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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Dec 18. 2024

상담은 그런 것이 아니다 #1

"결국 삶의 문제다"




  어느 날 다시 노트북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내 삶이 어느 정도는 내가 글을 쓰는 일에 달려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어도 내 삶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삶은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다시 글을 쓴다 해도 삶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삶은 그냥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게 내 삶이라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정말 너무 멋진 작가다. 나는 20대 초반에 친구에게 고 이외수 님의 책을 권하며, 힘들게 수고를 하지 않아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그 표현을 대신 먼저 찾아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책을 읽고는 친구 역시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으나 언어를 찾지 못했던 말들이 분명 거기에 있었다고 말했다. 나에게 마루야마 겐지는 바로 그러한 계통의 작가다.


  10년 전에 국내에서 출판된 그의 에세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의 첫 장은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라는 부제로 시작된다. 내가 글을 다시 쓰려고 할 즈음에 그의 책도 재출간되어 마침 내 눈에 들어왔다. 어딜 가든 삶이 따라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딜 가든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삶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된 우리를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내 삶은 나를 반드시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야 할 것은 꼭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나도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해야 할 팔자다.


  헌정하는 마음으로 나는 책 제목을 『상담은 그런 것이 아니다』로 정했다. 이 제목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아주 많이 담을 수 있다.


  분명하게 상담은 나의 인생이었다. 2007년도에 상담대학원에 입학한 뒤로 겨우 18년의 상담자로서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 시간은 나의 전생애와 연동하여 작동하던 시간이다.


  나는 상담이라는 것에 대해 이제 뭔가를 좀 알게 된 초탈한 현자의 입장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회자정리의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으며, 상담에 대한 어떤 소영웅주의적 열정으로 한국 상담계에 일침을 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모든 연극과는 아무 상관없이 삶은 언제나 정직하게 내 앞에 있었을 뿐이며, 나는 내 삶에게로 다가가 마주하여 함께 끌어안지 않고서는 단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다. 나는 바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상담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했던 그 무수한 착각들, 오해들, 또 환상들. 그것들은 동시에 내가 내 삶에 대해 가졌던 착각과 오해 또 환상이었을 것이다.


  상담자로서의 시간들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그 환상들에 도전하며 또 환상들을 포기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흡사 모험의 과정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차라리 '상담자 모험기'다. 어떤 완성된 경지를 이룬 상담자의 자기회고록이 아니라, 대체 어떠한 착각 속에서 표류하며 길을 잃어 왔는지에 대한 방랑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은 언제나 반드시 내 앞에 서있었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굳은 신뢰로. 바로 그 삶을 위한 증언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는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 상담은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이 아니다.

  - 상담은 버티는 일 따위가 아니다.

  - 상담은 평생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 상담은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짓이 아니다.

  - 상담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올바른 연예인놀이가 아니다.

  - 상담은 모든 것을 수용할 컨테이너의 꿈이 아니다.

  - 상담은 당신 얘기가 다 맞다고 해주는 왕비의 거울이 아니다.

  - 상담은 특별한 상처로 특별한 정체성을 만들려는 이들의 패션액세서리가 아니다.

  - 상담은 인격자선비 같은 친절하고 온순한 중재자 모델이 아니다.

  - 상담은 내면의 유아보육사업이 아니다.

  - 상담은 모든 마음아이 같은 것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자기 주장을 하도록 촉구되는 짹짹이 학급회의가 아니다.

  - 상담은 왕자병, 공주병, 연예인병에 걸린 자식을 수호하는 일에 목숨거는 광기의 양육활동이 아니다.

  - 상담은 유교적 도덕주의가 아니다.

  - 상담은 "상담은 그런 것이야."의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불편하거나 반대로 시원할 수도 있는 주제들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지난 10년간 이러한 주제들을 말하면서 점점 더 사회적 힘을 잃어왔다. 식비도 없고 주거를 위한 월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생존조건은 계속 취약해졌다. 억까라고 경험한 적도 많다. 앞으로는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해보았다.


  그러나 내 삶은 바로 이런 것들을 말하라고 한다.


  나는 내 삶만을 따르고 싶다.


  아무 가진 것이 없고 부모도 없는 나에게 어떻게든 미래로의 길을 열어주고 이끌어준 것은 내 삶뿐이었다. 내 삶은 나에게 스승이고, 벗이며, 연인이었다. 나는 실존주의적으로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일이 실존주의라고 불린다는 것을 나중에 배웠다.


  상기한 주제들은 상담자로서 포류하는 동안 나도 무척이나 진중하게 다 해보았던 것들이다. 내 삶을 따르는 대신에 따랐던 그 모든 소재다. 그리고 여지없이 나는 고통받았다.


  언어 자체는 아름다워보이지만 정말로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 그러면서 그것이 고통의 이유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인간으로 하여금 망각하게 하는 것들. 상담은 실은 바로 이것들로부터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 모든 상담에 대한 착각와 오해, 또 환상들이 다 선하고, 사회적으로 지지받으며, SNS에서 압도적 인기를 획득한 입장에서 옳다고 해도 좋다. 나는 이렇게만 말하겠다.


  "상담은 그런 것이 아니다."


  상담이 그런 것이든, 그런 것이 아니든 간에, 삶은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삶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언어로 아무리 승리를 획책해봤자 내 삶은 늘 그 자리에 똑같이 서있다.


  삶은 결국에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직접 오롯이 만나야 하는 그 시간, 그 과정, 그 약속.


  나는 그것을 상담이라고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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