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던, 푸른 바다를 사랑했던 '라울뒤피'
지인이 전시회 티켓이 생겼다며 보러 가자고 했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진 못해도 보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콜'을 외치며 냉큼 약속을 잡았다. 라울뒤피의 전시였다. 색채의 선율이라는 콘셉트답게 색감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이 좋았다. 작품들이 참 감각적이었다. 라울뒤피의 작품의 밝은 색감은 리듬감과 경쾌한 느낌을 줬다. 화가는 아마도 호기심이 굉장히 많고, 도전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화, 수채화, 과슈, 판화, 드로잉, 직물 등 화가는 그림뿐만 아니라 책의 삽화, 직물 디자인, 실내 장식 작업 등 재능을 전방위적으로 발휘했다.
시기별로 작가의 화풍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그 안에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인상주의 모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작품도 보였고,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작품들도 있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지인이 '꼭 세잔 작품 같네'하고 한마디 툭 던졌는데 살펴보니 세잔의 입체주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품 전반의 과감한 색채와 터치는 은은하게 기억에 남았다. 왜 그를 기쁨의 화가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별다른 기대를 가지지 않고 갔던 전시였는데 둘러보는 내내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인생 역작이라고 불리는 '전기의 요정'은 실제 작품의 사이즈로 볼 순 없고 ('전기의 요정'은 프랑스 파리시립현대미술관 4층, 5층에 걸쳐 설치된 대형 벽화다.) 판화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우리나라 최초 공개인 오리지널 석판화 연작 10점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라울뒤피는 이 작품을 위해 수많은 발전소를 스케치하고 도서관과 박물관 자료를 찾아가며 수집했다고 한다. 전기의 요정은 무려 가로 60m, 높이 10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작품 안에는 고대부터 이어지는 전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전기의 역할까지도 표현했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건 그 시대의 모습이나 화가의 고민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들의 언어, 즉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은 보고 있으면 화가의 혼이 살이서 작품을 설명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화가가 살았던 공간에 대해, 문화에 대해 그리고 그가 살아간 인생에 대해 알면 작품이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 같다. 작품을 보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해 준 라울뒤피는 프랑스 출신 작가다.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 제2 외국어는 불어였다. 고1 때 잠깐 일주일에 한 타임 정도씩 불어를 배웠던 것 같은데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설렘이 한층 더 강화됐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불어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은 살짝 마른 몸에 기품 있는 얼굴이었다. 전형적인 미인형은 아니었지만 살짝 각진 턱선이나 눈매, 콧선이 시크했다. 말하자면 분위기 미인. 옷은 주로 무채색 계열을 즐겨 입었는데 딱 한 곳은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그게 흔히 그 시절 말로 엣지 있어 보였다. 전반적인 느낌이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선생님이셨다. 원래 그런 건지 불어를 가르쳐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말투도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되게 조곤 조곤 차분했다. 우아하고 세련된 그 느낌이 어쩐지 불어를 가르쳐주는 모습과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에 'merci 멕씨' 조차도 발음을 어려워했던 나를 선생님은 예뻐하셨다. 찬찬히 입모양을 봐주시며 발음을 교정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가 선생님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끼셨던 것 같다. 불어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가 그 언어를 습득하진 못 했지만 프랑스는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고, 파리는 내 드림 여행지가 됐다.
어느 해 12월 나는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생각보다 추웠던 겨울 날씨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사진이나 영상으로 봐왔던 울퉁불퉁 돌로 되어 있는 돌바닥에 캐리어를 끌면서 드디어 내가 파리에 발을 딛었다는 걸 실감했다. 숨을 쉬어보며 파리의 공기를 느꼈다. 옛날 모습 그대로의 파리 시내 건물들을 보면서 나는 다니는 내내 감탄했다. 옛 모습 그대로가 보존되어 있는 곳,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았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다 생각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와보고 싶었던 파리에 도착했다는 것 자체에 여행을 하기도 전부터 이미 만족이었다. 이후 일정들은 덤이었다. 에펠탑을 눈으로 찬찬히 밟으면서 마음에 담으려고 했다. 따뜻한 뱅쇼를 손에 들고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은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했다. 근데 이것보다 더 큰 만족감을 의외에 곳에서 느꼈다. 스스로도 내가 이런 걸 좋아한단 말이야? 했다.
파리에 왔으니 응당 루브르 박물관은 가봐야지 생각하고 일정을 잡았다. 루브르 박물관을 들어가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 얘기들은 나중에 다시 한번 해보기로 하고. 어쨌든 우여곡절과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간 루브르 박물관은 엄청난 예술 작품들이 차고 넘치는 넓디넓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들어가서 그 규모를 맞닥뜨린 순간 여기만 제대로 보려고 해도 일주일로도 부족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단박에 생겼지만 여건상 그럴 수 없었기에 파리를 다시 와야 되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찬찬히 작품들을 보면서 첨으로 작품은 왜 실제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가슴 깊이 느꼈던 것 같다. 작품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앉아서 들여다보고 싶은 작품들이 너무 많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전체적으로 보려면 여유를 부릴 형편이 못 됐다. 그런 상황에 아쉬운 마음이 커지니 현지인들의 여유로운 표정과 몸짓이 나한테 돋보기로 확대되듯이 더 크게 보였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작품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거나 드로잉 북을 들고서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왜 프랑스 파리가 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작품을 보고 생각하고 직접 그려보고 매일 숨 쉬듯이 느끼면서 사는 삶 속에서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가까이에서 살아 숨 쉬고 있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살아있는 작품들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다 보면 나조차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고 작품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이런 환경 속에서 계속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이들은 어떨까 싶었다. 파리 안에만도 수많이 있는 박물관, 미술관들이 있다. 곳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곳들을 다 가보진 못하고 몇 개만 추려 다녀왔는데 아쉬움이 컸다. 다음에 파리를 오게 된다면 그땐 찬찬히 둘러보겠노라 다짐하면서 파리를 뒤로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또 파리를 가게 된다면 가장 큰 작품이라는 '전기의 요정'이 전시되어 있는 파리시립현대미술관을 가서 라울뒤피가 극심한 관절염과 맞바꾼 그의 인생 역작을 두 눈에 담아보고 싶다. 파리를 거닐어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파리의 모습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걸 작품에 담아냈을까 나름의 생각으로 헤아려보는 것도 큰 기쁨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