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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슴 Oct 12. 2023

엄마는 항상 승리한다

아리 애스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




한 산부인과 병원, 고통에 찬 비명과 일사불란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출산의 아비규환에서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려는 외부의 접촉은 총성처럼 태아의 공간을 울린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뱃속 태아가 받는 바깥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된다.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온 아이는 이제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몸에서 분리된 직후부터, 아들과 그 주변을 향한 엄마의 날 선 간섭은 끊이지 않는다.      


엄마에게 아이는 무엇일까. 24시간 한 몸이었던 존재이자 내 몸에 붙어 나를 먹고 자란 생명이다. 심지어 내 몸과 분리된 이후에도 스스로 음식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는 핏덩어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누군가가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그의 생존에만 온종일 매달려야 겨우 자라나는, 입이 지배하는 생. 한 생명의 시작을 오롯이 겪어낸 엄마는 부족하고 미숙한 존재에게 삶의 주도권과 결정을 맡기는 게 영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이더라도 그것을 온전한 자아의 결정으로 존중해주기는 쉽지 않다.     



양육의 가장 큰 목표는 아이의 건강한 독립이다. 심신이 건강한 성인으로서 이루는 단단한 독립. 하지만 어디 말처럼 쉬울까. 최근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금쪽같은 내 새끼><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같은 육아와 가족 관계의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인 이유다. 육아의 어려움을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텐데, 사례를 들여다보면 문제 원인 대다수가 부모의 잘못된 영향력 때문이었다.      





부모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길로 데려갈수록 아이는 점점 나쁘게 자란다. 독립하는 데 중요한 덕목을 잃고, 현재를 위협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얻는다. 영화에서 ‘보’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존재, 남성성을 엄마로부터 거세당한다. 보는 자신을 쫓아오던 괴한을 피해 어릴 적 체벌 받던 다락방(을 닮은 공간)으로 도망치는데, 그곳에서 괴물(그 모습이 꼭 남성의 성기와 닮은!)로 변형된 남성성을 마주한다. 섹스는 나쁜 것, 곧 죽음(아빠로부터 내려온 유전병)으로 여겨져 온 보에게 한 가정을 이루는 꿈은 미련과 절망, 애통이 교차하는 한 편의 연극일 뿐이다.      


다락방의 괴물은 보를 쫓는 괴한을 단박에 죽여 버리지만, 보는 세상이, 미래가, 엄마가 여전히 두렵다. 자기 자아를 펼쳐 보여야 하는 공간에는 항상 건장한 엄마의 존재가 지배자로 우뚝 서 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의 주체 자리에 엄마의 지분이 많을수록 아이의 미래는 아득하다. 엄마라는 절대자는 부드러운 미소로, 호통으로, 때로는 눈물로 아이의 세계를 조각해나간다.      



아이는 엄마를 죽여야 비로소 성인이 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처럼, 어머니를 훼손하고 소환되는 심판대에서 우리는 떳떳할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할 것, 엄마는 항상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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