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렇게 어렴풋이 (혹은 다양하게) 정의된 사랑을 완전히 뒤집는 일은 더욱 어렵다. 사랑의 고정된 관념을 뒤집고 깨부수는 작업을 예술적 실험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사랑에 대한 파격적 실험보다 정의된 사랑을 위한 안전한 변주를 선택하는 이들의 수가 압도적인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사랑은 대체로 위아래가 뒤집힌 사랑이 아니라 좌우로 흔들리는 사랑이다.
사랑을 꼬리표로 달고 나오는 저마다의 작업에 큰 감흥을 기대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들지만, 아름답다 흔쾌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곱게 변주된 사랑의 시들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그런 시들은 평범한 단어를 정갈하게 배치해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편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충실하고, 우리는 그 사랑의 시 위에서 좌우로 흔들리며 즐거워한다.
박준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를 읽는다.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 「선잠」 중에서
어느 연인이 있다. 어느 연인은 여느 연인처럼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을 하며 살기를 꿈꾸는 이들이다. 그렇게 특별할 일 없이 같이 먹고, 자고, 노래를 부른다. 굳이 특별하길 바라지 않은 채, 평범한 일상이 잠깐의 꿈처럼 깨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에 든 것도 잊고 / 다시 눈을 감는 선잠”에 빠져든다. 큰 흔들림 없이 이토록 잔잔한 사랑에 감사하는 연인은 아마도 “온몸으로 온몸으로 /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84p」)을 되찾은 이들일 테다. 처절한 혼자를 견뎌본 이들이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격렬하고 특수한 사랑을 결코 바랄 리 없다. 그들의 시간에서 사랑의 평범성에 대한 조롱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니, 시인은 그런 사랑을 오히려 예찬한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 「그해 봄에」 중에서
당신의 손목에서 “검고 붉은 테”를 보았을 때 내가 당신에게 느꼈던 첫 마음은 이것이었을 테다.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원망. 나의 투정에 대한 당신의 답은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는 웃음 섞인 농담이다. 그 농담이 어쩌면 당신의 확신이기에 나는 그제야 안심한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을 당신은 견뎌냈을 테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처절하게 버텨준 덕분에 함께 통닭을 먹는 지금 이 순간이 생겨났으므로, 이제 당신은 아프게 “사랑했던 사람 대신” 마주 앉은 나와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 순간을 목격한 시인은, 이제야 시작된 가장 평범한 사랑을 위하여, 미세한 흔들림마저 멈춘 채 “더 오래여도 좋다는 듯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메밀국수 –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바라본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 「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중에서
평범함에 기대어 서는 시인의 사랑은 연인의 그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사랑의 변주를 사람을 향하여 넓혀 간다. 사랑의 확장 공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진동이 생겨날 테지만, 그 진동에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하는 일은 없도록, 격동을 적어놓은 “종이를 구겨버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박준은 언제든 사람을 사랑을 새로 받아 적을 준비를 한다.
몇 해 전 엄마를 잃은 일층 문방구집 사내아이들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잠을 잔다 벌써 굵어진 종아리를 서로 포개놓고 깊은 잠을 잔다 한낮이면 뜨거운 빛이 내리다가도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들면 덜컥 겁부터 먼저 나는, 떠나는 일보다 머무는 일이 어렵던 가을이었다
- 「능곡 빌라」 전문
“엄마를 잃은 일층 문방구집 사내아이들”에 낮잠에 “찬바람”이라도 불까 덜컥 겁을 먹는 시인의 시선이 있다. 그런 이가 격렬히 뒤집히는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을 리 없다. 박준의 시는 다만 미동할 뿐이다. 이것은 부족한 시작(詩作) 능력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넘쳐나는 박애 능력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토록 미약하게만 흔들리는 사랑이, 어쩌면 작은 진동에도 깨져버릴 누군가를 긍긍하는 착한 마음이 박준의 시집에는 있다. 우리는 그의 시집을 깨끗한 마음으로 자꾸만 읽는다. 뒤집히기 보다는 가만히 흔들리는, 그렇게 잔잔한 사랑의 변주곡을 좋아하는 건 시인이 아니다.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