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
가을은 수상하다. 더위와 추위의 사이에, 빨강과 노랑 사이에, 바람과 정적 사이에 놓이는 계절이다. 아늑하기도 하고 애매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가을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게 스쳐가는 계절이며, 누군가에게는 너무 깊게 앓고 지나가는 계절이다. 이토록 터무니없는 계절이 오면 생각나는 몇 개의 목소리가 있다. 그중 하나는 단연 김광석이다. 분명히 김광석을 사랑했던 이가 만들었을 공연을, 여전히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본다.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을 본다.
1994년 봄. 김광석을 동경하던 신입생 풍세(김소년)는 서인대학교 동아리 ‘바람 밴드’의 오디션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불러 보컬로 합격한다. 역사와 전통이 전혀 없다며 스스로를 자조하는 바람 밴드이지만 함께 음악을 하는 순간 그들의 표정에는 감격이 차오른다. 작은 무대 위에서 김광석의 음악을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들은, 여느 청춘과 마찬가지로, 그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나간다.
이야기의 어느 순간마다 풍세는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를 듣고 우리는 어쩐지 자꾸만 울컥하게 되는데, 목소리에 묻어나는 진실함마저 김광석을 닮은 그의 노래가 우리를 어떤 시간 속으로 데려가기 때문일 테다. 예컨대 풍세와 고은(윤채린)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 부르는 <너에게>의 가사는 풋풋하고 조심스러운 두 사람의 마음을 완벽히 갈음하고(“내 여린 마음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줄게”), 영후(윤장현) 모친의 장례식에서 영후의 아버지가 부르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대사를 생략하고도 감정을 완벽히 전달한다(“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그러니까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은 논리와 개연으로 흘러가는 서사가 아니라, 추억과 감각으로 쌓아올리는 이야기다.
세월이 흐르며 바람 밴드는 흩어진다. 이들의 해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멤버 겨레(김주찬)의 죽음이다. 한총련에 가입해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겨레의 죽음은 캠퍼스의 낭만을 삼키며 여전히 살벌했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비판인데, 그 현장 속에서 풍세가 부른 <부치지 않은 편지>는 당시 상처 입었던 모든 젊음을 위한 헌사이자 앞으로 상처 입을 또 다른 젊음을 위해 미리 건네는 진혼곡처럼 들린다. 청춘의 열정이 식어가는 순간과 겹친 김광석의 죽음은 우리에게 좌절을 안긴다. 다만 그 좌절을 딛고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 역시 그의 노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바람 밴드가 다시 모이던 날 그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김광석은 그의 부재를 통해 우리를 한번 무너뜨렸으며, 그 간절한 그리움으로 우리를 더 강하게 일으켜 세우기도 했던 것.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일어나>) 우리 중 많은 이는 김광석에게 청춘을 빚졌다.
우리는 청춘을 봄이라는 계절에 자주 비유한다(실제로 청춘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을 뜻하므로). 하지만 우리의 청춘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애매하고, 모호하며, 슬프면서, 아늑하고, 쌀쌀하면서, 따뜻한 것이 한데 뒤섞여있다. 언제나 혼란스러운 청춘의 모양, 어쩌면 가을이야말로 더 정확한 청춘의 은유가 아닐까. 그러니 지나간(혹은 지나갈) 청춘을 말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청추(靑秋), 라는 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청춘이 지나간 다음 청추가 온다고. 그러한 날들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고.
사랑과 이별, 희망과 좌절, 삶과 죽음, 위로와 정의.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은 김광석의 노래들을 각자의 인생 위에 입혔는데, 모두의 인생이 노래 속에 벌써 다 있다. 김광석은 위대한 청추의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