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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Dec 08. 2023

신혼이라는 상태

결혼의 시작은 모두 다른 모습이다.

나는 신혼이다. 그리고 이 신혼이란 상태라 함은 ‘인생의 짝을 만났다.‘라는 믿음과 안정감에 뒤통수를 맞으며 인생의 짝은 아무나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부부. 그것은 철저히 노력과 투쟁 그리고 엄청난 인내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신혼은 앞으로 나아갈 험난한 과정에 앞서서 합의를 보는 기간이었다. 연애 3년 동안 단 한 번도 화를 내 본 적이 없던 남편 김이 최초로 화를 내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했고, 저녁에 각자도생 하는 우리 둘을 보며 이게 맞나? 모름지기 신혼이라 함은 소파에서 부둥켜안으며 히히덕거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나 우린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내린 결론.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이토록 지리멸렬한 두 사람에게 합의가 필요한 시간이 우리의 신혼이고 진정한 짝으로 거듭나려면 이건 시작에 불과할 거라는 점이었다. 그 충격적인 사실에 낙담을 하고 있을 때쯤, 김에게 일이 일어났다. 매일 보던 그의 눈에 생기가 없어지고 얼굴빛이 유독 푸석해 보였다. 김은 요즘 일이 많고,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거라 했지만 나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병원 회피자의 팔을 붙들고 당장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대학 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대학병원의 의사도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김은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신경 쓰이는, 평생의 관리가 필요한, 희귀 질병자가 되었다.

“속아서 결혼했다.”

김에게 뼈가 담긴 농담을 건넸다. 연애 때는 몇 년 동안 김이 아픈 걸 본적이 거의 없었다. 오죽했으면 친구들이 저렇게 대충 사는데도 멀쩡한 걸 보면 “인간 자체가 강하다.”라는 의미로 “인. 자. 강“이라 불렀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멀쩡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저 그땐 20대라는 사기 같은 나이가 커버를 쳐줬을 뿐, 김은 30대가 시작되자 대충 산 테가 온몸에 나기 시작했다.

내 농담에 김은 대답했다.

“나도. “

맞다. 사실 나도 할 말이 없다. 결혼 전엔 명랑하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는데, 지금은 무기력에 휩싸여 회사도 못 다닐 정도로 아무것도 못하고 혼자 오래 두면 위험한 우울증 환자기 때문이다. 나 역시나 삶의 무게가 더해지자 누구보다 약했던 마음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그건 고스란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버렸다.

 김의 병이 확실시된 날, 우린 아무렇지 않게 근교의 예쁜 카페를 찾아가서 커피에 맛있는 디저트를 먹었다. 김에게 수술까지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은 내게 요즘 먹는 약이 잘 맞아서 내가 잘 자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래서 요즘, 우리의 신혼은 이런 모습이란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신혼이란 상태는 다시 상대를 새로 알아보는 일이다. 말만 들어선 연애 초반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설렘이 30 정도고 어이없음과 황당함이 70 정도라는 점이 다르다.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은 초반 연애와 달리 신혼은 같이 살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과 무의식 저편까지 보여줄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만 해도 당황스럽고 적응이 안 되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에겐 건강과 가족, 미래라는 이슈까지 생긴다. 내가 이걸 어떻게 평생 짊어져야 하나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김과 헤어지는 일은 없으므로 어쨌든 둘이 해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점에서 우리가 진정 결혼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되어 함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연애 때 미래를 그리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연애 때는 희미한 안갯속에 감춰진 달콤한 결승점을 찾는 기분이었다면 부부의 미래는 끝도 없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다. 잔잔한 파도부터 거센 파도까지 그 바다에선 다양한 일이 일어나지만 가끔 윤슬도 보고 물고기도 잡아먹으며 어찌 됐든 함께 살아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걸 깨닫는 시간이 아마 신혼이지 않을까.

 김은 이제 나의 팬티를 어떻게 개어야 하는지 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잘 수 없던 나는 이제 코를 골아대는 김과 함께 잠에 들 수 있다. 2주 뒤면 또 김의 손을 잡고 복잡하기만 한 병원과 약국에 가야 한다. 김은 매일 내가 잠들기 전에 약을 챙겨주고 내가 병원에 빠지지 않도록 스케줄을 확인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는 저녁에 별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하지만 나는 김이 좋아하는 반찬을 요리하고 김은 나를 위해 사과를 깎아준다. 우리는 잔잔하고 조용하게 부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잠시 신혼이라는 환상에 빠졌던 나를 반성한다. 아니, 미디어와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떠들어 대는 신혼과 우리를 비교했던 나를 반성한다. 신혼은 생각보다 험난하고 힘들다. 그리고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신혼이라는 상태는 각각의 부부들에게 모두 다른 결로 흘러간다. 우리는 그 물살을 타고 부부의 세계에 잘 흘러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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