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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것저것 Oct 30. 2022

[독후감] H마트에서 울다


#1.

 언젠가부터 소곱창은 내 최애 음식이 되었다. 식당에 가면 보통 모둠을 시키는데, 곱창, 막창, 대창, 벌집, 염통, 그리고 천엽까지 전부 다 맛있게 먹는다. 구이가 조금 느끼하게 느껴질 때 전골을 시키고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면 그렇게 깔끔할 수 없다. 곱창을 통해 많은 사람들도 만났다. 곱창 집에서 처음 만나고, 곱창 먹은 날 사귀었던 분도 있었다. 술이랑 잘 어울려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냥 내가 곱창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지난 추석에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다가 최애 음식 얘기가 나왔다. 실컷 내가 곱창 좋아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아빠한테도 여쭤봤는데, 돌아온 대답은 아빠도 '곱창'이었다. 웃으면서 다음에 같이 먹자고 답했지만,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예전보다 아빠와 훨씬 가까워졌고 꽤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공유하면서도 함께 먹어본 적도 없었다. 내 입맛이 어디서 왔을지 왜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미셸은 음식을 통해 어머니와 교감한다. 다른 영역에서 권위를 앞세우던 어머니도, 음식에 있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미셸은 식사를 통해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며, 이별 후에는 요리를 통해 어머니를 떠올린다. 돌이켜 보면, 나도 아빠와 교감을 나누던 순간엔 항상 음식이 있었다. 음식도 몇 종류 모르던 어린 시절, 별생각 없이 계란 후라이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이후 내 밥 위에는 항상 계란 후라이가 놓여 있었다. 표현은 부족해도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입대 직전에 아버지와 단 둘이 술자리를 가지면서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괜히 우리말에 밥상머리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아버지와 곱창전골을 먹으며 또 어떤 교감을 나눌지 기대가 된다!


#2.

 글을 쓰는 중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자동차 계약 사기 뉴스 봤냐, 돈 크게 빌려 주지 마라, 그런데 오늘 빨래는 했냐. 10년 전에 하던 잔소리를 지금도 똑같이 하신다. 책에서 잔소리하던 정미 씨가 생각나 괜스레 웃음이 났다. 어릴 때는 잔소리를 하는 엄마와 정말 많이 싸웠는데, 성인이 되며 싸움이 크게 줄었다. 잔소리가 줄거나 내가 성숙해진 건 아니고, 그저 떨어져 지냈기 때문이다. 일 년에 많아야 며칠 보는 사이가 되면서 서로가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소중해졌던 것 같다. 아마 미셸도 험난했던 시기에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게 오히려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잔소리를 듣는 느낌이 또 다르다. 부모님이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면서, 본능적으로 거부하던 죽음도 생각하게 된다. 아빠는 이미 10년 전에 위암을 겪으셨고,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엄마도 점점 몸에 성치 않은 곳이 많아지고 있다. 점점 부모님의 잔소리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마저도 듣지 못하는 날이 언젠가 올 텐데, 화만 내고 말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속절없이 어머니를 잃은 미셸에 비하면 이별을 준비할 시간은 많은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더 챙기고, 신경 쓰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희망을 품어 본다.


#3.

 책이 나에게 엄청 와닿진 않았다. 아마도 내가 미셸의 입장에 처해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와 딸의 관계, 이방인으로서의 느낌, 부모님과의 이별 등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미셸과 비슷한 상황인 분들에게는 인생 책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은근한 위화감도 느껴졌다. 보통 어떤 작품에 '대한민국'이 한 스푼 가미되면 더욱 와닿았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선 반대로 몰입이 깨졌다. 한국 음식이나 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보통의 한국인보다 많이 안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이게 조금 꾸며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굳이 '한국'음식과 '한국인'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미셸과 정미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물론 한국에 대해 모르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설명이 되었겠지만, 작가 성격처럼 조금 더 담백하고 솔직하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사실, 지금 책 그대로도 나쁘지 않다. 꽤 재밌게 읽었고, 나중에 또 읽어볼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아마도 내가 미셸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다시 볼 것 같은데... 좋은 상황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때 이 책을 읽고 위안을 받기를 바라 본다.

#4.

 작가가 보컬로 있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노래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Jubilee>라는 앨범으로 그래미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다고 하니 요새 핫한 가수인 것 같다. 이 앨범에 수록된 'Tactics'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다가 이 곡의 가사 해석 영상을 보고 그냥 클릭했는데, 꽂혀버렸다. 책에서도 언급된 <저승사자, Psychopomp> 앨범도 들었는데, 앨범 표지에 나온 정미 씨가 미셸과 무척 닮았다고 느꼈다. 얼마 전에 락페스티벌 게스트로 방한도 했던데, 이미 국내 팬도 꽤 많은 것 같았다. 그땐 몰랐지만, 다시 방문한다면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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