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할부 사이에서
2018년, 나는 두 번째 차를 샀다. 첫 차는 2011년식 K5 하이브리드였다. 실용적이었고, 무난했다. 가족을 태우기엔 충분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계속 움직였다. 조금 더 단단한 차를 타보고 싶었다. 조금 더 안정적인 주행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운전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잠깐의 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벤츠 E클래스를 선택했다. 일부 현금, 그리고 5년 할부. 그때 나는 ‘차를 바꿨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때 나의 소비 수준을 한 단계 올린 것이었다. 처음의 설렘은 분명 진짜였다 벤츠를 처음 몰던 날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문을 닫는 소리, 고속도로에서의 안정감, 핸들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
퇴근길이 조금은 덜 피곤했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다. 나는 운전을 좋아했고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만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 만족감은 분명 진짜였다. 그리고 그 감정은 돈으로 완전히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5년은 생각보다 길다 아이 둘을 키우는 집의 지출은 매년 조금씩 늘어난다. 학원비, 생활비, 예상하지 못한 비용들, 거기에 매달 빠지던 자동차 할부금. 처음에는 괜찮았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고, 아이들이 커가고, 지출이 늘어나면서 그 숫자는 어느 순간 조금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벤츠는 여전히 좋았지만 통장의 잔고는 늘 냉정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좋은 소비와 감당 가능한 소비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잔고장은 거의 없었지만, 큰 수리가 두 번 있었다. 엔진과 벨트 관련 수리.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진행했고 비용은 약 1천만 원. 수리비를 결제하던 날, 마음이 잠시 멈칫했다. “이게 맞나?” 그 순간 벤츠는 브랜드가 아니라 숫자가 되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미 오랜 시간을 함께 달린 차였고, 여전히 주행감은 좋았고, 가족을 태우고 다니기에 안정적이었다. 나는 고쳤고, 다시 탔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그때 나는 ‘포기’ 대신 ‘유지’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20만km를 타고 보니 벤츠는 더 이상 과시의 대상이 아니었다.그저 익숙한 내 차였다. 설렘은 사라졌지만, 편안함은 남았다. 할부는 끝났고, 감가는 이미 충분히 지나갔고, 남은 건 유지와 선택뿐이었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소비는 순간이지만 감당은 시간이다. 직장인에게 고급차란 무엇일까?. 자동차는 자산으로 보면 감가되는 물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줄어든다. 그렇다면 벤츠는 내게 부채였을까. 어떤 시기에는 분명 부담이었다. 하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를 다잡는 작은 동기부여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차가 아니라 내 구조였다. 고정비가 과하지는 않은지, 비상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내 삶의 다른 목표를 해치지는 않는지, 이 세 가지가 흔들리면 고급 소비는 금방 무거워진다. 반대로 구조 안에 있으면 그 소비는 삶의 질이 된다.
2018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벤츠를 살까?
아마도 살 것이다. 하지만 그때보다는 조금 더 여유 있는 구조를 만들고 나서. 지금의 나는 차를 고르는 기준보다 현금흐름을 먼저 본다. 벤츠 20만km는 내게 자동차의 경제학을 가르쳐준 게 아니라 직장인의 자산설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마지막으로 벤츠를 20만km 타면 생기는 일은 차가 낡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생각이 깊어진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비싼 물건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감당하는 나의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지킬 수 있는 선택이 현명한 소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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