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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Feb 17. 2024

한 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옛날에 니 장난감 칼 가져다 버린 거... 미안..."

"기억 안 나는데"

"난 기억한다.ㅋㅋ"

"뭘 버렸단 거고" 

"내가 어릴 때 너한테 뭐라고 하고 때리기도 했나?"

"몰라?"

"뭐 서운한 거 없나?"

"없다 갑자기 왜 카노"


경상도 남매의 흔한 카톡 대화 



동생에겐 가끔씩 미안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에 동생이 부모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누나에 비해서 차별받았다고. 그 말이 마음에 걸려 있기도 하고 또 철없을 때 동생한테 했던 행동들도 문득 생각난다. 갑자기 동생이 애정을 가지고 모아둔 장난감 칼을 다 버린다든가 지금 생각해 보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화풀이를 한다든가. 왜 그랬지? 진짜 성격 더럽다 싶은 순간들이 쓱하고 펼쳐진다. 그냥 혼자 짠한 마음이 들 땐 찡하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당사자가 기억을 하건 못 하건 간에 내 기억 속에 그런 장면이 남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동생이 그런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동생은 내 생활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나는 동생 생활에 관심이 많다. 마음이 쓰이지만 눈치 봐가면서 동태를 살피는 정도라고 해두자. 옛날엔 문득 이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동생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대신 죽어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애정하는 사람이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변하는 와중에 어떤 것은 변화한다는 걸 알면서도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동생의 어린 시절 모습을 사랑했던 나는 그 시절 사진을 보면서 향수에 젖곤 한다. 이번 명절 연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누구나 어릴 땐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앙증맞고 귀여웠을 테지만 내 동생은 찐으로 귀여웠다. 정말이다. 동생의 귀여움을 동생 친구의 아빠가 진즉에 알아봤다. 그 아저씨는 사진 찍는 것이 취미였는데 취미치곤 사진을 꽤나 잘 찍으셨다. 보는 눈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그 아저씨가 찍은 사진은 근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 인화작업도 직접 하셨으니 어느 정도 내공은 있으셨던 것 같다. 아저씨는 본인 아들과 딸 사진만큼이나 동생 사진을 찍었다. 동생은 새침한 표정 인가 하면 특유의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진 찍을 맛 나는 모델이었다. 때론 진지하기도 하면서. 어린 나이에도 '얜 귀여우니까 이렇게 사진도 많이 찍히는구나.' 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땡그란 눈 그리고 새하얀 얼굴은 누군가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명절에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동생의 앙증맞음과 그 특유의 표정을 보는데 절로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동생에게서 그때 그 시절의 귀여움을 찾을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또 지금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대로 애정한다. 


이번 명절에는 묻지 않으면 별다른 얘기가 없는 동생을 붙들고 작정하고 대화했다. 아마 나의 끈질긴 구애가 없었다면 빠른 시간 안에 종료되었을 대화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묻고 어떻게 지내는지 묻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 동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이런 대화를 자주 하진 않으니까 좀 색다른 느낌의 시간이었다. 


이번 대화를 통해서 내 동생이 나와 정말 결이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부분들을 더욱 느꼈다. 신선한 자극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애써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그 애는 그냥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속으로 이 정도로 나보다 나을 줄은 몰랐는데 하는 생각까지 했다.  


동생은 현재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게 너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다는 걸 시도해 본 사람들은 알 거다.

감사한 줄 알고 만족할 줄 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날 보면 모든 괴로움의 기본은 지금이 감사한 줄 모른다는데서 비롯됐다. 동생은 이미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 상황을 긍정했다. 만족한다는 건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서 발전이 없는 것 아니냐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령 이런 식이다. 

동생은 집돌이 중에 집돌인데 집 안에서 할 일이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라 혼자만의 시간을 굉장히 즐긴다. 자신의 이런 성향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고 가끔 연결되어 있는 인간관계로 만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본인의 삶을 애정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되는 지점은 어쨌든 지금 본인의 삶을 매우 긍정하고 만족하며 산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삶을 살고 거기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았다. 


또 괜한 비교를 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자신보다 훨씬 더 연봉을 많이 받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친구들은 어떤지를 물어보며 자연스레 이런 주제도 얘기가 나왔다. 나 같으면 잘 나가는 친구와 비교되는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을 테지만 동생은 괜히 그런 걸 가지고 비교하고 기분 상하면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조금 부러운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고 나는 내 인생이 있다는 마인드가 확고했다. 다 장단이 있는 거라고. 그 모습이 정말 쿨하게 느껴졌다.  


메타인지가 좋은 것인지 쓸데없는 곳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본인이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해야 되는 것 지금 당장 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본인만의 기준이 있었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거나 마음을 쓰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성공을 바란다거나 자기계발에 몰두한다거나 열정적으로 일에 임한다거나 하는 청년상과는 거리가 멀 수 있겠지만 자기 인생 자기가 살고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 쓰지 않으며 예의를 알고 경제관념도 있고 적당한 사회생활도 할 줄 아는 내 기준 잘 사는 청년이었다. 뭣보다 마음이 안정적이라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나는 어떨까 되돌아보게 됐다. 나는 성향상 항상 더 나은 것이 없나 살펴보고 지금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들은 당연한 것들로 생각하기 때문에 만족하는 마음을 내기보단 뭔갈 더 갈구하는 마음을 냈다. 이런 성향은 좀 더 나은 것이 없나 보게 되고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은 될 수 있겠지만 욕심이 되면 내적 갈등이 따른다. 


성향은 성향이라서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살더라도 마음의 갈등이 없는 것, 편안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최고 아닌가 싶다. 스트레스를 조금 받더라도 그게 관리가 되는 선에서, 마인트 컨트롤이 되는 선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안정된 마음이 우선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소중한 줄 감사한 줄 알기. 

괜한 비교 하면서 힘 빼지 않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마음 쓰지 않기 


다 내 마음과 상황에 잘 깨어 있으면 되겠구나 싶었다. 


한 수 제대로 배웠다. 

동생이 사준 대방어 짱 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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