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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회 Sep 26. 2024

돌아와요, 부산항에 (2)

흰여울마을~남항대교~송도해수욕장~암남공원 탐방 

본가에 가기 위해 남포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마을버스를 탄다. 부산대교를 거쳐 봉래동, 남항동, 신선동을 지나 산복도로 청학동을 비탈길을 올라간다. 이름만으로도 예스러운 정겨운 동네 길을 자그마한 초록 마을버스는 힘겹게 굉음을 낸다. 승객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다. 100~200 m 간격의 버스 정류장은 연신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젊은 운전기사는 정차 전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연신 잔소리한다. 내가 내릴 곳은 배수지라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산복도로 오르막 정점에 있는 해양경찰청 교육센터 앞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승객은 거의 하차하고 버스는 여유가 있다. 버스에 내리면서 잠시 부모님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힘겹게 사셨으니 편안한 노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연로한 몸, 만성 질환, 지나온 날에 아쉬움, 일상의 근심 속에 계신다.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으로  퇴직 후에는 한 달에 1주일 정도 부산에 머물면서 요양해 드릴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부모 자식이지만 품을 떠난 시간이 길수록 마음,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논다. 


나는 섬 영도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만 그 자리에 있다. 내가 60회 졸업생이나 지금은 110년을 훨씬 넘었을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학교 입구 비탈길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내 기억에는 넓고 긴 길이었는데, 지금은 지나다 보면 좁은 길이다. 그동안 내 경험이 추억조차 의심하게 한다. 중고등학교는 그 자리가 아파트로 바뀌었고 고등학교는 섬을 벗어났고, 중학교는 섬 더 깊이 들어갔다. 졸업 후 가 본 적이 없지만 그곳은 학교에 대한 기억은 찾을 수 없고 생소함만 남아 있을 것이다.    


다음 날 학창 시절 놀던 주변 길을 걷기로 한다. 영도 중심에 봉래산 있다. 과거에는 영도다리가 유일한 관문이고 그 근처가 중심지 역할을 했다. 주로 배 용품인 그물 등 선구 가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멀어질수록, 산 쪽으로 올라갈수록 변두리이다. 교통이 좋아지고 유입보다는 나가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바뀌고 있다. 변두리는 노인들 생활이 불편하여 빈 집도 생기지만 대신 경치, 전망 좋은 곳에 카페 등이 들어서고 있다. 때로는 인스타에서 만나기도 한다. 


나는 먼저 집 근처 흰여울마을로 간다. 내 학창 시절에는 해안 절벽 좁은 골목 사이로 작은 집들이 빼곡히 있다. 10여 년 전 노무현 대통령 실화영화 <변호인> 장면에 이곳을 배경으로 가난한 의뢰인 집 장소이다. 해안 도로변은 집들은 그대로이다. 단지 각종 기념품 가게, 작은 커피점,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다시 골목으로 내려온다. 집들은 흰색으로 치장하고 곳곳에 먼바다를 바라보거나 반대편 해안을 볼 수 있다. 여울은 작은 하천을 말하는 데, 봉래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이 골목마다 흘러내렸다고 한다. 한국 전쟁통에 부산 피난살이의 척박함을 재생하여 문화로 바뀌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내는 서민들의 한이 서려 있지만 오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적하게 해안에서 먼바다를 즐기고 있다.  

흰여울 마을 전경

남해 남파랑길을 걷는 마음으로 남항대교로 간다. 이곳은 영도에서 3번째 놓인 다리로 서구 암남동으로 연결된다. 학창 시절에는 없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다리 위를 걸어간다. 바로 송도해수욕장로 연결된다. 어린 적에는 영도 해안을 2 송도라 하고 암남동 해안을 1 송도라 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어 그렇게 불려진 것 같다. 송도는 중고등 학창 시절에는 그림 그리기 대회로 왔었고, 대학 이후에는 시내에 가까운 데이트 코스로 몇 번 왔었다. 30년 만에 왔다. 역시 내 기억과 차이가 있다. 모래사장 주변은 횟집으로 둘러있고 백사장은 한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크기이다. 성인이 되면서 넓고 큰 지역을 많이 본 것 때문일 것이다. 해수욕장 그림에 등장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다이빙대, 구름다리, 케이블카 등 과거 명성을 크게 얻었던 시설은 다 없어졌다. 대신 백사장 중심에 “대한민국 1호 공설 해수욕장 SONGDO” 아치만 있다. 소박한 송도 100주년 기념 공원에 다이빙대 등 추억의 모형 조형물만 있다. 

남항대교 위에서 
송도 해수욕장 100 주년 기념공원 추억 3대 조형물 : 구름다리, 다이빙대, 케이블카 

붉은 갈맷길 이정표를 따라 좀 더 걷기로 한다. 암남 공원 해안 길은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맞은편 영도 해안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연초에 다녀온 제주도 올레길과 비슷한 느낌이다. 공원에 숲이 우거지고 해안 절벽 옆의 작은 길은 제주 올레길로 순간 착각을 했다. 내 고향에 이런 길을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암남 공원은 치유의 숲길로 4개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구간이 7 Km이다. 해안 절벽에서 바라본 무인도, 새들의 땅, 두도는 제주 해안가에서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송도 암남 공원 숲길
암남공원에서 본 새들의 땅, 두도 

5시간 이상 걸은 것 같다. 조금 아쉽지만, 준비 없이 나온 길이라 여기서 일단 멈추기로 한다. 남파랑길, 부산 갈맷길을 걷고 싶은 마음만 남기고 떠난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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