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어느 고등학생이 손으로 꾹꾹 눌러쓴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에는 아버지의 누런 봉투만큼이나 따뜻한 치킨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편지는 지난해 한 치킨 가맹점 사장님과의 인연을 기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편지에 따르면 A학생(18)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7살 어린 동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이를 속여가며 가끔 택배 상하차 일을 해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이 치킨이 먹고 싶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망설이던 형은 집 주변 치킨집에 들어가 물어봤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5000원에 치킨을 먹을 수 있나요?”
몇 군데의 치킨집을 돌았지만 모두 형제를 내쫓았다고 합니다. 계속 걷던 형제는 우연히 한 치킨집 간판을 보게 됐습니다.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A학생은 편지에서 “쭈뼛쭈뼛해 하는 저희를 보고 (치킨집) 사장님께서 들어오라고 말해서 얼떨결에 자리에 앉게 됐다”며 “(내온 치킨은) 딱 봐도 양이 너무 많아 사장님께 ‘잘못 주신 것 같다’고 하니 ‘치킨 식으면 맛없다’며 콜라 두 병까지 가져와 얼른 먹으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A학생은 내심 걱정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는 “비싼 걸 주고 돈을 내게 하려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면서도 “행복해하며 먹는 동생을 보니 (이내) 그런 생각은 잊고 맛있게 먹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다 먹고 난 뒤) 그제야 저는 계산할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고 나쁜 생각이지만 동생 손을 잡고 도망갈 생각도 했다”며 “그때 사장님께선 활짝 웃으면서 ‘맛있게 먹었어?’라고 물어봤다. (우리가) 5000원이라도 내려는 걸 거절하더니 사탕 하나씩을 주고는 저희 형제를 내쫓듯이 내보냈다”고 했습니다.
A학생은 당시 받았던 감정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는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며 “정이 많으신 분 같았고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참 따뜻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인연은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동생은 치킨이 먹고 싶을 때면 형 몰래 박모 사장님의 치킨집을 찾았고, 사장님은 그렇게 서너 번 공짜 치킨을 내어주었다고 했습니다.
A학생은 편지에 “동생이 언제 사장님 명함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저 몰래 치킨을 먹으러 찾아갔다고 자랑을 하길래 그러지 말라고 동생을 혼냈다”며 “어느 날은 덥수룩했던 동생 머리가 깨끗해져서 돌아온 걸 보고 ‘복지사님이 다녀갔냐’ 물어보니 치킨을 먹으러 간 동생을 보고 사장님께서 근처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까지 깎아준 것이었다. 그 뒤로는 죄송하기도 하고 솔직히 쪽팔리기도 해서 찾아뵙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A학생은 “사장님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멋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동안 동생을 챙겨준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는 “뉴스를 보니 요즘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제일 힘들다고 해서 사장님은 잘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며 “처음 보는 저희 형제에게 따뜻한 치킨과 관심을 준 사장님께 진짜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다”고 편지를 맺었습니다.
편지를 전달받은 치킨 프랜차이즈는 철인7호, 선행의 주인공은 서울 홍대점을 운영하는 박재휘(31) 대표였습니다.
본사 관계자는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학생 편지를 받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싶어 수소문해 봤지만 편지를 보낸 학생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해당 가맹점에 지원 물품을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가맹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박 사장님에게 전해 달라며 기프티콘을 보내기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날 거리를 헤매던 배고픈 형제에게 베푼 치킨 한 마리가 큰돈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김이 모락모락 났을 따뜻한 치킨이 전해준 마음만은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형제는 아마도 그 치킨을 먹고 이웃의 존재를 느꼈을 겁니다. 박 대표의 마음을 받은 형제도 언젠가 어른이 되겠지요. 그들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공짜 치킨을 건네는 근사한 성인이 될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김아현, <[아직 살만한 세상] "그날, 따뜻한 치킨 감사합니다">, 국민일보, 2021. 02. 25.
국민일보는 가슴 푸근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박 사장을 2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코로나 이후 내내 적자여서 가게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고 있다는 그는 “(기사가 나간 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며 “형제가 일찍 철이 든 것 같았다. 잘 자라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도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너무 많은 사람이 가게로 방문해주셨고 전화도 많이 왔습니다. 잔돈을 받지 않는 분, 봉투를 놓고 가신 분이 계셨습니다. 어떤 분은 형제가 오면 또 치킨을 주라며 선결제를 하고 가셨죠. 또 다른 분은 주문하시는 척 들어오셔서는 마스크 2박스를 놓고 도망가듯 나가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부터는 또 이전과 변함없이 열심히 살아가야죠. 내일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할 것 같습니다.”
-치킨집 사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건가요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왔는데 어제오늘 못 나갔습니다. 내일부터는 아르바이트를 다시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거나 브런치 카페에서 양파 까기, 청소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치킨집에 출근해서도 중간중간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정말 크군요
“코로나 전에는 장사가 정말 잘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이 80% 가까이 떨어졌어요. 코로나 이후에 흑자인 적이 없었습니다. 가게 월세, 공과금, 인건비까지 나가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닌 데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정말 답답했습니다. 아직도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가 큰 숙제인 것 같습니다.”
-형제를 만났던 당시 상황은
“그날따라 장사가 안됐어요. 담배 한 대를 피우러 나왔는데 한 형제가 가게 앞을 서성이더군요. 치킨을 외치는 동생과 어금니를 꽉 깨문 형을 보고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가게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 나름의 힘든 사정이 있지만 그 친구들은 더 힘들었을 겁니다.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데 5000원밖에 없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속상했습니다. 누가 봤더라도 똑같이 형제에게 도움을 줬을 겁니다.”
-치킨 양이 많아서 형은 ‘돈을 내라고 할까’ 걱정을 했다지요
“네 맞습니다. 평소 많이 나가는 메뉴를 형제에게도 줬습니다. 사실 그 메뉴가 닭 한 마리 반 양인데 형제에게는 두 마리를 줬습니다. 크는 학생들인데 많이 먹어야죠.”
-동생이 종종 찾아왔다는데 이발도 해주셨나요
“처음 만난 날 이후로도 서너 번 찾아왔습니다. 형이 화장실에 가는 동안 형제의 동생과 눈이 마주쳤는데 아이가 웃고 있었습니다. 그 미소가 너무 예뻐서 동생에게 제 명함을 줬습니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 오라고 말이죠. 하루는 덥수룩한 아이 머리가 눈에 띄더라고요. 바로 미용실로 데려갔죠. 머리를 자르면 더 예쁠 것 같다는 생각에 데려갔습니다.”
-언제까지 형제들과 인연을 이어갔는지, 아직 연락이 없는 건가요
“아직 연락이 없네요. 몇 달을 보다가 날이 추워지고 난 이후부터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형제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형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지를 받고 얼마나 반갑던지. 잘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인데 편지가 정말 큰 힘이 됐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형제가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는 게 느껴집니다. 성숙한 친구니까 뭘 해도 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잘 성장해서 꼭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먼저 본사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본사에서 월세 2개월치와 식자재 비용 등 여러 부분을 지원해주셨습니다. 또 고객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기사가 나간 이유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왔죠.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김아현, <"형제 치킨값 선결제하고 간 고객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2021. 0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