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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Apr 30. 2020

2020.01.25 / 03:27pm

01.
블로그에 글을 쓰고 며칠 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설날이라 언니에게 본가에 언제 갈 건지 물어봤다. 엄마 아빠 모두 연락이 안 된다며 바쁘신 것 같다고 해서 오빠에게 카톡을 했더니 언니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셋이 모여 얘기를 하고 싶어서 (무엇보다 오빠에게 아빠 상태가 어떤지 알아내려고) 영상 통화를 했다. 세 남매가 모이니 할 얘기도 많고 진짜 다 같이 한국에 있는 것처럼 재밌었다. 그리고 한창 재밌게 얘기를 나누던 도중 오빠가 엄마 전화를 받고 집으로 급하게 돌아갔다. 나는 그저 엄마가 우리가 언니랑 시간을 보내니까 탐탁지 않은가 보다 하며 되려 엄마를 원망했다.


자정쯤 언니와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쯤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는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ㅇㅇ아 너 빨리 당장 한국 와야 돼. 지금 비행기 티켓 사서 바로 와. 했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기도 했고 일단 오빠를 진정시키기 위해 “오빠는 아빠랑 안 살아봐서 아빠 아픈 거 처음 보겠지만 아빠 몇 번씩 이랬어. 괜찮을 거야. 라고 했고” 오빠는 “아니야, 여기 지금 응급실이고 아빠 몇 주 전부터 응급실 들락날락했어. 아빠 지금 의식이 없어.” 라는 말을 했다. 오빠의 다급한 목소리 뒤로 엄마의 울부짖음이 멀리서 찢어지게 들렸다. 엄마의 그런 통곡을 난 들어본 적이 없다. “일단 나 여기 저녁이라 아침에 티켓 사고 연락할게.” 하고 끊었다.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심각성을 몰랐다.

오빠에게 또 한 번 전화가 온다. 이번엔 엄마가 받는다. 엄마는 오빠와 비슷한 톤으로 “티켓 사서 한국 천천히 와. 엄마가 아빠 살리려고 모든 거 다해봤는데 안되더라” 하며 “엄마는 네가 제일 걱정돼 혼자 잘 올 수 있겠지? 차 타지 말고 택시 타고 안전하게 와 천천히 와 서두르지 말고.” 라고 애써 따듯한 말투로 날 안심시켰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딱 교통사고 났을 때처럼. 도저히 핸드폰을 손에 쥘 수도 자판을 누를 수도 없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제임스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존에게 전화를 하니 당장 티켓을 사고 필요한 짐만 싸서 아침 첫 비행기로 한국에 가라고 했다. 그때가 새벽 1시 20분쯤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어찌저찌해서 티켓을 사서 오빠에게 영수증을 보냈다. 내 카톡을 받은 오빠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오빠는 전화를 받고 한참 말이 없었다. “오빠 괜찮아? 아빠 아직 거기 있지? 오빠 아무 일 없지?” 그리고 숨을 깊게 쉬고 나는 물었다. “오빠, 아빠 돌아가셨어?”

"ㅇㅇ아 아빠 돌아가셨어"

심장이 철렁했다.

오빠는 통곡을 했다. “나 지금까지 잘 참아오고 있었는데 ㅇㅇ아 너 목소리 들으니까 너무 눈물이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지금 어떻게 해”

항상 누구보다 강했던 오빠가 무너지자 나는 더 마음을 굳게 먹게 됐다.

"울지 마 오빠 울지 마 괜찮아 그래도 오빠가 아빠 봤지? 아빠 임종 지켰지? 나 그래도 오빠가 거기 있어줘서 너무 다행이야.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나 금방 갈게 나 갈 때까지만 잘 견디고 있어 나 빨리 갈게"

그 이후로는 많은 기억이 없다.

정신이 없는 채로 존과 통화를 하며 짐을 싸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웃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꿈같았다. 사장에게 가족 일로 급하게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문자를 남겨놓고 존과 새벽 네시까지인가 전화를 하고나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밤을 새워서 너무 피곤한데 정말 존이 말한 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또 기억이 없다. 새벽 여섯시쯤 해가 어스름이 떴고 나는 이제 잠을 자기엔 너무 늦었다 싶어 샤워를 했다. 씻고 나니 피곤함이 사라지고 제정신이 들었다. 집을 얼마 동안 비울지는 모르지만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어서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설거지를 했다. 언니와 오빠랑도 꾸준히 전화를 했다. 그 와중에 선식을 타먹고 전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며 같이 예약한 우버를 기다렸다. 차가운 아침 바람을 뚫고 우버를 타러 가는데 가슴이 후련했다. 밤을 새워서인지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냥 졸리고 멍할 뿐.

공항에 도착해서 빠르게 티켓팅을 하고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는 지방에 있는 가족들이 거의 다 도착하고 있다며 지금 누구보다 네가 제일 보고 싶어. 라고 했다. “울지 말고 나 금방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견디고 있어 알겠지” 하니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안 울어.” 한다. 상주로 사람들을 맞아야 하기에 지금까지 겉으로 잘 참고 있었던지 언니도 오빠가 멀쩡해 보인다고 했다. 막내 고모를 마지막으로 이제 가족들이 모두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모두 나만 기다리고 있다. 입관을 해야 하는데 내가 없인 할 수 없어서 내가 도착하자마자 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엄마 오빠 언니 모두 잘 견디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내가 도착하자 모두 무너져버릴게 뻔했다. 나도 전화로는 가족들 앞에서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도 내가 괜찮은 줄 알고 있다. 오빠만큼 나도 내 감정을 잘 억누르기도 하지만 존에게 이미 다 털어놓은 후라 가족들 앞에서 더 씩씩할 수 있었다. 비행기 타기를 기다리는데 오빠에게 전화가 와서 엄마를 바꿔준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참았던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바꾸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내 엄마가 공항 도착했냐며 약 먹고 밥 챙겨 먹고 조심히 와라고 말한다. 울음을 목 끝까지 억누르는데도 엄마는 내게 울지 말라고 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타 이륙할 때의 짧은 공황 상태를 아빠가 준 염주를 손에 꼭 쥔 채 버텨냈다. 너무 무서워서 아빠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꼭 아빠에게 가야 한다고 약한 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내가 지금 아무리 고통받더라도 아빠를 봐야 하기에 무섭지 않았다. 내가 가는 길을 아빠가 지켜 주는 걸 알고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데 애피타이저를 먹고 나니 어느새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식사를 치워달라고 말하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오지 않고 몽롱했다. 옅게나마 잠을 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가 밥을 먹으면 좀 나을까 싶어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하고 몇 숟갈을 먹은 뒤 누웠다. 그래도 한 6-7시간은 잔 것 같다. 일어나니 약기운이 사라져 훨씬 정신이 또렷했다. 물론 약기운이 떨어지면 현실을 마주하게 돼서 다시 눈물이 난다. 이제 착륙을 2시간 남기고 있다. 이 마지막 기내식을 먹고 나면 도착이다. 아빠는 이미 떠났다. 남은 가족들이 걱정된다. 나는 강해져야 한다.

아빠가 가기 전 엄마에게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애들은 걱정이 안되는데 엄마를 혼자 남겨 두고 가서 미안하고 엄마가 가장 걱정된다고. 그래서 엄마를 위해서라도 나는 강해져야 한다. 아빠가 걱정하지 않게. 편안하게 쉴 수 있게.


02.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입국장을 나와 짐 찾는 곳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빠를 보지 못할까 마음이 급했다. 가는 길에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 한국에 들어온 얘기와 이유를 설명하고, 짐 찾는 곳에서 기다리며 다른 친구 한명에게도 전화를 했다. 게이트를 나오며 픽업을 해주기로 한 부모님 회사의 대리님께 전화를 했다. 밖으로 나와 처음 맞는 한국 공기는 생각보다 포근했다. 대리님을 만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 마냥 멀게 느껴졌다. 차가 막힌 것도 아닌데.


도착해서 나를 식장 입구에 내려주고 대리님은 주차장으로 가셨다. 병원은 공항과 달리 싸늘하고 추웠다. 장례식장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기 전, 나는 마음을 다시 굳게 다잡았다. 결연한 의지로 한 층을 내려가니 막내 고모와 삼촌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바로 둘을 알아보고 순서대로 껴안았다. 내 인기척을 못 느낀 둘은 당황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이내 얼른 아빠 보러 내려가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한 층을 더 내려가는 길에 스크린으로 아빠의 사진, 이름, 그리고 엄마와 오빠, 내 이름이 보였다. 아빠 안녕, 나 왔어. 울컥하는 마음을 접어 넣고 엄마를 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미안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눈에 안 보였다. 나를 본 엄마는 오열하며 네가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왔냐며 내 몸을 부둥켜안았다. 침착하게 엄마를 달래고 나니 언니와 오빠가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 둘도 나를 보고 눈물이 터졌다. 우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오빠를 달래고는 방에서 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아빠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다시 나왔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마시고 아빠에게 절을 올렸다. 액자 속 아빠 모습이 낯설었다. 그 후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미리 연락을 해놓은 친구 두 명이 이미 와있다는 얘기를 듣고 식당에서 친구들을 맞았다. 상복을 입고 애들을 보려니 기분이 이상했지만 반갑긴 했다. 잠시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급하게 나갔다. 입관을 한다고 했다.


아빠는 수의에 쌓인 채 목석처럼 누워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어 푸르스름했다. 이런 걸 보고 안색이 창백하다고 하는구나. 얼굴을 아빤데 몸에 있는 삼베수의가 낯설었다. 수의의 촉감과 아빠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은 모습이 소름 끼쳐 아빠 얼굴에만 눈을 고정했다. 엄마는 아빠를 보며 또 오열했다. 내가 왔다고 아빠에게 소리를 치며 눈을 뜨고 나를 보라고 했다. 오빠와 엄마는 아빠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졌지만 나는 차마 손을 댈 수 없어 수의 손목 끝자락만 만지작거렸다. 비행기에서 길게 써온 편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말할 수 없었다. 아빠 고마워, 미안해, 이제 아프지 마. 엄마는 걱정하지 마 내가 엄마 잘 챙길게. 사랑해 아빠.라고 짧은 인사를 했다. 한 사람씩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관에 넣기 전 아빠의 얼굴을 삼베로 꽁꽁 싸매는데 난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오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가 관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입관을 하고 나서는 다시 의연한 나로 돌아왔다. 친구들을 보내고 가족들과 얘기도 하고 웃고 농담도 했다. 피곤한 줄도 몰랐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상주 자리를 오빠와 친척 동생과 번갈아가며 지키다 보니 떠날 시간이 됐다. 장례지도사가 와서 아빠의 영정사진을 누가 들 건지 물었다. 보통 상주가 아닌 직계 가족 중 남자가 드는 건데 딸이나 부인이 들어도 된다길래 바로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아빠랑 제일 친한 내가 첫째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상주 못 되는 것도 서러운데 이것마저 뺏기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을 안 엄마도 그러라 했다. 영정은 무거웠다. 나중엔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그저 아빠를 마지막으로 모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좋았다. 집과 회사로 영정을 들고 가 한 바퀴씩 돌았다. 화장을 하러 세종시로 내려가는 새벽, 난 운구차 기사님 옆에 앉아 밤을 새웠다. 기사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화장터에 도착해서 화장을 하고, 유골을 받아왔다. 나는 영정을 계속 들었고 오빠는 유골함을 안았다. 유골을 묻으러 아빠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언니와 오빠는 잠이 들었는데 나는 대리님과 얘기를 하며 갔다. 차에선 들릴 듯 말 듯 작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문득 대리님께 볼륨을 키워주실 수 있냐고 여쭸다. 그냥 갑자기 그 노래가 듣고 싶었다. 노랫소리를 키운 대리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아빠와 시골에 내려갈 때면 항상 듣던 노래라고 했다. 아빠가 노래가 듣고 싶어서 내 입을 빌렸구나. 우린 그렇게 오랫동안 말없이 노래를 들었다. 내려가는 길, 출발할 땐 흐리기만 하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착을 했을 땐 이미 동네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시골에 미리 내려가 있던 가족들이 급하게 공수한 우비를 대충 둘러매고 오들오들 떨며 할머니 댁에 고모부와 가족들이 친 텐트 밑에서 절을 했다. 비는 점점 세게 와 바닥에 깔아 놓은 돗자리엔 물이 흥건했고 이미 손끝 발끝은 얼어서 감각이 없었다. 영정으로 돌아온 아빠를 본 할머니는 통곡을 했고 엄마도 그저 죄송하다며 할머니를 얼싸안고 울기 시작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이 이렇구나. 한때는 부모를 먼저 떠나려 했던 내 지난 과오를 반성하게 됐다. 종묘에 유골을 묻으러 가는 길은 비로 진흙탕이 되어 한 발자국을 떼기가 힘들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한 걸음걸음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신발에는 뻘이 묻어 축축하고 무거웠고 발은 얼어붙었다. 상복도 비에 젖어 무거운 추를 매단 듯했다. 유골을 묻고, 그 위로 오빠와 엄마 내가 흙을 세 번씩 뿌렸다. 지금껏 울지 않았지만 눈물이 났다. 어른들 뒤에 서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으니 사촌 동생이 와서 내 등을 토닥였다. 마지막으로 절을 하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울고 말자는 생각에 아빠를 부르며 크게 울었다. 어떻게 날 두고 갈 수 있냐는 원망과 이젠 행복하라는 기원을 담아서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영정을 들고 묘를 돌아 나와 아빠가 생전에 몇 년을 걸쳐서 지어 놓은 절로 향했다. 법당에 부처님을 모시고 영정도 그 옆에 모셨다. 나는 이때까지 영정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었다. 현실 도피였을까. 부처님께 먼저 절을 올리고 아빠에게 기도를 하는 중에 고개를 들어 영정을 올려다보니 아빠가 나를 향해 씩 웃어주었다. 많은 의미가 담긴 웃음이었겠지만 아마 본인이 계획한 대로 다 잘 따라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안도와 기특함의 웃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그동안 마음속 깊이 숨어있던 응어리가 빠져나갔다. 이제 내가 할 도리는 전부 했고 아빠도 만족해하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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