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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아 Mar 20. 2021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만 했던 엄마의 지지리 궁상

엄마의 투병 일기 - 210228

정월 대보름이었던 그제 엄마는 오곡밥도 나물도 부럼 하나도 깨뜨리지 못하고 입원을 했다. 그리고 오늘 기어이 소변줄을 찼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도 변기에서 일으켜 세워 휠체어에 앉히는 것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불과 이틀 만에 엄마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누가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했나? 어제는 냉면이 드시고 싶다고 했다. 드시고 싶은 음식이 생긴  다행이다 싶어서 냉면을 2인분이나  왔다. 하지만 엄마는  젓가락을  넘기지 못했다. 결국 엄마가 먹다 남은 1인분은 점심으로, 나머지 1인분은 저녁으로 먹었다. 냉면  젓가락을 힘겹게 드신 엄마는 내일은 매운  없는 닭발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먹고 싶다는 욕구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른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주무셨다. 깨어있었던 시간은 고작 30분도 안된 듯했다. 늦잠    편히 자지 못하고 청소일로 자식들을 키워냈던 엄마가 평생을 통틀어 오늘이 가장 많은 잠을  날이었을 거다. 의식도 점점 까무룩 해졌다. 힘겹게  눈은 초점이 없었고 그마저도 이내  주저앉았다.

어제 엄마가 드신 냉면  젓가락이 엄마의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꽃게가 한창이던 작년  바람이 불었는지 꽃게를 자그마치 10 원어치나 사서 쪄먹었더랬다. 크기도 그렇고   살과 알도 그렇고 딸내미까지 5 식구가 꽃게로 포식을 했다.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이런 거였구나 직접 몸으로 이해할 정도였으니... 11월엔가 엄마가 불현듯 꽃게를 먹자고 했다. 그때보다 꽃게 가격이 배로 올랐을 때였다. 지금은 우리가 먹을  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하면서 엄마의 제안을 일축했더랬다.  비싼 꽃게를 다시 먹자고 했던  당신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녀를 먹이려고 했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평생 후회로 남을것이 분명하다.

작년 12월에 담갔던 동치미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무는 바람이 들어 푸석해졌고 국물에서는 군내가 나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먹고 싶지 않을  동치미를 아깝다며 먹는 엄마가 짜증 나고 속상했다. 이제  엄마가 하고 싶은   하고 먹고 싶은  먹으면서 살아야지 않겠냐며 수도 없이 말했지만 그게 먹힐  없다는   안다.


엄마의 삶은 '궁상'의 연속이었다. 다른 이들의 관점에서는 '알뜰함'이었고 '생활력'이었을지 모르겠다. 집안 곳곳에는 차곡차곡 접어서 모아둔 비닐봉지가 가득하다. 선물용 박스 안에는 샘플용 화장품이 들어 있고, 서랍장 문고리에는 수백 개의 고무줄이 매달려 있다. 쓰다 남은 비누 쪼가리들은 양파망에 모아서 사용했다. 대체 얼마 동안이나 사용했는지 칫솔모는 태풍에 쓰러진 벼처럼 힘없이 쳐져 있다. 이쑤시개부터 빨대까지 쓰지도 않을 온갖 일회용품을 모으는건 아예 취미가 되어버렸다.


그 궁상들이 자식들을 이만큼 키워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빚보증을 두 번이나 사기당한 남편과 자식을 키워내기 위해서 궁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을 것이다. 그러다 그것은 습관처럼 몸에 베였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습관이라기보다는 철학이고 신념이라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이제 나이를 먹고 손녀의 재롱도 보면서 맛있는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만 병에 걸렸으니 그 억울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엄마 앞 침상에는 엄마보다 6살이 적은 할머니가 누워계신다. 대화는커녕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누워만 계셔서 사람이 있는지 모를 정도다. 그런 할머니를 지키는 분은 할아버지다. 어젯밤에는 할머니가 호흡기 등 몸에 달려있는 호스들을 빼려고 하는 통에 할아버지가 곤욕을 치렀다. 환자를 침대에 묶어놓는 방법이 있는데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대신 의료기 파는 곳에서 안전 장갑을 파는데 그걸 이용하면 된다고 해서 그걸 사다 드렸다. 평생을 함께 했던 부인이 의식 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심정은 어떠할까?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딸기를 씻어 드리고 음료수를 건네고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제 좀 살만한데 이렇게 되었다며 끝내 눈물을 찍어내셨다.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더 걱정인 건 괜한 오지랖일까?

영양제 링거와 소변줄에 이어 자꾸만 엄마의 몸에 호스들이 치렁치렁 추가되고 있다. 피검사 결과 나트륨과 혈소판이 부족하다며 나트륨 수액 링거가 추가되었고 곧 수혈을 하겠다고 한다. 내일엔 닭발을 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틀째 할머니를 못 보고 있는 딸내미가 편지를 써서 사진을 찍어 보내왔지만 정작 엄마는 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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