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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Nov 25. 2024

인자강의 투병기

하루 아침에 입원한 남편. 언제 퇴원할 지 미지수.

 “알고 보니 흡혈귀였구먼.”

 남편은 희미하고 머쓱하게 웃었다. 헌혈은 할 줄만 알았지, 우리가 그 수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최근 온종일 남편의 열이 떨어지지 않았던 적이 있다. 무딘 남편은 어지럽고 열이 나는 것을 그저 “오늘 좀 피곤하네.”라고 말하기에 책방 행사로 바빴던 나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움을 호소하자 그의 이마를 짚었고, 저녁에서야 ‘이건 독감 아니면 폐렴이다.’라는 확신으로 저녁까지 문을 연 소아과에 성인 남성을 데려갔다.


 소아과에선 근처 큰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다. 근처 큰 병원은 원래 다니던 더 큰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다. 남편은 독감도, 폐렴도 아니었다. 적혈구가 실시간으로 파괴되어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더, 더 큰 병원에서 급하게 남의 피를 수혈받고 새벽 내내 30분에 한 번씩 열과 혈압을 쟀다. 수혈하는 동안 열이 나면 멈추기를 일쑤, 겨우 한 팩을 다 맞으니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우리는 밤새 잠도 청하지 못하고 오직 그의 몸이 견뎌주기만을 바라며 새벽을 버텼다.     




 남편은 자가면역질환 중 ‘용혈성 빈혈’을 앓고 있다. 적혈구가 비정상적으로 파괴되는 병으로, 보통은 스테로이드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나아지는 것이 보통이라 올해 초부터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스물네 알, 독한 약 한 움큼을 안타까워하던 사이 남편은 잘 견뎌줬고, 약의 개수를 점차 줄이다, 지난달에는 한 알로 줄였다. 

 “근데 이번에는 수치가 안 좋아서 네 알로 다시 올렸어.”

 그래, 그 정도가 어디야. 단박에 좋아지지 않을 거 우리도 알고 있었잖아. 내년에는 약 없이 지낼 수 있을 거야. 그 독한 약을 끊어낼 수 있을 거야.      


 그는 강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그 흔한 감기도 잘 걸리지 않을 만큼 몸도 튼튼하고 인생사 큰일에도 정신적 타격이 없는 사람이라 별명이 ‘인자강(인간 자체가 강하다.)’이었다. 인자강의 요건 중 ‘신체적 튼튼’ 조건이 깨졌던 올해 초,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온몸이 퉁퉁 붓고 상상할 수도 없는 피로가 몰려왔음에도 다행히 그에겐 정신적 타격이 크지 않았고, 그는 그나마 ‘정신적 튼튼’을 지켜내며 잘 견뎌줬다.     



 하지만 몸의 사정은 달랐다. 세 번의 수혈도 그의 적혈구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몸을 지탱해주진 못했다. 첫 번째 피를 꽂았을 때, 당연히도 우린 곧 이 병실에서 첫 번째로 퇴원하는, 그렇게 스쳐 지나간 젊은 애들쯤이 되리라 생각했다. 두 번째 피를 꽂게 되었을 때 동생에게 반려묘 새치를 부탁하고, 시동생에게 부탁해서 잠시 교대를 한 후 작은 캐리어에 간단히 짐을 싸 왔다. 세 번째 피를 꽂게 되었을 때 담당 간호사분들이 우리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기 시작했고, 같은 병실의 보호자들이 ‘안타까운 젊은 부부’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분의 수건과 옷을 챙긴 짐 가방이 하나 더 늘던 날, 의사는 우리에게 항암제를 권유했다.     


 비급여 항목의, 면역체계를 억제한다는 항암제. 남편은 항암제라는 이름 앞에서 멈칫했지만, 병간호를 위해 장기간 책방을 떠나 있던 나는 ‘비급여’라는 대목에서 잠시 아니 솔직히 오래 멈칫했다. 그날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승강기 앞에 놓인 휴게 의자에서 한참, 의미 없이 휴대전화 게임을 반복했다. 재미 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그 새벽을 애써 감추고 나는 남편을 설득했다.     



 그의 병을 처음으로 알아챈 건 나였다. 평소와 다르게 안색이 노랗기에 간이 안 좋은 것 같으니 근처에 용한 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병원을 싫어하는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오늘 그가 항암제를 맞았음에도 차도가 없어서 퇴원일은 또다시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래서 나는 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자강, 당사자는 내일의 병원 선택 식단을 신중히 고르는 데 여념이 없다. 입원하고 온종일 붙어있으니 다시 깨닫는다. 남편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겁나지만 짜증 내지 않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게 ‘강함’의 비법인 걸까. 인자강은 그렇게 내일 저녁 식단을 부대찌개로 선택하시며 기대에 찬 잠을 청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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