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편해진다는 게 유독한 감각이라고 느꼈다.
남편이 2박 3일 출장을 갔다. 며칠간 집에 남편이 없다고 생각하니 내심 좋았다. 남편하고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올해로 결혼 17년 차인 우리는 수영과 테니스 같은 취미생활을 함께 하며 비교적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그래도 매일 같이 붙어 있다 보면 가끔은 부대낄 때도 입는 법. 가끔은 상대방의 일시적 부재 상태가 편하고 좋기도 하다.
남편이 없으면 저녁 밥상부터 간소화된다. 아이들만 있으면 고기를 구워주거나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게 되는데, 남편이 있으면 저녁밥은 해결이 아닌 ‘차림’의 대상이 된다. 딱히 음식을 가리거나 반찬 타박을 하지 않는데도 괜히 신경이 쓰인다. 하다못해 몇 가지 야채를 썰어 넣고 제육볶음을 만들거나, 고추장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닭볶음탕이라도 끓여 내놓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늘 ‘아무거나’를 외치는 남편이지만 식성이 좋은 사람인지라 밥상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그가 집을 비웠고, 마침 아이들도 밖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날 저녁 나는 완전히 자유였다. 퇴근길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과자봉지를 끼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며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서둘러 집을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그릭요거트로 간단히 저녁을 때웠다. 빈 그릇을 개수대에 넣다가 아침에 미처 해놓지 못한 설거짓감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단 몇 초만 잠시 생각을 했었더라면 바로 고무장갑을 끼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문제다. 어느새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빛의 속도로 그릇을 닦고 있었다.
설거지를 후다닥 해치운 뒤 손을 닦은 수건을 빨래통을 넣으려고 세탁실 문을 열었다. 빨래 바구니 속에 구져 넣어진 옷들, 바구니가 넘쳐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양말들이 보였다.
눈 딱 감고 세탁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왜 양말을 빨아 놓지 않았냐고 타박하는 아이들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 아침에 신을 양말이 없다고 투덜대며 빨래 바구니를 뒤져 어제 신었던 양말을 꺼내오는 아들에게 버럭 화를 냈던 내 모습이 스쳐갔다.
하는 수 없이 시작 버튼을 눌러 세탁기를 돌린다. 빨랫감에 따라 건조기에 넣을 수 없는 옷들도 있으니 베란다로 가 건조대에 널려있는 빨래를 걷어 개켰다. 이렇게 하나 둘 집안일의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손에는 청소기가 들려있었다. 시간은 아홉 시로 향하고 있었고...
남편이 있는 평소의 저녁 일상을 되돌아보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갈아입는 나와 달리 남편은 청소기부터 집어 든다. 구석구석 청소기를 싹 돌리고 나서야 샤워를 한다. 샤워 후 젖은 수건과 그날 입은 옷가지를 챙겨 세탁기를 돌린다. 빨래가 되는 동안 소파에 앉아 마른빨래를 개키고, 밥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건조기가 다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남편은 잠자리에 든다.
남편이 바지런히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나는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다. 그나마 일 년 전에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은 덕에 남편보다 더 빨리 집안일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퇴근 이후 주로 나는 주방에서, 남편은 청소와 빨래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렇게 우리의 가사노동은 평행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부재중이라 저녁밥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푹 쉬자는 생각은 단 하루만 유효했다. 해야 할 일을 쌓아두거나 미루지 못하는 성미인 나는 결국 남편이 하던 집안일까지 도맡아서 해야 했다. 매일 청소기를 돌리는 남편을 보며 ‘그까짓 것 하루쯤 안 돌리면 어때’라고 생각했지만, 바닥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을 보니 남편이 이해가 되었다. 다이슨 청소기에 누가 조명을 달아 먼지를 그렇게 잘 보이게 만든 것인가... 날로 좋아지는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더욱 부지런하게 하다니, 이것이 진정 기술의 편리함이라 할 수 있는가.
부지런한 남편을 보며 한때 유난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그가 없으면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없으면 좋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한 존재인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언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