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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20. 2024

뒷담화하는 사람 심리

적어도 남을 비난하는 마음은, 안녕!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살갗에 닿는 공기마저도. 

낯선 학교, 낯선 사람들 결정적으로 낯선 언어까지. 

배운 적이 있다곤 하지만 인사와 필수적인 말 몇 마디 할 수 있는 어설픈 수준이었다.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막 도착해 1년 간 살아야 할 기숙사에 발을 들였을 때,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설레는 마음과 더불어 빨리 내가 처한 상황에서 안정을 찾고 싶은 마음에 함께 동기와 기숙사와 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캡모자를 눌러쓴 티셔츠 차림의 남자가 지나가는데 '한국인이다!' 하는 예감이 스쳤다.

정보가 간절했던 나는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인이세요?"하고 그 사람을 불러 세웠다.

예상대로 그는 나와 같은 교환학생이었고 같은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다. 

같은 교환학생의 처지로 초기 정착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때 만남이 계기가 되어 가끔 다른 이들과 어울려 맥주 한 잔 하는 사이가 됐다.

하루는 그가 여자친구와의 기념일 선물을 봐달라면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여자친구 선물로 샀는데 어때?"

기대에 찬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는데 차마 예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하얀 거짓말을 하지 못한 나는 "음...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라는 직구를 날렸다.

그의 표정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지만 애써 내 말을 포장하진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 후 그를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묘한 뉘앙스를 느꼈다. 첨엔 내가 예민한 건가 했는데 분명 처음 만나는데도 나를 다 알 것 같다는 듯 말하거나 행동을 한다든지 내 친구들에게 하는 것과는 다른 태도와 반응으로 나를 대한다든지 찝찝한 부분들이 반복됐다. 상황은 불편했지만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상황이니 이상하다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나만 느낀 건 아니어서 친구들도 왜 저러냐고 물어올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내 험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얘기 들었던 것과는 다른 것 같다며 누군가 귀띔해 줬기에 알게 됐다. 그제야 그간 있었던 상황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이유 없이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던 일은 정말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 경험 이후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기분에 휘둘려 다른 사람 험담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험담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던가.

"자! 지금부터는 다른 사람 이야기는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하지 않기예요~~!"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게 아니었다. 

정신 똑띠 차리지 않으면 금방 놓치고 "있잖아"하면서 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얘기했다가 이제 살펴야지 했다가 다시 얘기했다가 하는 것의 반복.


"자기는 맨날 시간 딱 맞춰오잖아" 

반복적으로 듣는 얘기였다. 어떨 때 저 말이 노골적으로 비꼬는 것으로 들려서 신경을 긁었다.

말의 핵심은 내가 시간을 딱 맞춰오는 것이 문제라는 것.

처음 시간 딱 맞춰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겼는데 상대가 같은 지적을 때마다 반복했다. 같은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되니 듣기 싫은 마음이 커졌다. 

'시간을 딱 맞춰오는 것이 왜 문제인가?', '지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맞춰서 가는데 왜 시간을 맞춰서 간다고 욕을 먹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짜증이 훅 올라와서 누구라도 붙잡고 이 불쾌한 감정에 대해서 하소연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그 사람이 틀렸고 나는 맞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지지받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아마도 나와 비슷하게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만한 사람, 내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줄 사람을 찾아서 "왜 저러는 거야"하면서 말을 늘어놨다.

쏟아내고 나니 당장 속이 시원했지만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은 찝찝함이 남았다.


매번 시간 맞춰서 온다고 나에게 핀잔을 줬던 사람과 가까이서 프로젝트를 함께 할 일이 있었다. 가까이서 살펴본 그는 약속 시간이 30분이라면 20분부터 이미 준비를 마치고 그 장소에 나가 있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10-15분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의문이 풀렸다. 최소 10분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보기에는 시간을 딱 맞춰 등장하는 내가 얄밉게 보이기도 했을 터였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이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린 서로 몸에 익은 삶의 습관과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었다. 

험담을 쏟아내고 난 뒤 내가 내 얼굴에 침 뱉은 것 같은 찝찝함은 아마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험담을 하고 싶을 때 내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나는 어떨 때 왜 험담을 하고 싶은가?


-나의 억울함을 풀고 싶을 때 

-나의 정담함(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때

-공감과 지지를 받고 싶을 때

-속상하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 나는 등 부정적인 마음을 풀고 싶을 때 


당장 눈앞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입이 근질근질하는 욕구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내 마음이 단단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해야 흔들흔들 근질근질 거리는 순간을 잘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한 번도 남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라던 윤동주 지인의 회고가 생각난다. 

그래, 적어도 남을 비난하는 마음으로 하는 험담은 안녕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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