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마라톤 도전기
10.3 개천절 마라톤 대회 날이다. 평소와 같이 새벽에 눈을 뜨고 거실 탁자에서 책을 뒤적거린다. 지난여름 너무 더워 에어컨이 있는 거실이 주 생활무대다. 1시간쯤 지났는데 몸에 한기가 드는 느낌이다.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아침 기온이 13~14도 일교차가 너무 크다. 다시 방으로 와서 이불속에 몸을 좀 데워보려고 하지만 싸늘한 발은 그대로다. 7시까지 여의도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6시는 나서야 한다. 일단 급히 누룽지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일단 한기는 덜하다. 푹 자고 몸도 풀고 따뜻하게 최적의 컨디션으로 가야 하는 데, 준비부터 어설프다. 오늘 완주 못 하면 다음에 도전할 핑계를 잠시 떠올린다.
공휴일 아침 목적지 여의도역에 가까워질수록 전철 안은 마라톤 복장의 젊은이로 꽉 채운다. 여의도역 구내는 출퇴근 시간 때보다 더 많은 인파 마라토너로 분빈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참가자만 2만 명이라 한다. 역에서 잠시 만나기로 한 일행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짐보관소 대기 행렬이 100m가 넘으니 먼저 짐부터 맡기고 보자고 한다. 짐부스 앞에 넓은 광장 전체가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옷부터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 공중화장실을 찾는다. 왜 사람들이 마라톤 복장으로 왔는지 이제 알아차렸고 내가 미리 입고 올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세심함 부족이다. 공원 안 화장실에서 옷을 바꿔 입고 오니 짐보관소 줄은 더 길어진 것 같다. 나의 마라톤 멘토 박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멘토는 지난주에 풀코스마라톤, 180 Km 자전거, 3.6 Km 수영 철인 3종 13시간 만에 완주하신 분이다. 짐은 먼저 보관용 백에 넣어야 하는데, 자신이 앞에 있으니 같은 백에 넣자고 하였다. 멘토에게 가서 기다리지만 8시 출발 시간은 가까워지고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멘토는 자신이 짐을 맡기고 늦게 출발해도 되니, 처녀 출전인 나는 먼저 몸부터 풀고 출발라인으로 가라고 한다. 지금 내 처지가 체면 차릴 입장이 못 되어 고맙다는 말로 대신하고 음악이 크게 들리는 광장으로 갔다. 사회자의 구령에 맞추어 몸풀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하프참가자는 지금 바로 출발라인으로 이동하라고 방송이 들린다. 이제 시작인가 보다.
출발점에 오니 벌써 하프 참가자 7,500여 명이 도로를 몇백 미터를 메우고 있다. A, B, C 조로 나누어 10분 단위로 출발하는 데, 나는 B조이고 페이스메이크를 따라갈 생각으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C조 페이스메이크는 앞에 보였다. 방송에 B조 출발을 알리고 메시지가 들린다. B조 후미에서 뛰기로 하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출발선 도로에 붉은색 발판이 있었다. 발판에 센스가 있어 개별로 출발시간을 자동측정하게 되어있었다. 배번호표에 RFID 칩이 있으니 절대 꾸기지 말고 칩번호도 등록번호와 같은지 확인하라는 안내문이 이해되고 내 생계도구였던 첨단 IT 기술이 여기도 있구나는 생각이 든다.
출발하면서 페이스메이크가 보이지 않아 내 수준보다 약간 잘 뛰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사람을 따라가기로 한다. 서강대교를 지날 때까지는 평소 속도를 유지했는데 점점 속도가 떨어짐을 느낀다. 내가 따라가던 사람들이 점차 사라진다. 반환점을 지나 다시 서강대교로 올라오니 내 몸 상태가 심각하다. 선크림 바른 얼굴에 땀이 흘러내리면서 눈이 따갑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뛰는 데 이번에는 다리가 움직이질 않으려고 한다. 훈련하면서 멈추는 순간 더 이상 뛰지 못한다고 이미 알고 있어 멈출 수는 없다. 아무래도 제한시간은 힘들 것 같다는 걱정이다. 10분 뒤에 출발한 C조 2시간 30분 목표 페이스메이커가 나를 앞지른다. 지금부터 페이스메이커만 따라가면 제한된 시간에 완주할 수 있다는 계산을 머릿속에 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페이스메이커도 놓치고 말았다. 서강대교를 내려와서 다시 여의도 코스를 돌면서 포기는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느린 속도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달린다. 어느듯 결승점이 눈에 들어오고, 이미 3.6K, 10K, 하프를 마친 사람들로 주위가 엄청 어수선하다. 그 속에 멘토도 기다리고 있다. 실망의 소식은 여의도 공원을 한 바퀴 더 돌아야 한다고 한다. 혹시 내가 착각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배려가 정말 고맙지만 나는 여기서 마칠까 순간 갈등하다가 여의도 공원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멘토는 함께 뛰면서 구령을 붙여주었다. 여의도 공원이 대략 3Km 정도 되는데 엄청 길게만 느껴지고, 마지막 결승전 500m 남았다고 하는 데, 내 눈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무사히 완주하고 시계를 확인하니 3시간 내 들어온 것 같았다. 어디 우선 앉을 자리를 찾으려고 하니 멘토는 일단 걸으면서 다리를 풀어주라고 한다. 힘겹게 메달과 간식을 받은 후 잠시 자리에 앉았다. 조금 쉬고 나니 몸과 마음은 제자리를 찾았다. 방금 힘들어한 것도 다 가시었다.
하프마라톤 도전하며 느낀 점 몇 가지이다.
달리는 젊은이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이 부러웠다. 오래된 이야기로 '없이 공부하려면 수학을 해라. 없이 운동하려면 마라톤을 해라'가 있다. 별도 실험장비나 도구 없이 수학은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머리로 해결하고, 마라톤은 펜티에 맨몸으로 뛰기만 하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라톤 하면 깡마르고 새까만 얼굴의 중년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오늘 여기는 거의가 젊은 세대로 모자, 선글라스, 옷 복장, 신발에 투자하여 엄청 세련된 모습으로 표정도 힘들이지 않고 일행들과 즐기면서 달리고 있다. 중간에 기록사진이나 고퍼로 동영상 촬영하는 이도 보인다. 중간지점에 곳곳에 동호인 단체로 응원 온 사람들도 보인다. 단거리 3.6 Km, 10K 참가하는 사람이 만 삼천 여명으로, 마치 축제장이었다. 초등학생, 심지어 유모차와 함께 달리는 신세대 부모들도 곳곳에 보였다. 우리 가족들도 함께 달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나도 이번 기회에 마라톤의 맛을 조금 보았다. 한강변을 달리는 사람들을 가끔 보았지만 내가 마라톤할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제주 트레일러닝을 위한 준비로 시작했지만 1시간 정도 달리기 투자하여 온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함께한 멤버는 카톡으로 훈련을 격려하고 나는 마라톤대회 준비부터 대회장, 마칠 때까지 큰 도움을 받았다. 단기간 연습도 부족하고 자신감도 살짝 부족한 상황에서 대회장의 처음 분위기는 당황스럽고 대처도 쉽지 않았다. 마지막 코스를 안내하고 함께 뛰어준 멘토 박작가님 덕분에 무사히 완주하였다. 나중에 기록을 확인하니 마지막 여의도 공원 한 바퀴 3Km를 20분에 주파했다. 거의 출발할 때 속도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치고 문자로 통보된 기록은 생각보다 좋은 기록 2시간 41분이다. 함께한 덕분이다.
훈련과 측정의 중요성이다. 연습 초기에 10Km를 1시간 40분에 달렸는 데, 이 속도로는 제한된 3시간 내 완주가 안된다. 내 능력에 적당한 속도 훈련으로 Km당 7분대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5K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갔다. 핑계지만 추석연휴와 수시로 내리는 비로 마지막 10여 일을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없었다. 10월 1일 최종 점검으로 12Km를 1시간 24분 측정이 되었다. 한강변 평지 1Km 구간을 6번 왕복하면서 일정 속도로 달리는 훈련이었다. 대회에서 그 동안 뛰어보지 않은 12 Km 이후가 약간 두려웠는 데, 역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면서, 오르막과 내리막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었다. 실전은 훈련을 속일수 없고 정직하다.
며칠 남지 않은 제주 트레일러닝을 기대한다. 하프 마라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제주 숲과 오름길을 달리면 어떤 느낌일까? 무사히 완주는 할 수 있을까? 제주에서 돌아오면 격일로 10 Km 정도는 꾸준히 달려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