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 김 씨의 매력은 단연, 그의 '우와함'이다.
남자 친구 김 씨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우와’함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김 씨와의 캠핑에서 깨달았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여기저기 다닌 기억 덕분에 캠핑을 좋아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론 캠핑을 할 수가 없었다. 텐트는 고사하고 책상 하나 놓을 자리도 없는 자취생활 9년 차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프리랜서 김 씨를 만난 뒤에야 캠핑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집에 침실 외에 방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물론 그곳은 김 씨의 작업방이다.)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김 씨가 금쪽같이 아끼는 작업방에 캠핑장비를 허락한 그 순간부터 우린 장비를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캠핑 물정 모르던 나와 김 씨는 난생처음 텐트의 가격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린 중고로 간다.”
장비를 편하게 사는 것을 포기한 우린, 각자의 동네에서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핸드폰이 당근 소리를 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했다. 난생처음 타운하우스에 가보기도 하고, 거래를 하러 갔더니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초보운전에게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초보운전에 길치인 나는 거래 때마다 짜증 아닌 짜증을 내었고, 김 씨는 달래기 바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비로소 첫 캠핑을 할 수 있었다.
예전에 가족들과 캠핑을 가면 ‘그냥’ 좋을 수 있었다. 아빠가 쳐준 텐트에 야전침대를 두고 누워서 멍 때리는 게 좋았다. 밥시간이 되면 아빠가 구워주시던 고기와 엄마가 만들어주신 쫄면을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분위기 있게 만드는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의 캠핑 데이트도 그러리라 믿고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한 우리의 캠핑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자리를 예약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캠핑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리가 있는 곳은 허허벌판 공터를 캠핑장으로 둔갑시켜버린 곳뿐이었다. 그 와중에 김 씨는 기적적으로 내가 바라던 ‘숲 속 느낌이 물씬 나는’ 캠핑장의 한 자리를 어렵게 예약했고, 드디어 우린 차 한 가득 캠핑 장비를 넣고 떠났다.
살 땐 몰랐는데, 그렇게 사모은 것들을 차로 옮기기 시작하니 캠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졌다. 역시 길치였던 나는 당연히 길을 헤맸고, 도착했더니 '숲 속 느낌'이던 우리 사이트 앞엔 엄청난 수의 차들과 방방이(우리 동네엔 트램펄린을 그렇게 불렀다.)가 있었다.
어리바리한 둘이 텐트를 치기 시작했는데, 총 2시간 반이 걸렸다. 쉴 시간도 없이 밥때가 되었고, 기대했던 고기는 불 조절을 하지 못해 거의 반을 태워먹었다. 설거지는 힘들었고, 생각보다 사이트 간의 거리가 가까워서 시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마 무시하게 추웠다. 전기장판을 가지고 갔지만, 온도를 최대로 설정해도 주변의 한기 때문에 미적지근한 온기만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이고도 시끄럽고 추웠던 첫 캠핑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김 씨는 말했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나도 답했다. 다음엔 더 깊은 숲 속으로 가자고.
결론적으로 나는, 그 첫 캠핑이 참 좋았다. 김 씨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가끔 “다음엔”이라고 시작되는 카톡을 남기는 걸 보면 그도 꽤 만족스러워 보인다.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내가 일등으로 꼽는 김씨의 매력은 “우와함”이다. 그의 ‘우와함’은 우리의 연애나 데이트가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을 때 빛을 낸다. 첫 캠핑을 떠난 그날도, 방방이와 계곡 바로 앞이라 아이들이 미친 듯이 뛰놀기 좋았던 우리 사이트를 보고 그는 말했다.
“우와, (사실 그의 사투리는 ‘와’에 가깝다.) 우리 자리 좋다. 화장실도 가깝고 앞에 계곡도 있다!”
다 태워먹은 고기를 타지 않은 부분만 발려 먹어야 할 때도, 그는 조신하게 가위질을 하고 나서 이야기했다.
“와, 밖에서 먹으니까 확실히 다르다. 잠깐만 사진 좀.”
추위를 엄청나게 타는 내가 분위기 좀 내보겠다고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내복에 기모 바지, 롱 패딩에 극세사 담요를 덮으며 오기를 부려도 김 씨는 이야기했다.
“와, 너 지금 귀엽다. 잠깐만 그렇게 있어봐.”
그의 ‘우와함’은 그날의 데이트에 있었던 아주 사소한 순간에 감탄하고, 결론적으로 비관적일 뻔했던 나까지 ‘그날의 데이트는 참 좋았지.’라고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너그러운 편이 아니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항상 연인과 싸움이 잦은 편이었다. 데이트가 성에 차지 않거나, 혹은 그의 미숙한 점이 나의 심기를 거스르면 직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너그럽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좋은 데이트와 좋은 연인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걸 무장해제시킨 유일한 사람이 바로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 김 씨다.
김 씨는 매 순간 속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능력자다. 동네 카페에서 본인을 앞에 두고 하루 종일 글만 써도, 카페에 있던 의자가 편해서 책 읽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우리 연애에 뭐든 좋다고 하는 김 씨가 맘에 들지 않았으나, 이내 그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연애 스타일에 매료되고 말았다. 연애를 하면서 편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심심한 연애를 하는 중이란 뜻은 아니다.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솔찬히 재미를 느끼는 방법을 김 씨를 통해 배웠다는 뜻에 가깝다.
꼬질꼬질한 중고 장비로 소박하게 시작하여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을 여실히 체험한 우리의 첫 캠핑은 여전히 자주, 회자된다. 지금은 30분 안에 뚝딱 텐트를 치고 배를 두드리며 쉴 시간이 생겼지만, 어쩐지 그때의 캠핑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그때만 생각하면, "나를 왜 만나"라는 질문에
“나는 너랑 있을 때가 제일 재밌어.”
라고 답하던 김 씨의 말이 진심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