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비는 항상 있었다. 담당했던 지점의 실적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혼자 맥주를 마시곤 했었다. 당시 자취를 하는 원룸 1층에 호프집이 있었고 이유 없이 술을 마시며 취한 채로 종종 잠이 들었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술의 힘을 빌리지 못하면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주말에는 우울감에 시달려 무기력하게 시간을 허비했던 적이 많았다. 1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큰 고비가 2번 있었다면 첫 회사에서 지점장생활을 할 때가 그중 하나였다. 자존감이 그 어느 때보다 바닥을 칠 때였고 그 무엇도 시작할 용기도 의지도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을 하며 맥주나 마시자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 살던 집은 건물 3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올라가는 길에 우연히 원룸 사장님을 만났다. 누군가랑 전화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커피기계 렌탈, 임대 등 여러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는 사장님을 보면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가 봐도 뭔가 이룬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평소 같으면 인사만 하고 지나칠 터였는데 그날은 왠지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원룸에는 대학생 시절부터 살아왔고 내가 취업을 했을 때에도 함께 기뻐해주셨다. 또한 평소에도, 명절에도 따로 인사를 드려서인지 왠지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사장님 맥주 한잔 사주세요"
그렇게 어느 평범한 퇴근길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리가 마련됐다.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어떻게 부자가 되 신건지, 왜 돈을 벌고 싶었는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으나, 나는 딱 한 가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돈이 있을 때랑 없을 때랑 언제가 더 행복하세요?"
내 질문이 식상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평소 생각을 안 해봐서인지 모르겠으나 사장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정리하는 듯 한 표정을 지으셨다. 돈이 있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라고 답했다.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가장 큰 차이점.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때 위로가 됐든, 격려가 됐든,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건네는 돈. 미술을 전공하는 딸의 유학을 보낼 때도, 편찮으신 어머니의 병원비를 될 때에도. 사실 나는 아무런 목표도 비전도 없을 때였다. 그러다보니 매일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감당하기도 벅찼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할 힘도 없었다. 사장님이 마냥 부럽기도 하면서 내 모습이 더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사장님과 헤어지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나도 한 때 취업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도전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다시 되찾고 싶었다. 사장님처럼 당장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어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다면 상처받은 자존감도 회복되고 열정이 생길 것 같았다.
/내 자존감은 어떤 상태인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출신학교에 대해서 직업에 대해서 심지어 부모님의 직업에 관하여 집요하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초면에 말이다. 물론 별 생각 없이 1~2번 질문하수도 있지만 만날 때마다 물어보거나 본인이 원하는 만큼 정보를 얻지 못해 끝까지 물어보는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타인의 학벌과 직업에 예민하게 구는 사람들의 심리는 관계를 형성하고자 할 때 본인이 주도권을 가져가고 싶어 하는 의도가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우연히 한 동기랑 연락이 닿았다. 같은 지역에 살다보니 시간을 내어 만나게 되었다. 그 동기 또한 몇 달 전 회사에 사표를 냈다. 만났을 당시에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얘기를 하다 보니 학벌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중경외시(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중 한곳의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 친구의 출신학교에 관해서는 직접 듣진 않았지만 KY(고려대, 연세대) 중 한 곳에도 합격했으나 집안형편상 4년 장학금을 주는 학교로 입학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사람들과 자리를 갖다보면 출신학교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답변을 해줬다고 한다. 어느 날 한 거래처 대표를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출신학교가 어딘지 질문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답변을 해주는데 그날은 왠지 답변하고 싶지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서울에 있는 학교를 나왔다고 답하자. 서울에 있는 어디학교에 나왔는지 한 번 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동기는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던졌다. “제 출신학교는 왜 그렇게 궁금하게 생각하세요? 혹시 저랑 사업을 진행하시는데 제가 나온 학교가 중요한가요?” 이렇게 되묻자. 상대방은 그냥 그런 뜻은 아니고 별 생각 없이 질문을 한 거라면서 어색하게 넘겼다고 했다. 그 친구는 학벌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이에 관한 본인의 견해를 밝혔다. 상대방의 학벌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2가지 유형 중 하나라고 말이다. 본인이 학벌에 콤플렉스가 있거나 가장 내세울 만한 게 학벌이기에 상대방의 출신학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라고 말이다.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5년도 더 지난일이지만 동기가 했던 말에 여러모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다. 이직을 하며 여러 회사를 다녀보고 사회적인 모임을 갖다보면 상대방의 학벌뿐만 아니라 직업에도 민감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직장생활을 할 때 자존감이 바로 서지 않으면 ‘나는 참 쓸모없는 인간이다’, 라는 생각과 인생이 허무해지고 우울증이 올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다면 본인의 자존감을 어떻게 하면 점검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 《가짜 자존감》의 저자 김태형 작가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상대방의 자존감이 높은지 않은지 알 수 있는 방법을 과시와 우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것을 과시하지 않으며, 내가 남들보다 낫다고 해서 우월감을 느끼는 법도 없다고 했다. 또한 누군가의 자존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확인하려면 그가 과시적인지, 혹은 남들보다 잘났다고 우쭐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신용불량자이면서도 명품가방, 옷 등의 소비를 끊지 못하는 사람, 외제차를 몰지만 월세를 내지 못해 집 주인의 독촉전화를 받는 사람 등 이 모든 것들이 본인의 낮은 자존감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자존감의 진짜, 가짜의 차이는 과시적인지, 우쭐대는지를 보면 알 수있다.
tv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미생>은 직장판 손자병법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현대사회의 직장을 현실보다 더 리얼하고 냉철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데 극중 마부장이라는 인물이 있다. 마초적인 성격과 함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다. 마부장은 자신의 지위와 힘을 과시하기 위해 부하사원들을 끊임없이 통제하려고 본인의 말에 토를 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마부장은 자존감이 무척 낮은 사람이다. 어찌보면 불쌍한 인물이다. 마부장은 회사생활을 하며 성희롱 사건으로 신고를 당하기도 하고 그의 폭언과 폭력에 참다못한 부하직원들의 작은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한다. 예전 직장에서 실제로 경험했던 상사의 이야기다. 부하직원의 연차, 성별 할 것 없이 욕설과 폭력을 휘둘렀다. 그 역시 본인의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드라마 <미생>의 마부장과 정말 닮은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직을 한 후 그 당시 함께 일했던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그 상사의 폭언과 욕설에 참다못한 지인은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그 얘기를 듣고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닌 당하는 사람이 그만두어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당시에 그 상사는 여직원을 폭행해 회사 노조가 들끓고 있으며 대기발령을 받은 상태라고 했다.
/자존감이 낮으면 손해를 보는 건 자신이다/
첫 책을 출간한 이후 취업과 직장생활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면서 사회초년생 또는 직장인들과의 상담을 진행했다. 대인관계, 진로 등의 이유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내 답변들이 그들의 상황을 100% 변화시킬 수 없겠지만 그 누구랑 대화를 할 때보다 최선을 다하고 경청하며 상담을 했다. 상담을 해주면서 느낀 점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를 받아 자존감 회복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서울소재의 병원에서 정규직 간호사로 근무했던 여성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병원에 어렵게 취업을 했지만 근무를 하며 매일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고 전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간호사들끼리 태움(따돌림, 폭언 등)도 힘들었고, 환자들에게 멱살도 여러 번 잡혀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했다.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 날 옥상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며 자살생각까지 하게 된 자신을 보며 다음날 바로 사표를 냈다고 했다.
대인관계, 진로 등의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현재 자신은 전공과 경험을 살려 보험회사 언더라이팅 부서에 취업하고 싶다고 밝혔다. 나는 그녀에게 모아둔 돈이 있다면 평소 가고 싶었던 곳에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나보는 걸 추천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며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쉬지 못했기에 지금 당장 취업을 하는 것보다 자존감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는 힘들지만 멈춰있는 물에는 상황이 다르다.
나 또한 회사를 그만두고 자존감이 무너져 버린 경험이 있었다. 물론그만두기 전부터 바닥을 치고 있었다. 자신감과 돈이라는 가면을 쓰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 신분이 되자 내 진짜 모습이 보였다. 직장을 그만두며 고민했던 진로와 비전을 향해 노력하기보다 당장 취업에 목을 맸다. 만약 이때 자존감 회복을 위해 노력을 했더라면 내 비전을 향해 좀 더 일찍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발전적이고 새로운 걸 시도하기보다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와 미련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길 꺼려하고 우울한 기분으로 매일 시간을 낭비했다. 지원을 한 회사의 서류합격 날짜만을 기다렸다. 운이 좋게 합격해 면접을 보더라도 멍청한 답변으로 횡설수설했다. 간신히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회사와 업종을 바꾸면 삶이 달라질 것 같은 내 생각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걸리지 않았다. 근본적인 내 태도와 생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딜 가든 똑같았다. 내 자존감은 여전히 낮았으며 그로 인해 열정도 에너지도 없는 상태였다. 자존감이 낮으면 가장 손해를 보는 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며 어떠한 도전조차 하지 않으며 자신도 모르게 게을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인생 리부트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자존감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고 생존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