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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Aug 17. 2020

월리를 찾아라

 우리 엄마는 수많은 ‘동네 아줌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내가 보기엔 지금도 그렇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하니, 변함없이 자상한 아버지의 덕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말 잘 듣는 똑똑한 딸’이었던 나의 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10년 전까지의 나는 재수 없음의 대명사였던 “그 집 딸내미는 말이야,”의 그 엄마 친구 딸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중3 담임 선생님은 다른 아줌마들 사이에 있는 우리 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따님을 그렇게 잘 키우셨어요. 저도 제 자식을 그렇게 키우고 싶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던 엄마는 그 말을 하는 선생님 앞에서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분명히 떨떠름하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류의 난감함은 내가 자라던 동네를 떠나 독립함과 동시에 차츰 사그라들었지만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가 삶의 진리가 된 나는 계속해서 엄마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너는 꼭 아빠 같은 남자 만나라.” 

라는 말을 하는 순간, 내 삶의 진리는 무너졌다.


 그 말은 내 인생 최고난도 미션이었다. 키가 크고 천성이 덤덤하며 가족에게 다정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한 아빠를 만난 엄마는, 특히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넌 꼭 아빠 같은 남자랑 만나라. 키 크고 다정하고 귀엽고 얼마나 좋니.”

 그 미션은 20살 때부터 기를 쓰고 노력해봐도 클리어할 수 없었다. 가끔 그런 말을 쉽게 하는 엄마가 얄미워서 ‘그런 남자는 예쁜 애들이 다 채간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에 적극 동의하며 파안대소할 그녀가 더 얄미워서 꾹 참았다.

월리를 찾아라 중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던 페이지.

 그래서 나는 일단 외형적으로나마 아빠를 닮은 사람을 만나보기로 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안경을 쓴, 딱 ‘월리’를 닮은 남자. ‘월리를 찾아라’에는 아주 큰  2페이지 속에 진짜 월리는 쥐똥만 한 크기로 숨어있고 주위로 그와 비슷하게 생긴 수천 명의 짝퉁들이 휘황찬란하게 서있다. 현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도 잘 못했을 때 진짜 월리를 정확히 집어내며 ‘아빠!’를 외쳤던 ‘월리 신동’은 20살이 넘어서도 수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나의 월리’를 잘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참으로 우스운 생각이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월리 신동은 신기하게도 수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월리를 닮은 사람을 잘 찾아서 열심히 꼬셔내긴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엔 월리를 닮은 이상한 놈, 나쁜 놈이 차고 넘쳤다. 이상하게 월리를 닮은 좋은 놈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 와중에 합정 교보문고에서 월리를 만났다. 합정역에서 내려 교보문고의 메인을 가기 위해선 통로를 주욱 지나쳐야 하는데, 항상 중간에 아이들을 위한 외국 장난감과 놀이책이 있다. 월리 찾아라도 항상 그곳에 있다. 반가운 마음에 책 한 권을 들고 월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월리 신동’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이제는 그게 쉽지가 않았다. 어렸을 땐 분명히 단번에 ‘아빠!’하고 집어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지났고 결국 어렵게 찾아내었는데, 찾고 보니 월리는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과 참 다르다. 이렇게나 다른데 왜 찾기 어려웠던 거야?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는 진짜 신기하게  스윽 함 보더니 ‘아빠!’하고 집어내더라니까.”

 성인이 된 나는 이제 ‘스윽’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성인이 된 나는 진짜 월리를 찾으려고 책 귀퉁이부터 꼼꼼하게 따져보았기 때문에 월리를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 엄마가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라는 미션을 줄 때마다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근데 어쩌니. 네 아빠 같은 사람은 또 없을 텐데 홍홍홍”

 맞다. 우리 아빠는 우리 아빠였고, 아빠가 내 아빠가 된 이상, 월리를 닮은 좋은 남자는 이제 끝이다. 나는 나대로 인생에서 스윽 함 보다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아빠!’ 대신 ‘너!’하고 집어내면 될 일이었다.  


 그 까다로웠던 ‘아빠 같은 조건’을 포기했다고 해서 나에게 연애가 수월해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나에게 좋은 사람은 엄마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제는 조건 찾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알고 보니 나는 그의 키나 안경의 유무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대신 첫 데이트에 구겨진 옷을 입고 오는 건 참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웃는 게 어색하면 정이 떨어지는, 엄마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젊은 날 중에 너무 많은 시간을 월리를 찾는 데 사용한 것 같아 그것은 좀 후회가 된다. 이제는 좋은 사람 찾는데 시간 쓰지 말고, 그동안 방치해왔던 나한테나 시간을 써보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다가 주변 한 번 스윽 보면 ‘너다 너!’하고 외칠 일이 생길 거라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일이 앞으로 없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보장도 없긴 한데, 그럼 그냥 나 혼자 더 멋지고 좋은 사람으로 늙어가면 될 일이다.라는 사상초유의 다짐을 하게 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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