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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Dec 27. 2020

따뜻한 겨울 오후

총 총 총 총

아이가 떠난 후 관심이 없어진 것이 있다. 날씨.

휴가와 재택근무로 나도 나갈 일이 없어지긴 했지만 유난히 산책을 좋아했던 아이는 비바람이나 폭풍이 몰아치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느긋하게 산책을 즐겼다. 시츄 특유의 여유롭고 느긋한 성격은 작은 몸에 하네스가 둘러지는 순간 싹 사라지고 통통거리는 발걸음과 떨어져라 흔들어대는 꼬리로 온 동네를 누볐다.


나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겨울 오후를 좋아한다. 아이도 적당히 쌀쌀한 날씨에 좀 더 빨리 움직이기도 했고 햇빛에 비치는 그림자에 비치는 털 한 올 한 올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날에도 아이는 잠시라도 밖에 나가고 싶어서 끙끙거렸다. 밖에 쌈짓돈이라도 숨겨놓은 건지. 


며칠 만에 쓰레기를 버리러 신발을 신었다. 좋아하는 따뜻한 겨울이다. 이왕 나온 김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조용해진 동네를 조금 걸어볼까 싶었다. 아이가 좋아했던 곳을 아직 용기가 안 나서 찾아가 볼 생각도 못했지만 오늘은 그렇게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숨겨놓은 애인 만나러 가는 듯한 바쁜 뒷모습


매일 산책을 하다 보니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분들도 생기고  자주 들리는 편의점이나 와인샵은 본인이 알아서 나를 끌고 가기도 했다. 걷는 모양이 유난히 통통 튀었던 아이를 보며 마주오는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리기 일수였다. 강아지도 자기가 예쁨 받는 건 안다고 하지 않은가. 누가 지나가다 너 너무 이쁘구나 한마디에 나를 버리고 그 사람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는 그 모습이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한 번 더 예상치 못했던 기분 좋은 미소와 기쁨을 전달했던 아이가 17년간 함께 길을 걸은 나에게 준 기쁨은 또 얼마나 큰가.


올해 들어 아이는 점점 집 앞만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가는 행동을 몇십 번이고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인지장애의 시작이었고 점점 보이지 않는 눈에 멀리 가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다리도 점점 아파왔다. 12살 때쯤 디스크도 생겼고 당연히 관절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산책이 더 좋은지 하루에 10분 이상은 집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인지장애에 좋다고 하여 일부러 안고 멀리 가서 산책을 시도하면 냄새 한번 맡으려고 하지도 않고 앞으로 돌진하며 집으로 가려고 했다. 한 잎 한 잎 놓치지 않고 모두 인사를 해야 직성이 풀리던 풀들도 어느덧 그냥 지나치기 시작했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다리를 잘 쓰지 못하게 된 건 올해 9월이다. 갑자기 주저앉아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의 나이도 있어서 무리한 검사는 할 수는 없었지만 말랑한 발바닥을 꾹 눌러보니 반응이 있다. 병원에서도 마비가 온건 아니고 그냥 다리가 많이 아파서 그런 것인데 약을 쓰자니 아이의 지친 간과 신장에 당연히 무리가 올 것이라 조심스러우니 조금 지켜보자고 하셨다. 


아이는 누워서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움직이고 싶을까. 오줌이 마려우면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때마다 패드로 안고 나가서 아이가 수만 번은 실례를 했을 집 앞으로 데리고 나가 일을 처리했다. 자국은 남지 않아 이웃들의 눈치는 덜 볼 수 있었지만 냄새는 남았는지 온 동네 강아지 친구들의 단골 장소가 되긴 했지만. 내가 잠시라도 놓치면 아이는 흥건하게 젖어 나를 원망하며 울었다. 어릴 때부터 아무리 맛있는 간식이라도 본인 몸에 묻으면 엄청나게 짜증을 냈었는데 얼마나 괴로웠을까. 새벽 실외 배변이나 뒷다리 샤워는 새벽에도 계속되어 나도 피곤했지만 아이만큼 힘들까. 


컨디션이 좋아진 10월에는 선생님과 상의 끝에 소염제를 아주 소량씩 며칠 텀을 두고 복용해 보기로 했다. 온갖 수치들이 갑자기 안 좋아지진 않을지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삶의 질이 엉망이 되어가는 것이 보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처음으로 물약을 몇 방울 먹이는데 엄청 떨렸다. 보호자로서 내가 맞는 선택을 한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기적처럼 3일 만에 아이는 조금씩 걷기 시작했고 걱정했던 수치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조금이라도 걷고 싶지만 몸이 맘대로 안 움직이는 아이의 꼬리를 잡아주면 조금 나아졌다. 밖에서도 서클링을 하는 아이 때문에 나도 아이의 꼬리를 잡고 코끼리코 자세로 몇 바퀴를 뱅글뱅글 함께 돌았다. 더 힘들어할 때는  오리걸음으로 아이의 배를 받쳐 함께 걷기도 했다. 운동으로 하라고 하면 두세 걸음도 못 움직였을 내 다리가 몇 분을 아이와 함께 걸었다. 멀리서 보면 저 여자는 뭐 하는 걸까 상당히 궁금한 자세이긴 했지만 여러 가지가 가능했던 감사한 마지막 순간들이다. 이제는 아이의 고단한 네 다리가 편히 쉴 수 있어 어렵지만 감사하다고 생각해야지.




막상 가려고 하니 딱히 어느 곳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  17년간 이 집에서 살았던 아이는 반경 500미터 안 어느 한구석도 놓치지 않았기에 갈 곳이 너무 많다.  참 우리 긴 시간을 함께 걸었구나.  이제는 그림자에 비치는 건 내 머리털밖에 없지만  함께했던 모든 발걸음과 산책 후 잠에 빠진 너의 모습 모두 따뜻한 겨울 햇살 안에서 유난히 더 반짝이는 것 같다.


잘 뛰어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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