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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pr 28. 2024

영원의 숲 #2

"삶이 된 심리학"




  영원은 긍정도 부정도 넘어선 자리에 있다. 긍정과 부정의 정반합적 통합 같은 말장난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는 있게 될 것이라는 낙관주의도, 지금 없으니 영영 없을 것이라는 비관주의도 아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이 무한대라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근대의 낙관적 유토피아론은 시간을 역사라는 이야기로 바꿈으로써, 마치 끝없이 선형적으로 지속되며 무한대로 가용할 수 있는 시간에너지를 얻은 양 영원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개인의 삶을 아무리 역사라는 언어에 위탁한다 해도(ex: 이야기에 내 삶을 담으면 영원히 전해지리라!), 영원을 얻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배웠다.


  영원은 시간을 언어로 속이려 하는 데서가 아니라, 반대로 시간에 대한 정당한 태도에서 출현한다.


  우리가 지닌 시간의 유한성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에서 영원이 비롯한다는 이 말은 고전적이며 또한 역설적이다.


  즉, 가장 오래된 것이면서 가장 새로운 것이다.


  처음 보는 낯선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의 영혼은 이미 익숙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그런 것.


  그런 것에 관한 감수성을 환기할 곳으로 영원의 숲을 조성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것은 다분히 심리학적 기획이다.


  결국에는 심리학은 말해야 할 것이다.


  마음은 영원을 향해 흐른다고.


  그러던 마음이 만나지는 자리가, 아니 순간이, 아니 그 만남 자체가 바로 영원이다.


  우리의 삶은 마음이 영원을 향해 흐르는 그 운동의 과정이다. 만나지지 않아 영원에 도착하지 못했기에, 같은 곳을 계속 헤매며 반복한다.


  그러한 반복도 동일한 지점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나선계단을 타고 발전하는 것이라는 둥, 계속 온전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오히려 결여되고자 한다는 둥, 말은 많지만 말일 뿐이다. 반복을 어떻게든 미학적으로 승화시켜보고자 하는 수사학들.


  거듭 말하지만 반복하는 이유는 어디에 도착하고 싶었는지를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다.


  영원으로 정향된 마음은 반복하지 않는다. 길이 분명해졌기에 아무리 멀어도 그 길은 직선대로다. 선(禪)에서는 왜 직지인심이라는 표현을 쓰겠는가. 도착지가 분명하면 바로 가는 것이다. 도착지에 대한 감각이 없을 때만 표류를 언어로 위안한다.


  더 희망적인 것은, 영원을 향해 바로 가는 마음은 멀리 가게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마중나와있다.


  이쪽에서 자신이 두드리고 있던 문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을 때, 함께 알게 되는 것은 문의 저쪽편에서도 이쪽을 찾아 두드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왔냐고, 잘 다녀왔냐고, 어서 오라는 그 반가운 소리가.


  한 순간도 잊혀진 적이 없으며, 한 장면도 잃어진 적이 없다.


  펫숍 오브 호러즈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나온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모습을 그려주고, 들리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잃어버린 것의 무게를 이 손에 올려놓고 있는."


  자신의 유한한 시간을 자각한 마음은 영원을 향해 바로 이렇게 움직인다.


  하이데거는 이를 본래적인 삶이라고 묘사한다.


  영원을 향해 열려있는 것이며, 열린 손바닥으로 이내 사라질 것들을 받쳐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유한성을 정성스럽게 받쳐든 그 마음을, 영원이 정성스럽게 받쳐들고 있다.


  마음이 시간의 시작에서부터 자신을 받쳐들고 있던 영원을 그렇게 만난다.


  이런 것을 우리는 (본래적으로) 삶이라고 부르며, 삶은 이처럼 영원을 향해가는 여정이다.


  영원을 향하는 그 주체가 마음이라는 것을 밝혀가면서 그 깊이가 무르익어가는 심리학도 이제 삶이라고 하는 것에 도착한다.


  삶이 된 심리학.


  영원의 숲을 이루는 생할양식이다.


  삶은 긍정도 부정도 넘어선 것, 낙관도 비관도 아닌 것, 무엇보다도 역사가 아닌 것.


  삶은 내가 조금씩 나의 유토피아를 건설해가는 서사가 아니다.


  심리학은 이제 이런 것들과 산뜻이 결별하여 고유한 영토에 도착한다.


  마음이 영원을 향해 흐르는 그 향기를 타고.


  삶은 가장 낯설지만 가장 친밀한 어떤 만남의 순간이었다고만 말한다.


  이 세상은 바로 이 눈부신 만남을 위한 영원의 숲이었던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심리학은 삶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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