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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Oct 05. 2023

아이는 항상 달리는 말을 그렸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10살이면 공부머리에, 성격까지 완성된다고 떠드는 세상이다.

교사인 내가 보기엔 10살도, 아니 13살도 그저 어른들 말에 흔들리는 아이들일 뿐이다.

30이 넘은 나도 귀가 팔랑거려서 간질거리는데 아이들이라고 덜 할까.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은 죄가 없다.

하지만 어른들은, 특히나 아이가 가까이 있는 어른들은 말을 조심히 해야 한다.

어른들의 말은 죄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의 귀는 언제나 열려있고 담은 말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는 말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다.

어떤 주제를 주건,

그게 국어시간이건, 미술시간이건, 심지어 사회 시간이건,

그에 상관없이 달리는 말을 그리는 학생이 있었다.


역동적인 말에 아이는 모든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이건 오늘 읽은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는 그림이에요.

이건 뜨거워진 지구에서 달아나는 말 그림이에요.

이건 저를 표현하는 말이에요.

나는 그 아이의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아이의 보호자가 하는 말에는 할 말이 많았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교사인 나에게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기한을 놓친 이벤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거절했다.

보호자는 즉시 담임인 나를 건너뛰고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담임이 제대로 해당 이벤트에 대해서 안내하지 않았다.

담당 교사가 해당 이벤트를 공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닦고 읽어보아도 우리가 의무적으로 그 행사에 대해서 알릴 책임은 없었다. 다만, 교육청은 보호자의 손을 들었고, 이미 접수 기한이 넘은 시점에 그 보호자의 뜻에 따라 기한을 늘여주겠다고, 작품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시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관리자는 내게도 책임이 있다며 죄송하다는 의사를 확실히 전하라고 했다.


말.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말을 좋아하는 그 아이를 위해 하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그저 말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니까.

달리는 말.

아이가 그리는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보호자는 알고 한 일일까.

달리는 말.

아이가 그리는 그 말은 아무 돌부리도 없이 초원만을 달리는 말이 아닐 것이다.

돌부리가 있어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나아가는 말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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