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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회 Aug 22. 2024

뒷것 김민기 선생 추모하며


내가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가 <아침이슬>이었다. 음악 재능이 없는 나는 거의 노래를 듣지 않고 부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 때 모이는 곳에는 그냥 들려오고 가끔 떼창을 하니 <아침이슬>은 입에 붙게 되었다. 그 후 가사처럼 내 가슴에 알알이 새겨들었다.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은 흐릿하고 느낌만 아직도 남아있다. 양희은 가수의 노래인 것은 처음부터 알았지만 가곡가가 김민기 선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이다. 올해 초에 선생의 소극장 <학전>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으며 본인은 암 투병 중이라는 기사를 접했었다. 지난달 7월 21일 선생은 소천하셨다.  

   

선생은 서울대 회화과를 다니면서 탁월한 감성과 재능으로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70년대 학생운동으로 권력기관에 잡혀가 죽으라고 때리는 기관원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으로 인해 그가 죄를 짓고 있으며 그들을 미워할수록 그들을 닮게 되어 나중에는 더 모질고 나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금관의 예수>에서 “오, 주여 이제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청년 김민기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히 읽고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예수의 십자가를 신앙 고백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선생은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던 중, 수사기관의 통보로 전방 원통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곳에서 30년을 복무하고 전역을 앞둔 선임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막걸리 2말을 받고 노래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노래가 바로 1976년 겨울에 만든 ‘늙은 군인의 노래’이다. 유신체제 아래에서 금지곡이 된 이 노래가 생명을 이어간 것은 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와 노동 현장이었다. 원래 가사 속의 군인은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면서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탈바꿈하며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요즈음은 원래 의미인 소박한 나라 사랑으로 해석되어 정부 행사 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같은 노래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불릴 수 있고 지금은 돌고 돌아 원위치한 것 같다.  

     

선생은 학교 졸업 후 농사일, 노동현장 등으로 진전하다가 1991년 대학로에 학전(學田)을 열었다. 사람을 키워내는 못자리를 33간 운영한다. 이곳에서 배우 송광호, 설경구, 최민식, 가수로는 김광석, 양희은 등 수많은 최고의 인재가 탄생하도록 도왔다. “나는 뒷것이고, 너네는 앞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앞서야 하고 주목받아야 제대로 일하는 것 같고 대접받아야 잘 사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세상은 속삭인다. 후배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으면 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이 또한 성경 속 예수의 마음이다. 

     

선생은 마무리 모습도 아름다웠다. 조의금과 조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을 아는 많은 사람이 조문했었다. 후배 중에 한 분이 조문객 식사비용으로 큰돈을 두고 갔다.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그것도 돌려드렸다고 한다. 평소 선생이 어떤 삶의 기준을 가족에게 남겼는지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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