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희 Apr 09. 2023

혹시 아니? 원석을 발견할지도.

참 욕심이 많다.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고 싶고, 퇴근 후에는 책을 많이 읽고, 글도 꾸준히 쓰고 싶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은 독서모임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일상의 활력과 체중 관리를 위해서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일주일에 세 번은 아침 6시에 수영강습을 받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아침에는 수영동호회에 가고… 헉헉..


써 놓고 보니 꽤나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지런 떨기 바쁘다. 정해놓은 미션들이 착착 진행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일상의 바쁨은 충만감으로 채워지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그런데 이 중 하나가 균형을 잃고 삐그덕 거리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들이는 시간에 비례해 실력이 늘지 않을 때가 주로 그렇다.


과연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 걸까.

이렇게 가다 보면 나는 어딘가에 다다르기는 할까.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내가 '부지런히' 살고는 있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거다. 양손에 가득 쥐고 있지만, 손가락 사이로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무엇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고 놓치고 사는 것 같다.


‘욕심이 많아.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거지.‘


얼마 전 회사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스스로 욕심이 많다고 말해 버렸다. 남들과 경쟁해서 무엇을 쟁취해 내려는 욕심이 아닌 나 스스로를 향해 부리는 욕심이라고 말이다. 그 욕심을 채우느라 주말에도 여유를 갖지 못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하니 선배는 자기도 그렇다며 내게 동조해 주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잃을 때가 종종 있다.  내게 '해야 할 일'은 회사 업무를 실수 없이 잘 해내면서 가정을 잘 챙기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은 나를 돌보는 독서와 글쓰기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일도 해야 할 일이 되어 있었다. 책 읽기는 꾸준히 참석하는 정기 독서모임의 형태로, 일기 쓰듯 적어오던 글쓰기는 브런치에 주 1회 연재로 쓰게 되었다.  최근에는 써 놓은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해 2주 연속 글을 올리지 못하자 브런치에서 알림을 보내왔다. 

'글쓰기는 근육과 같아서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며 내 글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독려의 메시지에 빨리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지금의 내가 숙제를 미뤄두고 놀고 있는 학생 같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이렇게 해야 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경계가 흐려져 모두 '해야 할 일'이 되는구나. 


'이것도 찔끔, 저것도 찔끔하다가 정말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릴까.'

 

꼭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다 보면 뭐라도 이루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게 된다. 원래부터 나는 한 우물을 깊게 파지 못했다.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는 대신 내 흥미를 이끄는 것들을 위주로 찾아다녔다. 일을 할 때도 여러 부서를 거쳤고, 독서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이 책 저 책을 동시에 읽었다. 한 가지를 오래도록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내게는 신기하면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것저것 좋아하는 일을 한답시고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까 봐, 불안할 때가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부여한 과업을 앞에 두고 스스로를 너무 옭아매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나가는 밖에 없다.'



기획도 브리핑도 척척 해내는 드라마 속의 커리어우먼,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면서 그 속에 사유와 통찰을 풀어내는 브런치 수상작가 같은 사람은 될 수도 없고 되기도 어렵다. 나는 나대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일단 시작했고, 하는 김에 계속하고 싶고, 그 안에서 기쁨과 성취를 느끼고 싶다. 스스로의 기준을 낮추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까. 이제는 루틴이 되어버린 나의 해야 할 일들을 이왕이면 즐겁게 하고 싶다. 일도, 독서도, 글쓰기도, 그리고 다른 무언가도... 한 발 아니 반보라도 꾸준히 내디뎌 보련다. 못해도 괜찮고 걸러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련다. 혹시 아나? 여러 우물을 파다가 땅 속에서 원석을 발견할지.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미니멀리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