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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소 Oct 31. 2018

나의 UN Volunteer 스토리 3부작 첫 번째

1편 - 나는 어떻게 UNV로 선발되었을까?

2008년 2월 29일 금요일 나에게 평생직장이 될 줄 알았던 해군에서 예비역 대위로 전역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임관 후 5년간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하면서 지내던 나였기에 주변에서는 꽤나 놀라는 반응이었다. 오직 어머니만이 나의 결정에 대해서 흔쾌히 알았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나에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하셨었다. 전역을 결심한 이유는 5년간 해군에서 근무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직이 크지 않았고, 군에 계속 남을 경우 스케치북에 이미 그려진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 나의 관심은 민간 기업으로의 취업보다는 인도주의적 분야, 그중에서도 아프리카와 UN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당시 반기문 전 총장님이 한국인으로 처음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셨던 것도 나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 중 하나였다.


우선 UN에 진출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들 (P 포지션 직접지원, JPO, UNV, YPP, 인턴쉽 등)을 확인하고 내가 가진 직업 경험과 현실적 상황 등을 고려해보니 UNV로의 진출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유엔 자원봉사단 사이트 (https://www.unv.org/) 인력풀에 내 영문 이력서를 작성해서 등록해놓았다. 그 다음으로 내가 준비한 것은 해외 유학 계획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왜 프랑스를 선택했냐고 질문하곤 했다. 내 대답은 일단 영어는 어느 정도 할 줄 아니까 UN에서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불어를 할 줄 알면 미래에 국제기구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아프리카에서 많은 국가들이 불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일을 구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불어 학원을 3개월 정도 다니고, 프랑스 전문 유학원을 통해서 프랑스 지방에 있는 어학원에 입학을 준비했다. 그 해 8월 한국을 떠나 프랑스 리옹 옆에 있는 쌩떼띠엔 이라는 작은 광산 도시에서 나의 유학생활은 시작되었다.


내 인생을 살면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프랑스 어학원 유학 시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관학교 시절 순항 훈련을 제외하곤 거의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외국 문화, 새로운 언어, 세계 각지의 친구들과의 만남은 즐거움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할 줄 아는 불어라곤 '고마워, 배고파, 얼마예요' 수준의 고급 어휘(?)를 구사하면서 몇 개월을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노력 끝에 귀도 트이고 입도 뚫리면서 점점 외국인 친구들이랑 파티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처음으로 행복함과 자유로움을 느꼈었다.


이런 꿈같은 시간 (약 1년 6개월)은 정말 빨리 지나갔고, 2010년 어느덧 난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대학원에 지원한 다음 일단 나는 한국에 짐을 싸서 귀국했다. 한국에 와서 대학원 입학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만약 한 군데도 합격을 못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합격을 해도 다시 프랑스에 가야 하는 거야 등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합격 소식이 한 군데도 없어서 낙담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시절 하우스메이트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내 앞으로 온 편지가 하나 있어서 열어보니, 한 대학원에서 온 합격 통지서여서 나에게 이메일로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부모님께 그 소식을 알리고, 상의를 해보니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한번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해보는 게 어떻냐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내가 다시 한번 프랑스 유학길에 오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대학원 유학 시절은 극적이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엄친아 엄친딸 같은 사람들처럼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 것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아니었다. 항상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학원 수업 나가기에 급급했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가 아닌 항상 통과를 목표로 할 정도로 학업 성취도가 정말 낮았다. 그렇게 석사 1년의 끝이 다가오는 시점에 처음으로 UNV 본부에서 연락을 받았다. 거의 3년 만에  첫 연락이 온 거여서 놀라기도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했다. 나의 첫 인터뷰는 기니의 UNHCR (국제 유엔 난민기구) 사무소에서 logistics administrator (물류 관리자)를 선발하는 것이었는데, 인터뷰를 보고 난 후 속으로 망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정말 어렵게 온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 후회감과 자책감에 스트레스를 받을 무렵 또 한 번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콩고 민주 공화국에 있는 UNICEF(유엔 아동 기금)에서 EPI logistics officer (백신 물류 담당관)을 선발하는데 한국인중에서만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 첨부된 DOA (Description of Assignment) 13. Qualifications/Requirements에서 확인 가능 -


바로 그 순간 내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전체 한국 인구 중 불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전문적인 물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UNV 진출을 원하는 한국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때 든 생각은 '이 자리는 무조건 내 것이다'였다. 얼마 후 콩고 유니세프 사무소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 날짜를 잡고 지난번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에는 인터뷰 준비에 더 신경을 썼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패널들의 질문에 대답하며, 그들이 거의 1년 넘게 한국인 UNV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뷰 말미에 난 왜 꼭 한국인 UNV여야 하냐고 질문했고, 그 대답은 KOICA (한국 국제협력단)로부터 백신사업에 펀딩을 받게 되었는데 그 조건들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인 UNV를 채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고 얼마 뒤에 UNV로 선발이 되었다는 축하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2부에서는 콩고 유니세프 사무소에 도착해서 현지에 적응해 나가는 스토리를 올릴 예정입니다.


* JPO : Junior Professional Officer - 국제기구 초급 전문가

* UNV : UN Volunteers - 유엔 자원봉사단

* YPP : Young Prosessionals Programme - 젊은 전문가 프로그램


커버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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