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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소 Oct 29. 2018

'위대한 멈춤'에 관하여

프레소의 독서일기 3탄

      위대한 멈춤이라는 책은 나보다 먼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작가들 (박승오, 홍승완)의 치열한 자기 성찰과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아프리카에서 4년간의 모험 이후에 앓고 있는 지독한 열병처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내가 어느 순간 평범한 사람에서 감히 비범한 사람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책에서 제시된 9가지의 방법 (독서, 글쓰기, 여행, 취미, 공간, 상징, 종교, 스승, 공동체)을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개된 방법들 중에서 인상 깊거나 관심이 가는 항목들에 대한 생각을 간략하게 쓰고자 한다.


    '독서' - 인생을 살면서 그래도 유일하게 꾸준히 해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독서가 아닐까 싶다. 중고등학생 시절 만화책과 무협지로 시작해서, 어린 마음에 남들에게 좀 지적인 모습으로 비치어지고 싶어서 각종 인문학 서적들을 읽었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 온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독서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활자를 읽어 내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고 있다. 그 이유는 어릴 적부터 책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고 집착이 심해서, 읽을 때 밑줄을 치거나 책의 귀퉁이를 접어서 표시를 한다는 등의 방법을 철저히 피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책을 첫 장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닌, 작가의 생각과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독서의 방법을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겠다.


    '글쓰기' - 책에 있는 9가지의 방법 중에 나와 가장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활동이다. 글쓰기는 어릴 적 학교 숙제로 제출했던 일기, 대입을 위한 논술 준비 연습, 업무 중에 사용하던 이메일과 보고서 작성하기가 전부였다. 2016년 귀국 후 취업 준비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글쓰기 수준이 정말 형편없다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유는 당연하지만 단 한 번도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해서 제대로 노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뇌의 어느 부분이 글쓰기를 관장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정말 퇴화했거나 자극을 정말 안 주어서 형태만 존재할 것 같은 슬픈 느낌이다. 오늘 읽은 신문에서 중국의 철학자 순자의 명언 '작은 물줄기가 모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가 될 수 없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 지금은 비록 미천한 글솜씨이지만 언젠가는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작가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여행' - 한 때 가장 좋아했던 활동, 나를 낯선 세계로 초대하고 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준 여행이지만, 어느 순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20대 때부터 여행 혹은 출장을 통해서 30개국 정도를 다녔었고, 그 길목에서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발견해 나가는 즐거움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 더 이상 여행이 즐겁지도, 뭔가를 느끼지도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흥미를 잃게 되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마도 내 내면 속에서 자아를 발견해 나아가는 여행을 멈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이 여행을 거부하고 있는데, 아무리 새로운 나라와 장소에 간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징' - 나 스스로를 상징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을 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생각나거나 연상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면서 살아왔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작가에 의하면 '인간은 상징을 닮아 간다'라고 한다.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은 (예를 들면 별명으로) 어떤가 생각을 해보았다. 해군사관학교 시절 별명은 미친개였다. 럭비라는 운동을 할 때 미친 개처럼 상대편 선수를 태클하기 위해서 잘 뛰어다닌다고 은사님께서 지어 주신 별명이다. 올해부터 시작한 살사 동호회에서 엠티를 갈 때 이름표를 작성했는데 동기들이 프로 협상러라는 닉네임을 지어 주었다. 약간 오지랖이 넓은 스타일이라 단톡 방에 누군가가 겪고 있는 문제들 (특히 누군가와 타협과 협상이 필요한 경우들)을 보면 여러 가지 의견이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걸 좋아서 그런 별명을 지어 준 것 같다. 상징을 알기 위해선 본인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탐험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발견할 수 있는 날이 꼭 올 거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글쓴이에 따르면 전환의 과정은 초기 (기존의 세계에서 분리 이탈), 중기 (지속되는 시련의 시기), 후기 (새로운 시작 혹은 깨달음을 통한 세계로의 공헌)의 3 단계를 거치게 된다. 현재의 내 모습을 비추어 보면 초기를 지나고 중기의 클라이맥스를 통과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분명히 쉽지 않을 시간이지만 혼자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아가다 보면 분명히 3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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