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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회 Aug 20. 2024

소나기 문학촌 나들이

여름장마가 몇 주째 계속이다. 금주 주말 오전, 비는 잠시 내리지 않아 아내와 나들이 가기로 했다. 나는 양평 소나기 마을을 이야기하니 아내는 어떤 곳인지 물어보고 약간 망설인다. 교과서에 나온 황순원 작가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배경 마을이라고 얄팍한 정보로 미끼를 던져본다. 집에서 40Km,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출발하자고 한다.  

   

한강 변 강변북로를 따라 구리를 거쳐 팔당댐을 지나간다. 평상시 휴가철에 도로는 차로 끝없는 행렬이고 강은 잔잔한 호수 같은 데, 오늘은 도로는 한적하고 한강은 불어난 물과 부유물로 혼잡하다. 팔당댐 수문 근처에는 쏟아지는 물 폭포와 굉음이 더 크게 들린다.   

  

한강이 거의 끝나는 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다. 여기서부터 북한강변을 따라 난 한적한 시골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 문학촌에 도착했다.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매표소가 있고 안내문에 장마철에는 인공 소나기 체험은 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입구를 들어서자 넓은 초원에 멀리 작은 원두막과 초막 몇 채가 있다. 이곳이 소나기 마을인 것 같다. 지금이라도 소낙비만 내리면 소년과 소녀는 원두막을 향해 뛰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른편에 초막모양 큰 건물이 문학관이다. 문학관 2층에 있는 전시실로 향했다. 1 전시실은 작가 연대기가 소개가 되어있었다. 작가는 1915년 생으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조부 세대다.  

   

10대 학생 때는 '시심이 꽃피던 시절'로 '나의 꿈' 시를 발표한다. 1937년 단편소설 '거리의 부사'를 발표하며 소설가의 길로 접어든다. 1940년에 첫 소설집 황순원의 단편집을 내고 광복이 된 후인 1947년 장편소설 '별과 같이 살다' 이어 1948년 두 번째 단편소설집인 '목넘이 마을의 개‘를 펴낸다.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투사된 '목넘이 마을의 개'는 해방 전후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낸 소설집으로 알려져 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경기도 광주, 대구, 부산 등으로 피난 생활을 한다.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곡예사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전쟁의 혼란과 상흔을 그린다. 이때를 전쟁의 폭력성에 맞선 인간 사랑과 구원시기다. 

     

이후, 경희대에서 후학을 길러 내면서 정년퇴임 때까지 보직은 맡지 않고 한결같은 선비의 모습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했었다.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작가는 더욱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인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소나기, 고등학교 교과서에 학이 수록되고 장편소설 일월을 포함하여 여러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그의 단편집과 소설을 읽었고, TV 문학관을 시청한 추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휴대폰이 진동한다. 아내는 다 보고 건물 밖에 있다고 한다. 나는 나머지 전시실을 급히 둘러본다. 1 전시실 안쪽에는 작가의 서재를 옮겨 놓았는데 작은 책장과 앉은뱅이책상, 병풍 그리고 한쪽 벽에는 작가의 옷이 걸려있다. 지금도 작가가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이다. 2 전시실에는 대표작품의 무대공간이고, 3 전시실은 소나기를 모티브로 한 영상체험관이다. 좀 더 꼼꼼히 보고 싶지만, 아내 표정과 잔소리가 걱정되어 나의 문학관 체험은 1시간 만에 마무리한다.

     

아내는 문학관 입구에서 소나기 마을을 내려다보며 딸과 손녀에게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소나기 문학촌에 왔는데 풍경이 너무 좋다고 하며 손녀가 좀 더 크면 자신이 데리고 오겠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우리 딸애 교과서에도 작가의 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하물며 도시에서만 자란 그다음세대인 손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나는 국민학교 방학 때 자주 시골 큰 집과 외갓집에서 보내었다. 사촌뿐 아니라 마을에 또래의 애들도 많았다. 소설 속과 같은 마을에서 뛰 놀고, 가끔은 나이 많은 어른들로부터 일제강점기와 6.25 이야기도 들었다. 소설 속 배경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요즈음 중학교 때 읽었던 문학전집이 그대로 있다면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을 한다. 짧은 시간 동안 황순원 작가의 전 생애를 살펴보면서, 시에서 출발하여 단편소설 그리고 장편소설로 본인이 살아온 세상을 순수 문학으로 아름다운 생을 누리셨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세대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세월을 넘어서는 문학작품에 대한 나의 괜한 걱정일 수도 있겠다.  

   

집에 도착하니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소나기가 퍼부었다. 아내는 소나기 피해 일찍 잘 왔다고 한다. 각자 방으로 가서 관심 있는 책을 펼친다. 우리 부부는 “일상은 따로, 때로는 같이”가 더 익숙하다. 그래서 가끔 함께하는 여행이 필요하다. 아내는 내가 이런 글 쓴다는 것을 알면 자신에게 먼저 검사받으라고 하고, 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빼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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