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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회 Aug 20. 2024

우연한 행복

<평범한 인생> 북 캠프 참가기 

난생처음으로 1박 2일 북 캠프에 참가했다. 홍천에 있는 비영리 기관 행복공장에서 주관하는 행사이다. 큰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참가 안내문이 왔다. 권장 도서는 카롤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이다. 90여 년 체코에서 철도 공무원 삶의 자전적 소설이다. 나는 이공계로 문학은 공감, 문해력이 부족하고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이번에는 숙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읽기 도전을 한다. 금방 눈이 침침하여 집중되지 않고 여러 번 띄엄띄엄 읽었다. 


북 캠프 2주 전부터는 교통, 숙소, 참석 안내 문자가 수시로 상기시킨다. 운전하지 않고 오랜만에 시외버스로 이동한다. 홍천터미널에 도착하면 픽업 차가 대기한다고 되어 있다. 버스는 옆 좌석도 비어 좀 자유롭고 생각보다 짧은 1시간만 도착한다. 홍천은 조금 규모가 큰 전형적인 시골 버스터미널이지만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보니 도로변에 봉고차와 안내 명찰을 단 젊은이가 보인다. 북 캠프 차인지 확인하니 이름을 묻는다. 예약자 명단을 보고 없지만 일단 타라고 한다. 애초에는 운전해 가려고 하다가 며칠 전 내 차 문제가 생기면서 바꾸었는데, 아무튼 다행이다.


한적한 국도변에 있는 행복공장 입구에는 이미 도착한 차로 주차 공간을 다 채우고 있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넓지 않은 강당에 의자가 둥글게 놓여 있다. 명찰을 받고 약간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진행자로 짐작되는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묻는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아직 도착하지 않은 3명에게는 개별 연락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 진행자가 인사 및 일정을 소개하면서 북 캠프로 제한하지 말고 “책은 수단이고 이곳 공간을 여백으로 즐기라”라고 한다. 나는 느낌이 확 닿는 표현에 안도감이 든다.


참가자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20명이 소개 시간을 갖는다. 다들 밝고 자신감 있게 본인을 나타내며 다양한 사연을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이곳에서 책을 집중적으로 읽기 위해 7권을 챙겨 왔다. 자신의 독서 모임에서 5명이 신청했는데, 본인에게만 행운이 왔다. 꼭 참가하고 싶어 주관기관에 계속 연락해서 취소하신 빈자리의 행운을 얻었다.” 스마트 폰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분이 있는데, 말을 시작하면 통제가 되지 않아 앱의 스톱워치로 시간 확인을 한다고 했다. 대부분이 독서 모임의 리더, 방송국 PD, 전업작가, 교사 등 내 눈에는 책 읽기에 나름 고수다. 나에게는 이런 독서 내공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예상치 않은 행운이다.


풍성한 점심 후 볏짚 모자를 쓰고 개울가, 논밭 사이 길을 걸으면 산책을 한 후에 저녁 8시까지 홀로 방에서 책 읽기를 한다. 나는 <평범한 인생> 남은 부문을 읽는다. 끝 부문 역자 해설까지 읽고서 작가 의도가 어렴풋하게 다가온다. 소설 속의 자서전 주인공은 학창 시절 치열하게 노력하여 철도공무원이 되고 외형은 성공했지만, 책의 중반부에는 내면의 세계를 8개의 자아로 우울, 불안, 두려움 등을 상세하게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외형과 내면을 화합하는 구성이다. 인생은 누구나 겉모습과 속마음은 차이가 있고, 누구나 그것을 극복하는 삶을 살기에 평범한 인생으로 제목을 붙인 것 같다.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체코 작가의 90여 년 전 철도 공무원의 삶을 읽는 과제를 했다는 뿌듯함이 올라온다. 


이제까지 나의 삶을 이렇게 내면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학교, 직장으로 너무 단순한 삶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으로 여겨진다. 나는 직장을 마감하고 나머지 삶을 어떻게 할 것 인가 생의 큰 변곡점에 있다. 알량한 자랑, 아쉬움, 부족함에서 벗어나 내면의 자아를 표현하고 남은 생애 동안에 어떻게 살 것인가는 숙고하는 기회를 주었다. 


저녁 8시부터 다 모여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공개 방송에서 책을 나누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소설이기보다는 철학책에 가깝다고 깊이를 이야기한다. 나는 내용 전개가 너무 불친절해서 끝에서 어렴풋하게 감을 잡았다고 하니 원래 문학은 그런 맛으로 읽기도 한다고 했다. 나를 위한 위로의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토론은 계속되지만 나는 평소 생활방식을 벗어날 수 없다. 10시 30분 중간 휴식 시간에 방으로 왔다. 평소에 깊이 잠들 시간인데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잠자리 바뀐 영향이다.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떠니 12시를 넘은 것 같다. 빗소리, 조명 등으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평소와 같이 5시 전에 눈이 떠진다. 집에서는 교회 새벽기도와 한강 변 운동을 하는 데 잠시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여지고 낯설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일단 방 밖으로 무작정 나온다. 간밤 비는 그쳐 촉촉한 도로변을 따라 가수 인순 씨가 설립한 근처 대안학교 혜민 학교에 가서 작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온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하루를 지내고 나니 우연한 행복이 지속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서 여기 만남 좋은 인연들, 평범한 인생 책 메시지를 가끔 떠 올리며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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