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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북쓰 Jan 24. 2023

3.1 아내의 첫 번째 육아휴직이 끝났다.

남(男) 다른 아빠의 육아 도전기

 아내는 첫째를 낳기 전에 출산휴가를 신청하고, 바로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출산휴가 3개월을 포함해서 17개월 동안 휴직을 했다. 육아휴직 중간에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지금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퇴사를 했다. 퇴사 후 어떻게 할지보다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내 적성에 안 맞고 정신적으로 힘드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지금의 나라면 과연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다. 그때는 철없는 아빠였기에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아내도 승낙을 해줬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내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아내에게 항상 고맙다.


 퇴직하고 같이 육아를 했다. 육아휴직 막바지에는 호주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아내는 복직을 했다. 복직을 하고 내가 첫째를 돌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언제부터 첫째를 돌봐야겠다는 결정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사를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함께 육아를 할 때 결정을 한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호주에서 쉬는 동안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결심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아내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잠도 못 잤다면 기억이 날 텐데 기억이 전혀 없다. 철이 없고 생각 없이 살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회사 퇴직을 앞두고 실업급여와 육아휴직급여를 합쳐서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고민과 함께 현금흐름 계산했다.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 생활비 등은 적금과 현금으로 대체하여 몇 개월 정도는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육아를 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6개월 정도 쉬면서 실업급여받고 재취업을 하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컸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철없고 대책도 없던 퇴사였다.


 아내와 둘이 집에 있을 때 각자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러 다녔다. 그때마다 혼자 아이를 봐야 했는데, 아이를 보면서 혼자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다. 이유식을 하는 시기였기에 1~2시간 정도 아이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낮잠이라도 자면 꿀 같은 달콤한 휴식이었기에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적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장 잔고도 조금씩 줄어들고, 호주여행을 준비하면서 목돈을 썼기에 그때쯤부터 걱정과 책임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육아휴직이 끝나가는데 아이는 어떻게 돌보고, 나는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하게 됐다.


 아내는 일하는 걸 좋아한다. 신혼 때도 항상 늦게 퇴근했다. 일에 적응하느라 늦은 것도 있지만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완벽하려는 마음들이 집에 오는 발걸음을 늦췄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일과 잠시 멀어졌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여 낯선 상황들을 이겨내고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아내는 그 당시 마음을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복직을 할 거라고 한다. 내가 봐도 그럴 것 같다. 두 번의 육아휴직을 하고 지금은 일을 잘 다니고 있다.


 다양한 업무를 맡으면서 야근도 잦고 회식도 많아 바쁘지만 일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마냥 신나는 사회생활은 아니겠지만 일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열정 넘치는 아내를 보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일에 지쳐 쓰러질까 걱정도 되지만 이제는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살림을 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될 때도 있다. 주말에 집에 있다 보면 일하고 싶다는 말도 하곤 했다. 집에 있으면 내가 자꾸 잔소리를 해서 힘들고, 아이들과 계속 놀아주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지금은 애들도 많이 커서 놀아줄 일은 줄었지만, 어릴 때만 해도 계속 놀아줘야 하니 많이 힘들어했다.


 우리 집의 '가장'이 되어 흔히 볼 수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말만 되면 피곤해서 잠만 자는 아빠의 모습, 주중에 아이들을 보느라 힘들어서 주말에는 아이들과 떨어지고 싶은 엄마의 모습이 우리 집에서도 보였다. 그저 성별만 바뀌었을 뿐이다. 요즘에는 이런 모습들이 많이 줄었다지만 어느 집에서나 한번 이상은 겪었을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회사 다닐 때를 생각하며 이해하려 노력한다.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알기에, 역지사지의 삶을 살고 있기에 아내가 힘듦을 이해한다.


 지금은 아내가 일을 하고 내가 육아를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퇴사 후 같이 육아를 하며 시간을 흘렀고, 우리 집 금고는 비어갔다. 나는 퇴사한 백수였고 아내가 복직을 하려면 미리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와 아내는 다른 사람 손에 아기를 맡기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우리 손으로 키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생각과 상황에 맞춰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선택을 한 것이다.


 많은 고민도 있었다. 경제 문제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맞벌이를 하면 아이를 돌볼 맘시터를 구해 월급을 줘야 한다. 주고 남은 돈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규모인가 아닌가 계산했다. 외벌이를 하면 생활이 가능하고 아이를 키우는데 부족하지 않을까에 대해 계산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니 맞벌이해도 큰돈을 벌지 못하고, 외벌이로 생활이 가능하고 남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복직을 하면 어린이집을 보낼 거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부모가 하는 게 돈을 조금 더 버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돈은 벌면 되지만 아이가 커가는 건 지나가면 끝이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은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내 자녀를 위한 선택이었다. 2013년, 이런 고민 속에 아내의 육아 휴직은 끝났고 나의 육아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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