 갇혀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오브제와 설치물 등을 통해 역동적으로 표현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 우리는 '합'으로 도달하기 위해 갈등과 대립,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 이후에는 긍정적인 결과가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무대 위 구조물은 매우 간단했는데 비스듬하게 놓인 판 위에 구멍마다 막대기들이 적재적소에 솟아 올라왔다. 5막으로 구성된 극 중간중간에 판의 배치의 변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막대기가 솟아오르기도 했다가 없어지기도 했다가 다양함을 연출했다. 별다른 기대는 없이 공연을 보기 시작했던 나는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몰입도로 공연을 집중하고 있었다. 구조물 판이라는 공간은 시선을 딱 한 곳에 잡아두는 효과가 있어서 그 안에서 움직이는 무용수의 움직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적절한 조명과 음악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더욱 돋보이도록 해줬다. 무용수들의 동작을 통해서 인생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등과 고난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1막 2막을 지나고 5막까지 달려가면서 '합'을 향해 가는 여정. '합'이라고 하는 긍정적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살아가면서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그 수많은 경험 속에서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메시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공연 들어오기 전에 읽었던 작품소개가 공연을 보기 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공연을 보는 동안 이해가 되는 과정이 즐거웠다. 공연의 흐름도 몰입도를 높였지만 사실 나를 가장 매료시켰던 건 무용수들의 몸놀림 그 자체였다. 놀라운 마음이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절제된 동작. 그러나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유연하고 우아한 것 같지만 파워풀한 느낌. 속으로 '코어 힘이 얼마나 좋으면 저 동작이 저렇게 부드럽게 되지?'를 정말 수도 없이 생각하면서 남자들의 몸짓도 저렇게 우아할 수 있다는 걸 눈앞에서 직관했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데 정돈된 유연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남자 몸짓을 보고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낀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다. 


1시간의 공연이 끝났고 땀을 뚝뚝 흘리는 무용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몸으로 표현한 강렬한 메시지를 읽고 공연의 여운을 느끼면서 돌아가는 내내 함께 간 사람들과 몸짓, 무용 그 자체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 같다. 현대무용을 처음 접한 스타트가 매우 훌륭하다. 앞으로도 아마도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현대무용 공연을 보게 될 것 같다. 몸으로 표현하고 서사와 이야기가 전달된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가슴 뭉클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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