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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탠바이 Nov 01. 2018

찍으려는 자 vs 막아서는 자

영상기자의 소명의식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존 인물이기도 한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말이다.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의 영상기자였던 그는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검문을 뚫고 광주에 잠입했다. 계엄군의 총과 칼을 맞고 쓰러진 시민들로 피바다가 된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촬영한 필름을 사복경찰들로부터 숨기기 위해 고급 과자 통에 위장 포장하여 일본을 거쳐 독일로 보냈고 전 세계에 보도할 수 있었다. 회사 선배는 대학가에서 80년 광주, 끔찍한 영상을 그가 촬영한 영상으로 처음 접했다고 했다. 폭도들 소행으로만 알았던 그날의 진실을 처음 마주하며 그때 받았던 충격에 한동안 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가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과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애석하게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은 감출게 많은 세상이다. 찍는 자와 막는 자의 피 튀기는 사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의 일이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로 박 전 대통령은 임기를 남겨두고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부끄러운 퇴거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외신을 비롯한 많은 취재진은 집 앞에서 취재경쟁을 이어갔다. 취재진을 향해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머리가 띵했다. 한 아주머니가 태극기 봉으로 머리를 내려쳤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향해 “여기가 어디라고 왔냐, 기자 새끼 꺼져라.”라며 소리를 지르고 태극기 봉으로 위협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택에 들어오는 순간 카메라 앞이 캄캄해졌다. 박사모 회원들이 긴 태극기로 취재진들의 카메라 렌즈를 막아선 것이다. 태극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박 전 대통령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수라장 속 취재를 방해한 이들.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무엇이 부끄러웠길래 렌즈 앞을 막아섰을까.     

  몸을 다치며 찍을 때도 있다. 수습을 갓 뗐을 때 일이다. SK그룹 최재원 부회장이 회삿돈 수백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소환됐다. 새벽 두 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영장이 발부됐다. 곧이어 서른 명 정도의 SK 측 사설 경호원들이 포토라인을 둘러쌌다. 현장에 있던 SK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취재 질서를 지켜주고 포토라인을 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새벽시간인데도 쫙 깔린 경호원의 숫자에 당황했던 우리는 SK 쪽에서도 포토라인을 넘어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잠시 후 구치소로 가기 위해 최재원 부회장이 나오자 포토라인 뒤편에 있던 경호원들이 최 부회장을 감싸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카메라를 막아서며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함께 있던 OBS 영상기자의 손가락에선 피가 났고 내 트라이포드는 파손돼 두 동강 나 널브러졌다.      

포토라인은 경쟁이 심한 취재현장에서 돌발상황에 대비한  상호 통제수단이자 신사협정이다. 

  "대마 혐의 인정합니까?"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입원한 빅뱅 탑이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질 때의 일이다. 포토라인을 만드는데 병원의 비협조와 수많은 매체가 몰려 어려움을 겪었다. 중환자실 문이 열리자 흰색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를 탄 탑의 모습이 보였다. 소속사 관계자들의 과잉 경호 속에 탑이 서둘러 엘리베이터 탑승을 시도하자 포토라인이 무너졌다. 서둘러 계단으로 내려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탑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경호원들이 취재진을 밀며 무리하게 뚫고 나가는 순간 쇠골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경호원의 손찌검에 들고 있던 카메라가 내 어깨를 친 것이다. 구급차가 빠져나간 후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 렌즈는 돌아가 있고 내 어깨엔 시퍼런 멍이 남았다. 포탄이 떨어진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청에서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황제 소환' 모습이 공개됐다. 이 사진을 찍은 고운호 기자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약 300m 떨어진 반대편 건물 옥상에서 새벽 1시까지 뻗치며 팔짱 낀 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 전 수석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특종보도로 검찰에 대한 분노와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우병우 특별수사팀이 해체되는 역할도 했다. 이처럼 찍으려는 자와 막아서는 자들의 숨바꼭질 가운데 진실 보도의 힘은 가히 엄청나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듯 찍는 방식도 육탄전과 탐색전에서 지능 전으로 바뀌었다, 높은 담장에 가려지거나 경비원의 방해로 취재가 어려울 때는 드론을 띄워 가려진 피사체를 담는다. 드론의 등장으로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도 영상취재가 가능해졌다. 출입구가 많아 취재원이 어디로 도망갈지 모를 때에는 타 사와의 풀 취재(공동 취재)로 출입구를 봉쇄한다. 또한 소비자 고발성 아이템 등 사안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 스마트폰 촬영이나 몰래카메라를 이용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경우 몸에 항상 지니고 있고 실시간 전송도 가능해 앞으로 그 쓰임은 무궁 구진 하다.     


  하지만 대중의 호기심과 국민의 알 권리를 구분해야 한다. 한 언론사에서 남자화장실을 몰래 촬영한 뒤 보도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화장실 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실험 영상 보도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방송했다. 건전한 상식과 영상기자로써 직업윤리를 갖고 있다면 촬영에 앞서 그토록 간절히 찍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우리가 찍은 영상으로 인해 선량한 피해자 생기지 않도록 초상권에 주의해야 한다. 공공의 이해와 관련된 사항으로서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하면 비록 그것이 사생활일지라도 공개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대중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거라면 ‘알 권리’라든가 ‘언론자유’라는 말이 허망해질 것이다.      


  세상은 어마어마한 영웅이 아니라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이들 덕분에 유지된다. 택시 운전사는 손님을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기자는 성역 없이 보도하면 된다. 영상기자라는 직업이 있는 한 막는 자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찍는 자와 막는 자와의 게임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진실이 그 현장에 있다면 결과는 우리 편에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만드는 게 우리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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