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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 예뻐진다는 봄의 맛

by 민희

고들빼기, 씀바귀, 민들레 나물


위 나물들을 아시나요?

우리가 흔히 아는 쑥, 달래, 미나리 보다 맛과 향이 더 강한 나물들입니다. 끓는 물에 데치고 갖은양념을 해서 버무려도 특유의 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물이라기보다 풀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푸성귀들이지요.


저는 저런 나물들을 어렸을 적부터 먹었습니다. 봄이 되면 엄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물들을 빨갛게 무쳐서 밥상에 내놓곤 했습니다.

“민희야. 이 나물 먹어봐. 이거 먹으면 예뻐진대.”

그 말에 처음 속은 게 아마 여덟 살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예뻐지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이끄는 대로 씀바귀 한 줄기를 집어 먹었습니다. 씹자마자 입안에 가득 퍼지는 쓰디쓴 향과 맛에 바로 뱉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맛이라고는 하나 없이 쓰기만 한 풀을 도대체 왜 먹는지. 오만상을 찌푸리는 저를 보며 엄마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얘 좀 봐. 예뻐진다고 하니까 잘 먹네.”

뱉을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엄마가 말했습니다. 어금니까지 가지도 못하고 앞니 근방에서 뚝뚝 끊어내며 씹던 쓰디쓴 풀들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들도 잘 먹지 않는 나물을 예뻐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아이가 먹는 것이 엄마는 신기했나 봅니다. 저는 나물을 먹은 것이 아니라 엄마의 반응과 웃음을 삼킨 것인데도 말입니다. 엄마가 좋아하니 먹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씀바귀, 고들빼기, 민들레 나물을 순차적으로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민들레 나물은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도심을 걷다 길바닥에 심어진 민들레를 보며 어떻게 저 풀을 음식으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몸에 좋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먹을 수밖에요.

쓴 봄나물들을 먹고 제가 엄마 말대로 예뻐졌을까요. 그럴 리가요. 당시 어린아이였던 저도 그깟 나물을 먹는다고 예뻐질 수 없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쓴 나물을 씹으며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싶었던 것이지요. 엄마는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는 비건이라서 나물을 좋아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신기한 나물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을 때 무척 기뻐했습니다.


남들보다 '고수'도 일찍 알게 되었습니다. 쌀국수가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엄마는 ’중국 나물’이라면서 고수를 먹었습니다. 제게도 어김없이 고수를 권했고, 거절하지 못한 채 맛을 보았습니다. 고수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고들빼기와 씀바귀가 참 맛있는 나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습니다. 모양은 야들야들하게 생긴 것이 비누 맛이 나지 뭡니까. 차마 삼킬 수가 없어서 바로 뱉어버렸습니다. 비누 같기도 하고 화장품 향 같기도 한 것이 입맛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습니다. 고수의 향은 무척이나 강렬했고, 다시 입에 대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쓴 나물을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을 때쯤 저는 스스로 그런 음식을 찾아서 즐기게 되었습니다. 쌀국수를 먹을 때면 고수를 듬뿍 넣어 향을 즐깁니다. 미나리와 방풍나물 같은 봄나물 한 두가지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울 수 있습니다. 엄마의 속임수 덕분에 예뻐지지는 않았더라도 건강한 입맛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엄마가 손수 만든 쑥개떡 한 봉지를 주며 제게 말했습니다.

“이거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속이 편하다. 이건 다른 떡하고 달라.‘

네…. 어느새 저는 40이 넘는 나이가 되어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찾아 먹을 때가 되었습니다. 엄마도 이제는 예뻐진다는 말로 저를 꼬시지 않습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소화가 잘되고 몸에 좋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 음식들을 넙죽 받아왔습니다.


봄의 맛을 생각하니 씁쓸한 나물들을 제 밥 위에 올려주던 엄마 생각이 납니다. 내일은 엄마가 준 쑥개떡을 쪄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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