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습관대로 하지 않기 위해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마주친 눈길을 거둬들였다.
시험장에서 마주친 Y와 나는 앞뒤로 나란히 앉으면서도 인사 한 마디 없이 그렇게 시험을 마쳤다.
철저하게 외면했다. 마치 그곳에 서로가 없다는 듯이.
낯선 타지에서 시작한 대학 생활이었다. Y는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다. 조그마한 키에 하얀 얼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단아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Y는 나보다 좀 더 적극적이었다. Y와 함께 학교 생활에 필요한 여러 정보도 나누면서 대학생활을 적응하는데 도움도 받았다. 티키타카가 그리 썩 잘 맞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기 초까지는 분명히 잘 지내던 친구였다. 우리가 언제부터 멀어지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니다. 예상가는 시점이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나도 Y를 의식하고 Y도 나를 의식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애가 나를 견제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한 학번 위의 남자 선배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Y는 본인이 선배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Y의 행동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날은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생일날이었는데 Y와 나는 낮에 그 선배의 생일을 같이 축하를 해주고 헤어졌다. 그러곤 나는 저녁에 집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생일인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지금 00 호프집에 있어. 여기 와. Y도 있어."
"Y가 있다고?"
"어, 연락 왔더라고. 오라고 했어. 올 때 케이크도 가져왔네. 너도 얼른 와"
'Y가 왜 거기에?? 분명 집에 간다고 하고 헤어졌는데, 케이크는 또 뭐야.'
나한테는 집에 간다고 했는데 따로 연락을 하고선 선배들만 모여있는 술자리에 케이크를 사들고 갔다니... 선배의 말을 듣자 서운함과 배신감을 느꼈다. 모르겠다. 그때 그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이야 '어라?' 싶은 미음이 들긴 하겠지만 가서 놀고 싶었나 보지 하면서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을 텐데 당시 나는 Y의 행동이 참 이중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전부터 미묘하게 거슬리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나는 지금이라도 Y와 선배들이 있다는 호프집으로 가볼까 하다 이내 마음을 접었다.
"아니야 나는 그냥 집에서 쉴게. 잘 놀아. 내일 봐"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아마 Y도 선배가 나에게 연락을 했단 걸 알았을 텐데도 연락이 따로 오진 않았다. 난 왜 나와 헤어지고 따로 그 자리에 갔냐고 묻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문제를 정면돌파 하기보단 그냥 외면했다.
마음이 더 멀어졌던 일은 얼마 뒤쯤 일어났다.
그 맘때 나는 한 선배와 썸을 타고 있었고 얼마가지 않아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CC가 조심스러웠던 우린 비밀 연애를 했다. 나는 새내기로 처음 시작하는 연애가 조심스러웠고 그 선배는 이미 CC의 전력이 있는 사람이라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 둘 다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각자 대학 동기들은 물론이고 가깝게 지내는 이들에게도 우리 관계를 비밀로 부쳤는데 나도 당시 Y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Y는 내가 그 선배와 사귀는 사이라는 건 몰랐지만 적어도 내가 그 선배에게 관심이 있는 상태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Y가 슬쩍슬쩍 그 선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좀 묘했다.
가만 들으면 둘이 썸이라도 타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Y를 통해 듣게 되는 선배 행동은 부적절하게 느껴졌고 그걸 나한테 말하고 있는 Y도 부적절하다고 느껴졌다. 뭐 물론 사귀는 사이인 걸 몰랐고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니 Y의 그런 말이 다른 사람 눈에 이상하게 보일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선배를 남자친구로 두고 있는 나는 사정이 달랐다. 내가 사귀고 있는 줄은 몰라도 관심 있는 줄은 알고 있으면서 어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친구로 생각은 하는 건가?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 상황 자체가 짜증스러웠다.
그때 나는 내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Y에게 표현하고 말하기보다는 그냥 감정을 삼켰다. 그게 훨씬 익숙했다. 사실 내 마음이 어떤지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모른 체하고 회피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러곤 Y에게 모든 탓을 돌렸다. Y의 행동이 적절치 못 하다고.
마음속에 미움이 생기니 Y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Y도 날 미워했는지는 모르지만 불편해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서로 웬만하면 말을 섞지 않았고 둘만 있게 되는 상황에서는 본체 만 체 했다. 처음엔 미워하는 이유라도 명확한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Y를 미워한 이유는 흐릿해지고 Y를 미워하고 있다는 생각만 남았다. 감정이 크진 않아도 불편하게 여겼던 마음의 습관이 남아서 함께 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조그만 서운함에서 시작했던 마음이 표현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켜켜이 쌓아뒀더니 미움이 됐다. 내가 이런 패턴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사람에 대해 미워하고 외면한다는 걸 그땐 잘 알지 못했다.
그 후로도 몇 명의 Y가 있었다. 이유가 조금씩 달랐고 상황들도 조금씩 달랐겠지만 Y들에게 내가 냈던 마음들은 비슷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있으면 추측하고 내 식대로 생각하곤 상대방에게 마음의 벽을 쌓는다. 아주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Y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습관이 그렇다는 걸 알게 됐다. 상황에 대한 선호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을 미워할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내가 Y에게 직접 내 감정을 표현하고 물어봤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또 Y는 어떤 생각인지 마음인지 알아보려고 하고 들었다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내 생각에 빠져 당시 Y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돌아봐졌다.
Y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전달하고 자초지종을 물어봤더라면 아마 Y와 나는 다른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미워하는 그 감정이 익숙해서 어떤 상황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나 돌아본다.
내 삶을 거쳐간 Y들은 아마도 억울했을 것 같다. 그냥 자기 생긴 대로 살았을 뿐인데
Y들이 '왜 미워하는데?'라고 반문한다.
미워 마땅한, 싫어함이 마땅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살아갈 뿐이고 그게 조금 안 맞을 순 있어도 마땅히 미워해야 할 이유가 될 순 없다.
내 마음의 습관에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는 희생양 삼아 미워하고 싫어하겠지.
찰나에 일어나는 선호의 마음을 잘 알아차려야 싫은 느낌이 들 때 그냥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확대시키지 않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여전히 잘 되는 것 같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습관대로 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