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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18. 2024

비 오는 날은 어떠한가

자영업자에게 비는 끔찍하다.


오늘은 비 오는 날, 카페 하는 사람 더군다나 그냥 카페도 아니고 책방을 함께 하는 사람에겐 최악의 날씨다. 보통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따사로운 볕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러 오신다. 배경에는 커다란 책장이 있으므로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그러나 어두 칙칙한 흐린 날 거기에 비까지 온다면 이건 다 말짱 도루묵이다. 사람들은 비나 눈이 오면 굳이 책을 읽으러 책방에 오지 않는다. 이런 날은 그저 어쩌다 오실 손님에 대한 희망으로 애꿎은 전기세와 수도세만 낭비할 뿐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흐린 날을 싫어했다. 쨍한 해가 뜬 날에도 짜증 나는 일이 불쑥 일어나기 마련인데, 흐린 날은 머피의 법칙처럼 기분 안 좋은 일이 허다했다. 차가 없었을 땐 대중교통에 우산을 들고 타면 아무리 조심해도 옆 사람이나 내 우산에서 물이 튀었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종일 입어야 하는 교복 치마와 양말이 젖기라도 하면 그 꿉꿉한 냄새와 촉감 때문에 정말 짜증이 났다.      


 차가 생기고 외향인에서 내향인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뭐라도 내리는 흐린 날은 그나마 나의 호감을 사기 시작했는데, 그런 날은 꼼짝도 하지 않고 직장과 집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것들을 감상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것은 떨어지고 있지만 나는 실내에 있다는 안정감, 그 느낌은 참 따뜻하고 시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부유한 감성은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인에 한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직장을 관두고 각박한 세상에 그대로 몸을 던져버렸다. 책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영업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덕분에 비 오는 날마다 그때 입었던 내상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직장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너무 억울했다. 특히 어쩌다 일 때문에 허리에 파스라도 붙이는 일이 생기면 그게 너무 억울했다. 지금은? 파스를 붙여도 좋으니 제발 일하고 싶다. 특히 흐린 날은 전신이 전날 노동의 여파로 전신이 쑤셔온다. 그때 생각한다. 제발 이 고통을 몰아치는 손님으로 잊고 싶다. 더한 고통으로 이 고통을 잊고 싶다. 열심히 일해서 고통을 잊고 싶다. 나란 사람의 그득한 욕심과 간사함을 느끼며 출근한다.     


 나는 이제 안정적인 직장인에서 불안정하고, 유명하지 않은 자영업자가 되었다. 그 사실을 비가 내리는 날이 확실히 느끼게 해 준다. 예쁜 카페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아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면 아득해진다. 저건 비일까, 차마 흘리지 못하는 내 눈물일까. 둘 다겠지. 이런 날은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책으로 둘러싸이길 바랐던 나의 로망도, 커피 향이 그윽한 카운터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생계 앞에 장사 없다. 엄마는 그래서 그렇게나 뜯어말렸겠지.     


 누군가는 이런 것도 감당할 자신 없이 시작했냐고 하겠지만, 나는 알고도 있고, 자신도 있어서 시작했으나, 슬픔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답하고 싶다. 나의 자신감과 확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비가 올 때마다 느낀다면 슬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다시 직장에 돌아가지 않고 이 위태한 자영업자의 길을 계속 걷는 것은 이 궂은 날씨에도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이 선사해 주시는 위로와 주체적으로 느끼는 책임감 때문이다. 지금 느끼고 있는 책임감은 사람들이 안정적이라고 말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선택했던 직장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류의 것이다.     


 나는 직장인과 자영업자 그 갈림길에서 (남편을 제외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자영업자의 길을 걸어버렸다. 직장인의 길에서 보았던 자영업자의 길(특히 책방과 카페)은 유채화 같은 아름답고 입체적인 풍경이었는데, 막상 직접 걸어보니 여긴 길도 없고 생존하기도 힘든 하드코어 레벨의 정글이었다. 원래 아무것도 개발되지 않은 대자연이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이 사실을 잠시 잊었던 거다. 뭔가 길이 있겠지 생각했는데 길은커녕 내가 처리해야 할 수풀 더미만 가득했다.      


 그러나 모든 여정의 흔적이 내가 고른, 내 것이라 생각하니 모든 것에 애정이 들어있어서 포기가 안 된다. 어떻게든 좀비같이 살아남고 있다. 내가 선택한 책임감에는 끈질긴 생존력이 깃든다는 것을 나는 이 길을 걷고 나서 알았다. 주체성과 책임감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생각해 보니 뭐든 바라만 볼 때 아름다운 것이었다. 직장인의 길도 그렇고, 자영업의 길도 그렇고, 비 오는 날도 그렇다. 다만 나란 인간은 직장인의 가파른 돌산보다 자영업의 정글에서 헤쳐 나갈 때 좀 더 희열을 느꼈달까. 돌산이나 정글이나 둘 다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힘들지 않은 인생은 없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어떠한가. 이 초보 자영업자는 그냥 비와 같이 울어버리련다. 속 시원히 울고 내일의 해가 뜨길 기다리자. 별수 없다. 비가 오고 손님이 없는 오늘도 잘 살아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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