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잔가지 치기
이런 소식은 여러 번 듣는다고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가슴이 철렁한다.
'대장암 4기'
최근 들어 주변에 이런저런 이유로 사고를 당하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 암 확진을 받은 사람만 두 번째다. 대장암이라는 사실도 가슴이 철렁했지만 4기라는 말에 더 놀랐다.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 상태였다. 그가 작년부터 화장실을 잘 가지 못한다고 얘기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숱하게 있었던 증상을 그냥 넘어갔던 안일함이 암 발견을 늦어지게 했다. 괜스레 병원을 탓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심각한 변비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했던 그는 으레 처방받을 수 있는 약들을 한가득 처방받아서 복용해 왔는데 약을 3주 이상 먹어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았다. 변비가 그렇게 심한 상태였는데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했다. 더 큰 병원으로 빨리 가봤더라면 좀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고 진단받은 결과가 변하진 않는다.
언젠가 암이 발병하는지 발병하지 않는지는 운도 많이 작용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크게만 생각했던 암이라는 질병이 내 주변으로 성큼 다가오니 다른 무게감으로 느껴진다. 암은 멀리 있지 않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암에 걸릴 확률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병마와 싸우기 시작하니 이제야 이런 일들이 곧 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다행히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1차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쳤다. 그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항암치료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웃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멀쩡해 보였던 얼굴과 몸은 살이 쏙 빠져서 양볼이 움푹 패었다. 탱탱하던 풍선 바람이 빠지고 쪼그라들 듯 생기가 빠진 몸은 평소보다 더욱 작게 느껴졌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에 마음이 애잔했다. 그는 처음 의사에게 대장암 소식을 접했을 땐 많이 놀랐지만 이제는 그 멍했던 순간들이 지나가고 현실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노라 말했다.
죽음은 언제나 내 곁에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한 의지가 강렬해진다. 괜스레 지금 잘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지금 당연한 듯 보내고 있는 나의 이 시간이 누군가는 간절히 바랐을 내일일 수 있다는 점을 평소엔 자주 잊고 산다.
매일 새로운 질문들을 보면서 내 생각들을 적어보는 다이어리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If you die tomorrow, how would you like to spend today?
내일 죽는다면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
그래,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은 계속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
내일 죽더라도 아무 미련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막연하기도 하지만 실상 죽음은 가까이 있다.
죽음은 현재 삶을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기폭제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의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은 유명하다. 잡스는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생들에게 3가지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중 가장 마지막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스티브잡스는 생과 사 사이에서 자신을 살펴보면서 지금 살고 있는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살폈고 그런 삶을 살았노라 말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는 마음, 좌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잔가지들을 걷어내고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볼 수 있다.
여러 생각들로 어지러운 마음일 땐 죽음을 생각해 본다. 지금 당장 죽어도 지속할 만한 일인지, 지금 당장 죽더라도 해볼 만한 일인지. 정말 중요한 일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