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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Jun 14. 2021

6개월

너 없이 지낸 반년

오늘은 아이를 떠나보낸 지 딱 반년이 되는 날이다.

짧은 시간인지 긴 시간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이상한 건 익숙해진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확실히 아이가 없는 생활에는 익숙해졌다..

저녁마다 나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아이 때문에 서두르는 일도, 산책 리드에 흥분하는 꼬리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주말은 시간이 남고 남아 새로운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도 하루가 간다.  각종 드라이브 알람에 잊고 있었던 사진들이 뜨면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 사진만 보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가기도 한다. 집안 청소도 엄청나게 열심히 하기도 하고 더 이상 치울 곳이 사라지면 산책을 나선다.

혼자 걷는 산책길도 조금은 달라졌다. 동물병원 앞을 지날 때면 아이가 6 일을  넘게 살았고 하루에 적어도 4패드는  썼으니까 24000개를 넘게 썼구나 하는 계산을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 친구들에게는 무조건 건강하자라고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아이 없는 생활은 확실히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낼 때가 많다.


아이의 유골은 집에 데려온 후 열어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6개월 전에는 어떻게 장기 보관할지 결정하는 것이 좋다던 장례식장 직원분 말씀이 생각났다. 성인이 된 이후로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부분이다.

스톤으로 제작하는 것은 안전한 방법이긴 하지만 내가 죽을 때 같이 화장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이가 평소 좋아했던 길에 뿌려주기엔 차도녀였던 아이가 가장 즐겼던 산책로가 너무 눈에 띄는 아스팔트라 뿌리기가 애매했다. 곱게 묻어줄 양지바른 땅도 내 소유가 아니니 힘들다.

집에 나말고는 숨 쉬는 존재가 없는 것이 어색해서 하나둘 씩 화분을 사다가 유골을 조금씩 화분에 담아서 숨 쉬게 해 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은, 만약 화분이 죽으면 더 슬플 것 같으니, 우선 여러 개 화분을 키워보고 결정하자 마음먹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화분들


2달의 시간을 보내고 그나마 어느 정도 햇빛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해서 항상 살아있는 느낌도 나고  손도 가는 화분을 선택했다. 조심스럽게 아이의 유골함을 열어보니 그동안 잘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유골 봉투를 아이의 부드러운 털이라고 상상하며 만져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다. 슬픔인지 반가움인지 모르지만 우선 눈물을 좀 닦아내고 아이의 유골 1/10은 화분에 조심히, 나머지는 다음 화분을 위해 다시 습기제거제와 조심스럽게 넣어놓았다.




나도 이럴 줄 몰랐는데, 아침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저 화분으로 달려가 아이를 안아 올릴 때처럼 잘 잤냐고 뽀뽀를 하게 된다. 햇빛도 보게 해 주고 물도 주고, 출근할 때도 다른 화분들하고 잘 놀고 있으라고 어찌 보면 너무나도 진부한 행동들인데 그게 작은 위로가 된다.


아이가 떠난 후 나의 감정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떤 날은 그래 우리 잘 지냈지 하면서 미소 짓다가 아이가 먹던 유산균 껍질이 발견되면 또 주저앉기도 하고,

클라우드에서 웃긴 사진만 뽑아서 혼자 웃어보기도 한다. 아이가 떠난 후 정기적으로 실행해 보려고 했던 유기견 보호소 봉사는 아직 엄두가 나지 않는다. 더 이상 육신이 고단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지만 단 24시간만이라도 함께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뭘 해야 좋을지 장시간 상상하다가 긍정적인 마음이 더 크면 웃음이고 슬퍼지면 눈물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대부분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하다. 반년 동안 버텨온 것처럼 좀 더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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