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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탠바이 Oct 03. 2018

영상기자의 수난(水難) 시대

태풍 '콩레이'의 북상을 앞두고 꺼내보는 태풍 취재기

  굵은 빛줄기가 세차게 퍼부어 댄다. 하늘이 뚫렸는지 이틀 동안 내리는 비가 무섭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문산 삼촌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삼촌 집 앞에는 임진강이 보였는데 계속 내리는 폭우로 집 앞 둑이 무너졌다. 2층 집이었던 삼촌 집은 1층이 어른 높이만큼 물에 잠겼다. “전기 줄 조심하고 삼촌 몸에서 떨어지지 마!” 2층으로 몸을 피한 우리는 119 구조대의 보트를 타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1996년 여름에 발생한 임진강 홍수다. 전쟁터라면 이곳일까? 오래된 흙집이었던 앞집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고 골목마다 못 쓰는 가재도구와 쓰레기들이 큰 산처럼 쌓였다. 그 틈 사이로 ENG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영상기자가 있었다. 초등학교 방송반 국장으로 나름 방송 밥 좀 먹었다 자부했는데 ENG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영상기자를 직접 보니 TV 속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에 악취가 나고 쓰레기 더미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영상기자 아저씨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1996년 여름. 수해로 문산 시내가 잠겨있다.
태풍의 눈으로 뛰어든다.

  문산 전화국도 침수돼 부모님과 사흘 만에 전화로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뉴스에서 봤던 처참한 모습에 매일 아들 걱정을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이때가 물난리와 첫 인연인가 보다. 이제 그 영상기자의 ENG가 내 손에 들려있다. 태풍, 장마철이 되면 어릴 때 겪었던 홍수에 대한 공포와 무서움은 내려놓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제 몸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태풍의 눈으로 뛰어든다.     


  잠수교가 잠길 듯 한강 물이 넘실거린다. 내리친 비로 한강 공원 곳곳에 물 웅덩이가 생겼다. 취재기자의 온 마이크를 위해 자리를 잡던 중 흙탕물 속에서 오른쪽 엄지발 사이로 뭔가 쑥 들어왔다. 종이에 손가락이 벤 것과 같이 오싹 한 느낌이다. 이내 발을 빼 보니 찌릿함이 아려오고 흙탕물과 비슷한 색의 피가 뚝뚝 떨어진다. 장맛비로 잠수교가 통제된다기에 급하게 라이브 연결 지시를 받고 달려왔다. 정신없는 와중에 물속에 있는 쇠 꼬챙을 밟은 것이다. 함께 간 취재기자는 당장 병원에 가자고 앞장서지만 10분 후면 생중계를 해야 한다. 오히려 짧은 시간 안에 지금까지 찍은 그림들을 송출하고 생중계 스탠바이 한다면 아파할 겨를도 없다. 라이브 연결을 마치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감춰있던 아픔이 제법 쎄게 다가온다. 현장 상황을 마무리하고 병원에 가서 열네 바늘이나 꿰매고 파상풍 주사까지 맞았다.     

죽음의 문턱이 여기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7명의 목숨과 3명의 실종자가 생겨 살인 태풍이라고도 불린 태풍 ‘차바’ 취재 때 일이다. 제주도에 태풍 취재 지시를 받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태풍 때문에 제주행 비행기가 대부분 연착이다. 운이 좋아서일까 간신히 우리는 뭍에서 섬으로 뜰 수 있는 마지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태풍 ‘차바’의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다. 우리는 서귀포시에 위치한 법환포구로 갔다. 성난 바다는 파란빛을 한 줌도 내지 않았다. 허옇고 거대한 파도가 곧추선 채 달려들어 방파제를 삼켜버리기를 반복했다. 밤 12시쯤 되자 동네 일대가 정전이 됐다. 순간 최대풍속이 47m/s. 사람이 날려갈 수 있고 달리는 차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세기이다. 가로수가 쓰러져 있고 간판과 나뭇가지들이 회오리치며 날아다닌다. 태풍이 가까이 다가왔음이 느껴진다. 함께 있던 오디오맨이 영화 속 풍경 같다며 신기 해 했다. 바람이 강하게 내리칠 때 바람에 맞선 내 몸도 붕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죽음의 문턱이 여기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 취재는 고군분투의 연속이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인한 사건사고의 재난 취재는 영상기자에게 달갑지 않다.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재난 상황으로부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생한 현장 영상을 기록해야 하고 MNG(Mobile News Gathering) 장비로 중계차 역할을 대신해 가장 먼저 TV 화면을 선점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 MNG 등 각종 부속 장비에 물이 들어가 취재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장비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카메라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그 위에 수건으로 감싸며 우산으로 비를 피하지만 정작 그 장비를 운용하는 영상기자는 쏟아지는 비에 대책 없이 맞고 있을 때도 많다. 뿐만 아니라 주택과 자동차가 침수되고 우산이 방해가 될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등 취재진의 안전이 위협되는 상황에서 생생한 현장 영상을 카메라에 담고 신속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태풍 취재는 고군분투의 연속이다. 

    



  이번엔 장비와의 애환이다. 자정뉴스를 앞두고 카메라 테스트를 하는데 오디오 라인에 문제가 생겼다. 태풍 ‘산바’ 취재로 울산에 출장을 왔는데 오디오 라인이 물을 먹어서인지 소리 수음이 안됐다. 급하게 자정뉴스 생중계는 전화연결로 돌렸지만 문제는 내일이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 하루 종일 기자 연결을 할 텐데 큰일이다. 밤 1시가 넘은 시간 울산 시내에 나갔다. 모든 상점들은 물을 닫았고 급한 마음에 노래방에 들어가 사정을 말씀드렸다. 다행히 사장님은 딱한 사정을 듣고 도움을 주셨다. 잠시 후 사장님이 가져오신 오디오 라인은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형식이라 호환되지 않았다. 24시간 문을 연 대형마트에 찾아가 봤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우리가 사용하는 오디오 케이블은 없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절박한 마음 때문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불현듯 울산에 있는 방송국들이 떠올랐다. 전화를 돌렸지만 모든 방송사가 전화를 받지 않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한 방송국에 찾아가니 방송국 래핑 차를 타고 가서인지 경비아저씨의 안내로 수월하게 기술국 당직자와 만날 수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니 한참을 찾아보고선 없다고 말씀하시며 갑자기 밖을 나갔다. 불난 집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아니고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뒤에서 우릴 부른 그분의 손에는 라인이 들려있었다.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현장에 돌아온 나는 태풍과의 하루를 시작했다.     

집중호우로 야산의 토사가 마을을 덮쳤다.
살기 위해 뛰쳐나올 때에도 우리는 현장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영상기자를 준비할 때 태풍 ‘덴무’ 취재로 고인이 된 KNN 손명환 기자님의 안타까운 소식으로 태풍 취재의 무서움을 접했다. 고 손명환 기자님은 태풍 뎬무가 몰려오는 현장을 좀 더 현장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방파제 현장을 찾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순직하셨는데 마지막 순간에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영상기자는 효과적인 화면 전달을 위해 위험이 노출된 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취재를 한다. 시청자는 영상기자가 찍은 생생한 현장 영상을 통해 위험으로부터 대응할 수 있다. 생생하고 긴박한 현장 그림을 확보하려는 본능 때문에 재난재해 현장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뛰쳐나올 때에도 우리는 현장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또다시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장비함에 쌓아뒀던 레인커버에서 쉰내가 진동한다. 여벌의 옷들과 냄새나는 장비들을 세탁해 뽀송하게 해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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