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요리와 여행 이야기-1
2017년 대구 모 부대의 생활관, 주말을 맞은 우리는 옹기종기 티비 앞에 모여 앉아 신서유기를 보고 있었다. 이번 시즌의 배경은 베트남. 멤버들이 게임을 하며 돼지고기가 올라간 국수를 국물에 찍어먹었다. 국물에 적신 면이 후루룩 빨려 올라가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저거 다음 휴가 때 고?"
"진짜 맛있겠다. 근데 휴가까지 며칠 남았지?"
우리는 달력을 슬쩍 쳐다봤다. 앞으로 몇 밤만 더 자면... 아니다. 차라리 보급으로 나온 쌀국수를 먹는 게 빠를 것 같다. 우리는 불 꺼진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날 이후로 분짜라는 단어는 잊혀졌다.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에서 몇 번 스치듯 지나치기는 했지만, 메뉴 선택에 있어서 보수적인 나는 항상 소고기 양지가 들어간 국물 쌀국수를 주문하곤 했다. 그 단어가 다시 떠오른 것은 강호동이 맛있게 분짜를 먹은 날로부터 약 3년 뒤, 그러니까 2020년 2월의 이야기다.
"야, 이번 겨울 휴가로는 엄마가 베트남 가자던데?"
크리스마스쯤 누나가 내 일정을 물어봤다. 1월에 계절학기가 끝나는 나는 2월에는 할 일이 없다.
"2월에는 가도 될 듯. 그럼 나는 같이 비행기 타고 가서 혼자 2주 더 있다 한국 갈게."
그렇게 나는 합법적으로 베트남행 공짜 비행기 티켓을 얻었고, 하노이를 우선 가족과 함께 여행하게 됐다. 오늘은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마지막 저녁식사인 만큼 괜찮은 곳이 없을까 가이드를 맡은 나는 지도를 열심히 뒤졌다.
지도를 보던 중 오바마 분짜라는 특이한 이름의 식당을 발견했고, 나는 구글 리뷰를 훑었다. 공교롭게도 이 식당은 3년 전 내가 티비를 보며 침을 흘렸던 그 식당이었다. 가게의 정식 이름은 '분짜 흐엉리엔(Bun cha huong lien)', 신서유기 팀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까지 다녀갔다며 오바마 분짜로도 불리는 곳이었다. 분짜는 원래 하노이 인근 북베트남 음식이라 분짜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숙소 주변에도 많았다. 그렇지만 '오바마 분짜'만큼 가게 이름만으로 시선을 끄는 곳이 없어서 조금 걸어야 했지만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지도상으로는 호안끼엠 호수에서 가까워 보였는데,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꽤 오랜 시간을 걸은 끝에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살짝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손님들이 두세 명 거리를 두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철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분짜와 사이공 맥주를 주문했다. 쌈채소처럼 보이는 야채 접시와 구운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물, 흰 접시에 얹힌 실뭉치 같은 쌀국수 한 더미가 곧 우리 테이블에 깔렸다.
하얀 면발을 조금 덜어서 국물에 말았다. 야채까지 같이 넣으니 물회에 소면을 넣어먹는 느낌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양념인 느억맘 소스가 들어가 국물은 새콤 달달한 맛이 났다.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까지 들어간 국물은 꿀꺽꿀꺽 마시기에는 조금 부담스럽지만 츠케멘처럼 면을 찍어먹기에는 딱 좋다. 이번 여행의 목표가 고수에 익숙해지는 건데, 고수도 오이처럼 노력해도 못 먹는 사람들이 있는지 나는 고수를 먹을 수는 있지만 즐기는 경지까지는 한참 남았다. 이번에도 야채 접시에서 고수를 피해 양상추만 조심스럽게 골라 고기를 싸 먹었다.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을 공항으로 보냈다. 나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에어비앤비 아파트를 나와 호스텔을 찾아 걸었다. 나무 냄새가 나는, 마음에 쏙 드는 아파트였지만 이제는 내 예산에 맞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두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익숙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비록 2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다시 배낭을 메니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찾은 듯 기분이 좋았다. 베트남은 그랩 택시, 바이크 등이 싸서 주로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녔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1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걷고 싶었다. 호스텔에 도착할 쯤에는 땀이 배어 나와 티셔츠에 배낭 자국이 생겼다. 체크인을 하며 리셉션에서 커다란 물 한 병을 샀다. 6인실 방에는 에어컨이 잘 나왔다. 2층 내 자리를 찾아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아침 일찍 지난번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만났다. 그는 오토바이를 몰고 와 호스텔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닝커피 한 잔 해야죠."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 아파트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려 그에게 연락했는데, 근처 맛집을 추천받고 계속 대화가 이어졌다. 오늘은 아예 나를 근처 카페로 데려가 준다는 그의 호의에 감사하며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았다.
베트남식 에그 커피를 잘하는 집이라며 그가 향한 곳은 카페 엔(Ca Phe Yen). 골목 사이 공터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우리는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에그 커피 먹어봤어요?"
"아니요, 베트남에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아직 못 먹어봤어요."
그는 에그 커피를 두 잔 주문했고, 곧 노란 거품이 잔뜩 올라간 커피잔을 받아왔다.
"옛날에 전쟁 때 우유가 귀해져서 우유 대신 계란을 커피에 넣어먹던 게 유래가 됐다네요."
설명까지 들어가며 나는 계란 거품이 걸쭉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날계란 냄새가 살짝 나긴 하지만 설탕이나 시럽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커스터드 크림 맛이 났다. 그리고 진한 베트남 커피 향이 올라온다. 믹스 커피를 종이컵에 두세 개 정도 넣고 진하게 탄 듯한 맛과 농도라 두 잔은 못 마실 것 같았다. 잔을 비우고 같이 나온 물로 입을 헹궜다. 그래도 여전히 입 안이 텁텁하다.
프로덕션 디자인이 전공이라는 헬리오스는 지금은 잡지사에서 편집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본명이 따로 있을 테지만 예술계에 종사하는 그는 헬리오스라는 영어 이름 말고 베트남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 베트남에 오기 전 내가 봤던 유일한 베트남 영화는 <그린 파파야 향기>. 영화에도 관심이 많은 그에게 얘기를 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영화감독님이 제 선생님이었거든요, 제 에어비앤비에도 하노이에 오실 때마다 묵으시곤 해요."
공통의 주제를 찾은 우리는 신나게 영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얼마 전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던데, 정말 축하해요. 저도 봤는데 정말 좋은 영화예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상은 기생충이 받았지만 축하는 내가 받았다.
"점심은 맥주나 한 잔 곁들여서 간단하게 먹을까요? 저도 점심만 먹고 출근해야 해서."
베트남에 오고 처음 보는 쨍쨍한 날이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시원한 맥주를 파는 가게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자리는 딱 한 곳 남아있었다. 우리는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헬리오스는 이곳에서는 모닝글로리라고 부르는 공심채 볶음과 돼지고기 볶음,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곧 살얼음이 낀 유리잔에 맥주가 담겨 나오고, 우리는 따라 나온 땅콩을 까먹었다. 나는 특수 부위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간, 염통, 내장 등이 들어간 돼지고기 볶음 쪽으로는 젓가락이 잘 가지 않았다. 대신 마늘향이 듬뿍 밴 공심채 볶음은 줄기가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특유의 향이 강하지 않아서 거부감 없이 건강한 음식을 먹는 기분이다.
나는 맥주 두 잔째를 비웠다. 날씨는 여전히 더웠지만 많이 거슬리지는 않는다. 헬리오스를 보내고 기차역에서 내일 베트남 중부 후에(Hue)로 가는 야간기차표를 샀다. 시원한 호스텔 로비에 앉아서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헤이, 오늘 하루 어땠어?"
옆 침대를 쓰는 영국인 사만다와 친구들이 지나가며 말을 붙였다.
"밤 되면 맥주 거리에 꼭 나가봐. 우리도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갈 건데 이따 거기서 만날 수도 있겠다."
갓 스물이 되고 처음으로 다른 대륙에 왔다는 친구들은 이내 오늘 밤 옷을 어떻게 입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대화 주제가 옮겨갔다.
사만다와 친구들을 보내고 나도 맥주 거리로 나갔다. 안 그래도 좁은 골목이 식당에서 내놓은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로 더 좁아져 있었다. 그 좁은 길에는 호객꾼들이 사람들을 잡아끌었다. 웬만하면 모든 가게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잡았던 호객꾼에게 못 이기는 척 끌려가 그가 안내해주는 테이블에 앉았다. 비빔 쌀국수인 분보남보를 주문하고 건네주는 맥주를 받았다. 깨작깨작 국수를 먹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조금 전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호객꾼들은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인종과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리를 권했다. 휑한 야외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심심하던 나는 자리가 조금이나마 차도록 우리 가게 호객꾼을 응원했다.
그는 내 기대에 부응해 두 명의 한국인 친구들을 데려왔다. 도윤이와 주영이는 자리를 안내받아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학번도 비슷한 또래인 우리는 맥주를 같이 마셨다.
"오늘 밤에 뭐 할 거야?"
"계획은 없고 그냥 나와봤어. 너희는?"
"우리도 그냥 술이나 마시러 나왔지. 슬슬 일어나서 한번 둘러볼까?"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사이공 맥주의 초록색 병이 몇 개 쌓였고, 우리는 일어나서 다른 좋은 곳이 없을까 거리로 나갔다.
라이브 펍에서는 밴드가 콜드플레이의 노래 Viva La Vida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일부러 밴드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래 들으니까 나도 한 곡 부르고 싶네."
노래에 자신이 있다는 주영이가 떡밥을 던졌고, 도윤이와 나는 그녀를 부추기느라 술을 계속 권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소란스러운 우리에게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걸었고, 세종시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자미다가 우리 무리에 합류했다. 레게 머리를 한 흥이 많은 자미다는 앞장서 우리를 이끌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 클럽까지 둘러본 뒤에야 우리는 거리로 다시 나왔다. 맥주 거리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늦은 밤거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배고픈데 볶음밥이나 먹고 들어갈까?"
누군가의 제안에 우리는 아직 문을 연 가게를 용케 찾아 들어가 볶음밥과 맥주를 주문했다. 몇 병째인지 모를 맥주는 입에서 단내가 나서 반 밖에 비우지 못했다.
"우리 한국에서 다시 보자! 부산 오면 연락해."
"아니 너네가 대구로 오는 걸로 하자."
"Why don't you guys come to Sejong?"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머리가 지끈거렸고,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약 없는 약속과 함께 우리는 교차로에서 갈라졌다.