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뭣 모를때 수행한 인생의 과업

아들딸 둘은 낳아야지~

by 민희

성인이 되면 취업을 하고, 적당한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한다. 서른 살 안에는 시집을 가야 한단다. 그러려면 20대 후반부터는 부지런히 결혼을 전제로 이성을 만나야 한다. 서른 중반쯤 되면 노산으로 분류되니 서른 전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 아이는 적어도 둘은 있어야 하며, 이왕이면 아들딸 고르게 낳는 것이 좋다.


어른들이 늘 말해온 보통의 삶의 과정이었다.

스무 살부터 독립해 타지 생활을 해온 나는 일찍 가정을 꾸려 안정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마침 적당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이듬해 그와 결혼 했다. 그리고 28살에 첫째 아이를 낳았다.

그때는 ‘결혼’과 ‘양육’을 동의어로 생각할 만큼 결혼을 하면 당연히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부정하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의무로 받아 들였다. 고민할 것이 있다면 언제 아이를 낳는 것이 좋을지 그 시기만이 고려 대상이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4개월이 되었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과 산부인과에 갔다. 그때쯤 되면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었다. 그시절 의사는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성별을 표현하곤 했다. 색깔로 남녀의 성별을 암시하다니, 지금이라면 코웃음을 칠 테지만 그때는 꽤 진지하게 의사의 색깔 판정을 기다렸었다.

첫째니까 어떤 성별이든 좋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딸이었으면 했다.


“아이 성별 나왔나요?”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의사에게 물었다.

물컹한 젤을 배 위에 바르며 초음파를 보던 의사는 내게 ‘분홍색 옷을 준비하라'고 말해주었다. 나와 남편은 마주 보며 웃었고, 나는 매우 기뻤으며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의 웃음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기운이 배어 있었다.


내심 아들을 바랐었던 거다. 그동안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다가 막상 딸이라고 하니, 조금 아쉬웠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위로 누나 셋을 둔 막내아들이다. 보수적이고 유교 성향이 짙은 집안에서 자라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스물아홉에 둘째를 임신했다.

외동은 외로우니까 아이는 무조건 둘, 어차피 낳을 거라면 서른 살 안에 낳아서 둘을 같이 키울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내어주어야 할 ‘출산과 양육’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하는 인생의 과업을 수행하듯 뚝딱 해치워 버렸다.

철저하게 부모의 입장에서, 이왕이면 아들딸 한 명씩 키우면 좋겠다 싶었다. 배 속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는 달이 되었고, 이번에도 의사에게 내가 먼저 물었다.



“뭘 궁금해하세요. 조금 더 지나면 알게 됩니다.”

첫째의 성별을 이미 알고 있어 그런가. 의사의 개구진 말투가 거슬렸다. 아들을 밝히는 엄마로 보이는 것이 싫어 재차 묻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다음 번에는 묻지 않고 초음파 영상을 세심히 봐야겠다고 남편과 이야기하며 수납창구를 향해 걷도 있는대 누군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진료실에 있던 간호사가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것 아닌가.


“이것 보세요. 아들이에요 아들. 여기 튀어나온 것 보이시죠?”

간호사는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오른손에 쥔 초음파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사진 속에는 엉덩이 가운데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살덩이가 보였다. 선명하게 보이는 그것의 존재감은 성별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가족계획을 이뤄 기뻤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마음도 컸다.

첫째가 딸이니 이번에는 아들이었으면 했고, 양쪽 집에서도 아들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시부모님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세 명의 딸을 정확히 2년 터울로 낳고, 또 2년 있다가 넷째로 아들을 낳은 그들의 삶이 아들에 대한 신념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너희가 ‘장 씨’다. 외손녀들이 아무리 이뻐도 같은 성씨가 최고다.”

어느 추석 명절날, 취기에 오른 아버님이 친손주들을 양팔로 나란히 안고 말했다.


“네 오빠가 어렵잖니, 나중에 논 팔면 오빠 줘야지 않겠냐. 그래도 아들인데, 잘 살게 도와줘야지”

엄마는 오빠에게 재산을 더 물려줄 것처럼 늘 말한다. 없는 재산을 탈탈 털어서라도 줄 기세다.


이제 대를 잇는다는 말은 시대 속에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아들딸 상관없이 자식이라면 동등하게 상속권을 가진다. 변해야 할 것은 응당 그래야 한다는 부모들의 신념들 뿐이다.



'대를 잇는다는 건 핏줄과 성, 그리고 상속권이었다.' 라는 주제로 글쓰기 수업때 썼던 글을

서랍 속에서 꺼냈다. 조금 더 자유로워 지려면 내 안에서 더 꺼내 놓아야 한다.

뭣도 모를 때 새마을 운동하듯 낳은 아이들이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키우기 힘들어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름, 그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