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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회 Aug 21. 2024

백수생활도 일하듯이

백수 생활 6개월이 넘었다. 직장에서 주로 하던 일이 업무 혁신이나 시스템 구축을 위해 마스트플랜 수립하고 설계와 구현, 테스트, 가동 그리고 사용자 교육 등 일련의 과정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 관리자라고 한다. 반복적인 일이 아니고 매번 새로운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여 정해진 기간에 결과가 나오도록 관리하는 활동이다.  

 

대규모 정보시스템 분야인 경우 수백 명 설계자, 프로그래머가 3~4년 정도 참여하는 데, 일의 진척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문서와 시스템 안에 코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적과 목표를 잘 설정하여 이해관계자들의 공감을 얻고,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해야 할 일을 빠뜨리지 않고 도출하여 절차를 명확히 하는 준비 작업이 중요했다. 그 후 실행단계에는 일 단위, 주간 단위 진도 회의를 하고, 주요 시점에는 이벤트 행사로 종합 점검회의를 했다. 늘 문제점이 발생하고 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었다. 퇴직하면서 일에 관련 모든 사항은 반납하고 머릿속도 깨끗이 비웠다.  

    

일했던 DNA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인가? 가끔 백수 생활이 인생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로 느껴졌다. 수동적인 직장생활에서 자유로운 백수 생활은 일시적으로는 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료하고 허송세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후반기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홀로 단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내 후반기 삶에 대한 기획이다.      

먼저 자료조사부터 했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은퇴, 후반기 삶에 관련 책이 수십 권이 있다. 내용을 흩어보니 5년 전 비교적 오랜 된 책들은 일반적인 내용 중심이지만 최근 책들은 저자의 경험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이렇게 책이 많은 이유는 후반기 삶이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책을 읽은 후에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타인의 삶에 그렇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삶은 다 다르고 정답도 없다. 제목, 목차에서 착안 정도 참고로 충분하다.  

     

먼저 나의 백수 삶의 목표를 ‘행복한 자유인’으로 정했다. 주된 직장에서 벗어난 지금, 나의 기존 능력은 거의 경쟁력도 없고 용도 폐기 직전으로 구애할 곳도 마땅치 않다. 좋게 생각하면 일에서 자연스럽게 해방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행복할 이유는 내가 즐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조금씩 나 자신이 성숙해 간다는 바람을 갖고있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일 대신에 자연, 인문, 종교, 삶의 4가지 영역에 대해 주로 여행하거나, 공부하고 글로 공유하고자 한다. 자연은 주로 숲, 공원, 도시 등 바깥 세계의 경험 공간을 의미하고, 인문은 문화, 문학, 역사, 음악, 미술 등 인간이 만들어낸 흔적, 작품에 관심을 두고 책을 읽거나 스터디, 동호인 모임에 참여한다. 종교는 교회 공동체에 나의 역할을 올바르게 감당하면서 영적 성장을 지속적으로 도모한다. 끝으로 삶은 일상에서 4개 기둥을 잘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건강, 가족, 재정, 사람 관계는 일상이고 초석이다.  세월이 지나면 늙고 병들고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거나 사람 관계가 어려우면 외롭게 된다. 돈이 없으면 비천, 의기소침해 진다. 잘 알려진 후반기 삶의 위험 요인이다.

      

나름 목표와 방향을 정했으니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부르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느 순간 본연의 할 일을 완전히 잊는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무리한 의욕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한다. 둘째, 각 영역에 이미 재미있는 다양한 경험의 책과 고수들이 많이 있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학습 프로그램 등 수시로 배움 활동에도 참여한다. 동기유발과 자극이 된다. 셋째, 진행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매주 한 편 이상 글로 정리하고 블로그나 브런치 등 공개한다. 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원래 문학적 감성이 부족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띄어쓰기, 맞춤법, 비문 등 글쓰기 오류 걱정이 앞선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글쓰기뿐 아니라 자연, 인문, 종교, 삶 전 분야가 초짜이다. 각 영역에 정리된 정보와 고수들 도움을 받으며 시도하자. 나는 바닥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기본부터 출발한다. 어차피 이 프로젝트는 인생 후반기 전반에 걸쳐 진행되며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간에 쫓기며 성과를 내야 것은 아니다. 즐기며 여유롭게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하는 인생 프로젝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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