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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an 06. 2020

새해의 의미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하늘은 나는 자동차도, 지구 멸망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 날 술을 진탕 마시고 여느 때와 똑같이 피곤한 아침을 맞았을 것이다.

해가 넘어가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결국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에 든 나는 다음날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그 후 3시간 40여 분 동안 텅 빈 고속도로를 85mph를 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달렸다. 올해부터는 과속 딱지와 이별이라는 생각으로. 또 내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술 없이 맨 정신으로 새해를 맞이한지도 올해로 대략 2년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해는 숙취와 피곤함으로 점철된,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 하루였다. 마지막 남은 한 해는 보내기가 아까워 한 시간이라도 더 깨 있으려 노력하지만, 막상 파티의 주인공인 새해 첫날은 술에 절어 희미하게 보낸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역시 시작보다는 끝이 더 미련이 남는가 보다. 겪은 게 있으니 그만큼 의미 부여를 할 것도 많아지고 그래서 떠나보내기가 아쉽다. 물론 주당들에겐 술을 마시기 위한 수많은 핑곗거리 중 하나인 날일 뿐이다. 예전의 나였어도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새해까지 쭉 취해있었을 것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금연을 했다. 근 10년간 하루에 반 갑을 너끈히 피며 한 번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왜인지 이번엔 피고 싶지 않아졌다. 술을 끊을 때와 비슷했다. 이제 나는 술도 담배도 카페인도 하지 않는다. 다만 신경 안정제와 수면제는 지금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먹는데 담당 의사는 이제 약을 끊어도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내 몸은 아직 그렇지 않아서다. 그것만 빼면 나는 소위 clean 하고 sober 하다. 내 몸을 몇 년간 잠식한 물질들(약, 술, 담배,...)을 끊으며 남들에게 나를 해명해야 하는 일이 숱하게 있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날수록 주변 사람들도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게 가장 고맙다.


항상 쾌락과 자극을 쫓던 과거의 나와 달리 반복적인 일상에서 안정감을 얻는 지금의 나에게 9-5의 직장은 최고의 제넥스다.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사진이나 블로그를 보지 않으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빠르게 간다. 내 젊음이 회사에서 허비되는 것 같아 가끔 허무할 때도 있지만 서른 후엔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꿈 하나로 매일 커피 한 잔 없이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저번 주의 반복일 뿐이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회사에 나가야 하고 그동안 작업하던 프로젝트들도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일 년에 한번 먹는 떡국을 먹을 수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괜히 들뜨다가 괜히 실망하는 일을 수도 없이 겪은 후라 이젠 모든 일에 무던해지기로 했다. 잘 돼가진 않지만 어쨌건 실천 중이다. 그냥 내가 하는 일에서 인정받고 남아있는 소수의 지인들이나 잘 챙기며 아프지 않은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너무 거창한가? 원래 제일 평범하면서 갖기 힘든 게 무탈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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