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희 Mar 05. 2023

어쩌다 미니멀리스트

나는 물욕이 없어 소비에 신중한 편이다. 

남편은 무엇이든 쓰임이 다 했다 싶으면 과감히 버리는 사람이다. 물건을 잘 사지 않는 나와 잘 버리는 남편이 만났으니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쩌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유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주변 정리가 잘 된 간소한 삶을 추구하면서 미니멀리즘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잘 사지 않는 내 성향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시대의 트렌드와 딱 맞는다.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정리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에는 추리고 추려진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게 되었다. 버릴 때마다 아까워 망설이기도, 버린 물건이 생각나 아쉬워하기도 하다 어느 날부터 소비에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가'를 생각하다가 결국 사지 못할 때도 많았다. 

이런 나는 과연 미니멀리스트인가?라고 생각하게 된 몇 가지 일화가 있다.  



분양받은 새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집주인이 집을 내놓아 여러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었다. 이사에 대비해 물건을 많이 정리한 상태였고, 세입자가 빨리 구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2명이 같이 집을 보러 왔었다. 아이들 방을 시작으로 거실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보고는 마지막으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의 가장 구석에 있는 드레스룸을 보고 말했다. 

"드레스 룸 또 있어요?"

"아니요."

"이게 다예요?  어머 ~ 나도 이렇게 미니멀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만 좀 사야 돼 우리는 "

그러더니 멋쩍은 듯 정리를 잘한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집을 보러 와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게다가 내 옷장을 보고는 이게 다냐고 묻다니.. 그 여자의 옷장은 얼마나 방대한지 궁금했다. 많이 가진 것을 후회하는 여자의 차림새 치고는 센스가 전혀 없어 보였다.

'역시 양보다는 질과 센스지'라고 생각했다. 

옷이든 물건이든 많고 적고를 떠나서 손이 잘 가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 잘 맞고 편한 것들, 자꾸 손이 가는 애정하는 것들 위주로 소유하며 살고 싶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물건을 사는데 신중한 데다가 버리지 못하는 날 대신해 잘 버리는 남편이 있으니 집에 물건이 많이 쌓이는 법이 없었다. 이 정도면 미니멀하게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곤 소박한 내 옷장이 더 좋아졌다. 


"미니멀리즘이 좋은 것만은 아니야. 그건 불편한 거야. 필요한 건 사서 써야지. 하여튼 미니멀리즘은 나하고 안 맞아."

그릇계의 명품인 로열코펜하겐 잔에 커피를 마시며 형님이 말했다. 다른 집에 가면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데 형님네는 갈 때마다 늘 새로운 구경거리들이 있었다.

주방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면 예쁜 그릇과 주방용품을 볼 때 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그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로열코펜하겐 그릇 세트가 아닌 고블렛풍의 디저트용 포크였다. 짙은 빨간색에 은색 도장이 있는 포크로 케이크를 떠먹을 때마다 왠지 내가 우아해지는 것 같았다.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들을 볼 때면 없던 물욕이 생기기도 한다. 

형님이 알려준 사이트에서 디저트 수저포크 몇 세트를 담으니 십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러다 집에 쌓여있는 포크들이 생각났다. 예쁘지는 않지만 본연의 기능으로 쓰이기에 전혀 지장없는 나의 포크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일단 보류. 

시간이 지나면 좋았던 마음도 사그라드는 법. 사람도 그런데 물건은 오죽하랴. 그렇게 수저포크 세트는 내 장바구니를 며칠간 머물다 유유히 사라졌다.




새 집에 이사와 짐들을 정리하며 많이 놀랐다. 나름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당장은 사용하지 않지만 언젠가 사용할 거라며 쓰임을 유보해 놓은 물건들이 곳곳에 많았다.

꽉 차면 비우고 싶고, 비우면 또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게 사람 맘인지라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영하 13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