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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20. 2023

[스포 있음] 머글도 추천하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1부가 막 끝났을 때는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내가 이렇게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나.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연극에 나오는 대사들은 내용 많고 길고 어렵게 느껴졌다. 좌석이 무대와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었음에도 배우들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는 것 같고 모든 캐릭터들이 산발적으로 펼쳐지고 이야기도 산발적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극 중에 나오는 헥터 선생님의 수업처럼 수없는 얘기들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펼쳐지니 학생들이 "우린 헥터 선생님 시간에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던 말처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느끼고 있는 게 뭔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건지 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눈앞에서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보고 있는 건 굉장한 몰입감을 준다. 2부가 시작되니 흐름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건지 연극이 펼쳐낸 얘기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1부보다 훨씬 집중도 있게 극을 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 연극은 참 괜찮은 연극이고,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기에 누구든 한 번쯤은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1980년대 초반, 영국 북부지방 세필드의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는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학생들은 최고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하는데 시험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며 문학을 가르치는 낭만적인 교사 헥터와 오로지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옥스퍼드 출신의 교사 어윈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전혀 다른 두 선생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들 나름의 기준을 찾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헥터를 못마땅해하던 교장이 헥터가 학생들을 성추행 했다는 이유를 들어 퇴직을 권하고, 어윈 역시 학생들과 예상치 못한 관계 속에서 혼란이 가중된다. 이야기의 흐름도 흥미로웠고 연극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참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 좋았다. 12명의 캐릭터는 다 본인들만의 매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을 꼽아보자면 우선 '헥터'. 헥터는 인생을 위한 공부를 추구하는 문학 교사로 고전 인용을 즐겨하고, 가끔 엉뚱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헥터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는데 그는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 했고, 아이들이 최소한의 보루라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랐던 사람이다. 학생들이 문학을 심장으로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스승은 그리 많지 않다. 내 생각엔 이런 교육적 철학을 가진 선생님을 만나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싶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이들을 성추행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생을 위한 공부를 응원한 선생님과 아이들을 성추행한 선생님. 함께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모순을 통해 나는 인간의 이중성을 생각했다. 헥터는 좋은 선생님일까? 그렇지 못 한 선생님일까? 

어려 보이는 외모와 수줍은 성격을 가진 유태인 소년으로 묘사되는 '포스너'도 그의 이중성도 흥미로웠다. 나약하고 유약해 보이기도 하고 순진하고 순수하게 느껴지기만 하던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포스너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밝히기 위해서 상대방을 협박하고 몰래 녹음기도 숨겨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새롭게 고용되어 학교에 온 선생님 '어윈'. 옥스퍼드 출신의 역사학 교사인데 우선 젊다. 냉소적이고 저돌적인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배역을 연기하는 '안재영' 배우님의 특성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나는 어윈의 그 모습이 차가운 느낌, 아이들을 몰아붙인다는 느낌보다는 다른 표현의 애정같이 느껴졌다. 입시에만 맞춰져 있어 아이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요구하긴 했다. 때로는 무리수다 싶을 정도로 학생들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나는 어윈의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그 역시도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약한 모습,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어윈은 학벌을 위조한 사람이자, 동생애자이다. 심지어 좋아하게 된 상대가 '데이킨'이라는 학생인데 어윈의 주저함과는 다르게 데이킨은 엄청나게 저돌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데이킨에게서는 누군가 나를 거절한다고 해서 그게 나를 부정당하는 일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느껴지는데 그런 데이킨의 적극적인 모습이 어윈의 주저하는 모습과 상반된 느낌을 느끼게 한다. (여담이지만 어윈과 데이킨의 둘 만의 대화가 시작될 땐 무대의 공기와 온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하면서도 애틋하기도 한 그 느낌 속에서 나도 동시에 분위기에 몰입이 됐다.)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모습에 몰입하다 보면 연극은 큰 흐름의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툭툭 주제의식을 던져준다. 어윈의 수업 시간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극 전반을 끌어가는 주제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윈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새로운 관점으로 새롭게 반대적인 부분으로 살펴보기를 가르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외치지만 사실 나는 그 얘기에서 삶의 모든 것들은 다각도로 살펴보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무엇이든 반드시 그런 사람, 그런 상황은 없구나.' 생각했다. 모든 인간은 양가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그들 나름의 이중성이 있다. 착하기만 한 사람도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상황들도 양가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그게 인간의 본성임을 그게 삶의 이치임을 이 연극은 잘 드러내주는 것 같았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어윈의 수업에서처럼 토론하고 얘기할 거리들이 많다. 다양한 시각과 각도에서 연극을 보게 된다. 아마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전혀 판이한 해석이 나올 것 같다. 배역을 연기는 배우들에 따라서도 아마 다른 느낌들을 느끼고, 한 번 보는 것과 두 번 보는 것이 또 다를 것이다. 다음에 또 보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또 달라질 것 같다. 이번에 기억에 좀 더 남았던 캐릭터가 그랬다는 것이고, 이번에 다가왔던 메시지가 그랬다는 것이지 아마 다음에 다시 본다면 내 마음과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꼭 한번 더! 보고 싶다. 이 연극.


6월 어느 날, 히스토리 보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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