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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May 06. 2023

오리에게 빼앗긴 아들의 품

회사에 24개월 된 남자아이를 키우는 후배가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출근하느라 후배는 항상 바쁘다. 행여나 지각이라도 할까 봐 아침마다 사무실에 헐레벌떡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면 딱 그 나이 즈음의 아이들을 키우던 내가 생각난다. 


두 살 터울인 아이들이 4살과 2살 즈음이었을까. 어린아이들을 키우느라 한창 체력이 부족할 때라 아침 7시가 넘어도 좀처럼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지금이야 아침잠이 줄어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뜨지만 그때만 해도 천근만근인 몸뚱이를 아침마다 일으켜 세우는 건 고역이었다. 


겨우 일어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10분도 안되었다. 나머지는 아이들을 깨우고 입히고 먹이느라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한창 어린 아가들이라 아침밥도 빼놓지 않고 꼭 챙겨주었다.

회사에 늦지 않으려면 적어도 8시 20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서야 했다. 바지런히 준비를 하고 한쪽 어깨엔 내 가방을, 다른 쪽 어깨엔 어린이집 가방 두 개를 동시에 메고 현관에 선다. 

막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아이들 중 하나가 무서운 한마디를 던진다.  


"응가"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 인 것을 나는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시간을 아끼려면 빨리 행동해야 한다. 화장실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변기에 앉혀놓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다. 나만 급하지 아이는 급할 게 없다. 변기에 앉아 양쪽 다리를 흔들어 대며 천하태평이다. 


"빨리 싸라" 


내가 한마디 하면 그때부터 눈썹과 입에 다부지게 힘을 주기 시작한다. 다 했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았다. 


"아직"


나는 시계를 계속 본다. 어린이집에 들렀다 회사에 도착할 시간을 계산하며 빨리 좀 싸라며 아이를 재촉하기 시작한다. 너희들은 꼭 아침마다 응가를 하니, 이러다 엄마 회사에 늦으면 어떡할래, 아이들이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푸념들을 혼자서 쏟아내었다. 화장실에서는 집중을 해야 빨리 마무리 할 수 있는 법인데 나도 참 너무했다. 지금이라면 문을 닫아주고 조용히 밖에서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나마 둘 중 하나만 볼 일을 보면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둘이 순서라도 정한 것처럼 차례로 화장실을 드러드는 날이면.. 워킹맘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들어가는 날이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며 아이들 입에 억지로 몇 숟가락씩 떠 먹여 놓고, 아침밥을 먹으면 장 운동이 활발해서 신호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장이 짧으니 신호가 더 빨리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지 못하고 아이들을 채근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유란 것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사치인가 보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후배에게 종종 말한다. 지금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니 많이 안아주라고. 

후배는 10분 넘게 안아주어도 계속해서 안아달라는 아들 때문에 팔이 너무 아프단다. 한창 육아에 지쳐있을 때라 '팔이 아프더라고 더 많이 안아줘라'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후배의 아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의 아들을 생각한다. 5월에 생일인 아들은 선물로 오리인형을 골랐다. 길이가 160cm로 배가 두둑이 나온 오리인형이 우리 집에 들어왔다. 밤에 잘 때 오리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것도 모자라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도 오리인형을 끌어안고 거실로 나온다. 


그 모습을 보니 오리인형에 질투가 났다. 전 날 밤에 아들에게 안아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다. 엄마를 안아주는 게 싫으냐고 물었더니 마지못해 내게 와서 슬쩍 몸을 부딪히고 갔다. 이제 조금씩 엄마의 품에서 멀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라지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너! 엄마는 안아주지도 안으면서 오리는 하루종일 안고 다니냐?"

"아니 그게 아니라 ~ " 

아들은 뒷 말은 잇지 않은 채 다소 어이없다는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니 다행인가 싶다가 엄마가 한낱 오리인형에게 아들의 품을 빼앗겨 질투를 한다는 사실에 나도 헛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안아달라 보채고, 엄마를 괴롭히는 아빠를 응징하던 엄마 바라기일 때가 있었는데.. 훌쩍 자라난 지금(초등학교 5학년)은 엄마 품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받아여야지 어쩌겠나. 지금은 한낱 인형이지만 앞으로는 아들의 품에 여자 사람이 있게 될 날이 머지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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