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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l 14. 2020

Dance with me

 나는 그날도 거실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체감상, 내 동작은 현대무용 같으며 지금 나 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퇴근하시며 ‘아빠 안녕’  대신 이 장면을 먼저 목격한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쟤 또 무슨 일 있냐?”



 집에서 뜬금없이 춤을 추는 것이 언제 적부터 버릇이었더라. 그런 나를 보고 퇴근하신 아빠가 대수롭지 않게 무슨 일이 있냐 툭 던지신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할아버지가 술도 안 잡수시고 할머니 앞에서 ‘지기지기’ 같은 춤을 추시는 걸 보면 유전인 거 같은데. 하여튼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런 내가 귀엽다며 나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온갖 사람에게 외쳐대던 K는 나에게 항상 ‘예쁘다’고 했다. 빨갛고 짧은 원피스에 높은 힐을 신고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지금 거리에서 네가 제일 예뻐)



 그는 제대로 된 펀치라인을 날린 것 마냥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에 기분이 더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정적인 기분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그것을 ‘부끄러워서’, ‘이런 칭찬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X에게는 

 “ 아이 뭐야, 그러지 마아~”

 하고 넘어갔다.



 하루는 여자들이 긴 머리를 단발머리로 자른 것처럼 보이게 머리를 묶은 뒤 사진을 찍고 남자 친구들에게 몰래카메라를 하는 것이 SNS에 나오기에 나도 똑같이 X에게 해본 적이 있다. 분명히 길거리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고 말했던 X는 ‘단발머리도 예쁘네~’라고 얘기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그 새끼의 입이 대빨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뭐야, 나한테 얘기도 안 하고 자른 거야? 아니… 그래도 말 한마디는 할 수 있잖아.”



 화가 났다. 그때의 나는 그것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분명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은 확실했다. 곧 전투력을 상실한 나는 벙쪘고 그  벙찜의 시간 속에서 내가 화가 난 이유를 알아내었다. 집에서 허우적대는 모습과 그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의 괴리가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를 만난 후부터 혼자 사는 집에서도 춤을 추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대신 집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뻐 보이기 위해’ 입었던 치마와 딱 붙는 옷으로 꽉 차버린 옷장만 남은 지금 이 상태 때문인 것 같았다. 이제 나는 나에게 화가 났고,  진심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아주 심취하여 춤을 추다가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볼 때와 차원이 다른 수치심이었다.


 물론 이후에 나는 그딴 새끼와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내 집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부모님 댁에 가면 아빠가 다시 ‘쟤 또 왜 저러냐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시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좋아서 다신 예전으로,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것을 망치도록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연애는 필수 사항이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되었고, 나중엔 기피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맨날 똑같은 옷을 입는 허여 멀 건한 남자가 내가 좋다고 했다. 내가 왜 좋으냐 물으니 ‘네가 좀 짱인 거 같아서 좋다’고 했다. 그 말이 좀 짱인 거 같아서 나도 네가 좋다고 했다. 그는 허구한 날 나에게 ‘여보는 진짜 짱이야.’ , ‘네가 제일 짱인거 알지!!’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 그에 나는 엉덩이 춤으로 화답하는데, 그는 정말 엉성한 몸짓으로 그걸 또 따라 한다. “난 그게 안 된다. 짱이다… 춤도 잘 추네…”라고 하면서. 


 김 씨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의 빠방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래 흥얼거리다 못해 열창을 했는데, 그 모습을 보던 김 씨는 다음 노래에 같이 열창을 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헐, 나 사실 누구랑 있을 때 노래 안 해.”

라고 말했다. 그랬던 김 씨는 요즘 유행가를 엉터리 가사로 부르기에 심취해있다.


 하루는 각막에 상처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안경을 쓴 적이 있다. 원래도 작은 눈을 더 귀엽게 만들어주는 두꺼운 안경을 쓰면 화장할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 상태의 나를 데리고 김 씨는 ‘은평 한옥마을’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북한산이 한눈에 보이는 그곳은 정말 아름다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쁜 커플들은 경치가 가장 좋은 테라스에서 사진을 찍기 바빴다. 그들과 북한산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이제는 볼만치 봤다고 생각이 들 때쯤 갑자기 김 씨가 우리도 저기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니, 내가 지금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을 쓰고 앞머리까지 떡이 졌는데 사진을 찍자고? 순간 센스가 없는 남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 씨의 표정이 너무 해맑고 기대에 찬 얼굴이라 개구진 표정을 지어가며 사진을 몇 번 찍어주고 내려왔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그는 나중에 나에게 보내줬는데, 그때 내가 대단한 착각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진엔 앞머리가 잔뜩 떡진 채로 해바라기처럼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맞다. 김 씨는 내가 예뻐서 좋은 게 아니었지. 짱이라서 좋다고 했지.


 그날 저녁 아주 만족한 나는 가장 편한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기쁨의 엉덩이 춤을 추었다. ‘내가 김 씨와 헤어지게 되는 것은 이 엉덩이 춤이 어색해지는 순간이 올 때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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